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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이 끝나고 막 여행자유화가 시작되었을 때였다. 군을 제대하고 여권을 만들려고 하자 여행자 소양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교육은 외국에서 한국말 하면서 먼저 접근해 오는 사람은 북한 공작원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등의 안보교육과 해외에 가서 지켜야 하는 매너에 관한 것이었다.

자유총연맹이 주관하던 그 교육은 찜통 같은 강의실에서 진행되었다. 강의실 뒷줄에는 작정하고 책상에 엎드린 사람들이 태반이었지만 강사는 크게 시비 걸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신문에 나온 십자말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또 어떤 이들은 종이에 줄을 긋고 오목을 두기도 했다. 강사나 교육생이나 큰 의미 없는 교육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시간만 때우려고 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의미 없다고 여겼던 교육인데도 사반세기나 지난 지금까지 기억하는 내용이 있다.

"외국에 가서 대사관에 갈 일이 있을 땐, 꼭 '서울 코리아'라고 하십시오. 싸우스 코리아라고 하면 택시 기사들이 헷갈립니다. 외국 사람들은 남북을 '서울 코리아, 평양 코리아'라고 해야 정확하게 구분합니다."

사반세기도 더 지난 지금, 대사관 갈 때 주의법이나 같은 한국 사람을 주의해야 하는 이유 등을 설명했던 강사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뒷줄에 앉아 신문이나 읽으며 시간을 때웠기 때문이 아니다. 그때도 강사 얼굴에 관심이 없었거니와 잊을 만한 충분한 세월이 지났다. 그러나 강사가 했던 말들은 안경을 귀에 걸고 있으면서도 찾느라 정신없을 정도로 건망증이 심한 지금도 선명하다.

가브리엘 돌란, 야미니 나이두 지음, 박미연 옮김. 트로이목마 출판
▲ 팩트보다 강력한 스토리텔링의 힘 가브리엘 돌란, 야미니 나이두 지음, 박미연 옮김. 트로이목마 출판
ⓒ 트로이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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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들으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이야기지만, 처음 해외에 나가서 한국식당에서 괜히 뒤를 살피고, 모국어인 한국어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을 의심했던 건 여행자 소양교육 영향이 컸다. '같은 동족'을 의심하며 살도록 강요하던 시대의 이야기가 이토록 오랫동안 생명력을 갖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흔히 말하는 썰!, 이야기의 힘이다."

<팩트보다 강력한 스토리텔링의 힘>은 그 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별히 리더의 커뮤니케이션 기술부터 경영을 위한 성공 전략까지 비즈니스 스토리텔링의 A부터 Z를 담았다.

빤하고 빤한 잠언 같은 이야기들을 나열하면서 이렇게 해 보라고 권하는 책이다. 내용이 쉬울 뿐만 아니라, 빨간 글자와 줄, 상자 속 글들이 수험생을 위한 요약노트처럼 눈에 쏙쏙 들어온다.

자기개발서가 말하는 스토리텔링이 새로울 게 뭐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 스토리텔링 전문 기업인 1001(One Thousand & One)의 창립자인 가브리엘 돌란과 야미니 나이두는 "평범한 리더는 팩트로 설득하고, 현명한 리더는 스토리로 마음을 움직인다"고 단언한다.

이들은 일반적인 스토리텔링이 구글이 있기 전의 삶이었다면, 비즈니스 스토리텔링은 구글 이후의 삶과 같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비즈니스 스토리텔링과 일반적인 스토리텔링은 어떻게 다를까?

"비즈니스 스토리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 데이터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즉 진실한 스토리로 말하고 말하고자 하는 목적과 연관되는 것이어야 한다." -31쪽 
이 말은 정보 제공과 함께 주위 사람들과 어떻게 교감하고 교류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비즈니스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을 사로잡을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방법은 의미와 관계를 만들어 내는 믿을 만한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팩트나 데이터는 감정이 결여되어 있어 기억하기 어렵다. 그래서 팩트만으로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에 대해 동기부여 전문가인 지그 지글러는 "논리는 사람들을 사고하게 만들지만, 감정은 사람들을 행동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렇다면 팩트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요즘, 팩트 체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저자는 팩트의 기능까지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팩트가 정보를 제공하지만, 설득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뿐이다.
"감정은 기억하도록 도와주고, 행동하게 만든다." -40쪽 
이 책이 갖는 장점 중 하나는 비즈니스 스토리텔링의 모범 사례들로 제시된 이야기들이 상당한 설득력과 감동을 준다는 점이다. 굳이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이야기책으로 읽어도 될 법한 사례들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자기개발서가 감동이라니…, 대단하다.

그 사례 중에 케네디가 미항공우주국 나사Nasa를 방문했을 때, 청소부를 만난 전설 같은 일화가 있다.

"(케네디가) 청소부에게 "여기서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라고 묻자, 그 청소부는 "인간을 달에 보내도록 돕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53쪽 
이 이야기는 계몽을 위한 작위적이며, 선전용 예화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파트 경비원, 대학교 청소노동자 등과 같은 이들에 대한 해고가 일상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단순히 경영 능력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더불어 보수 언론과 경제지들이 줄기차게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을 떠들어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자들이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대우해 왔는지는 결코 묻지 않는다. 노동자들을 소모품처럼 취급하고, 아무런 자존감도 못 느끼게끔 대우하는 현실은 눈감아 버린다.

어떤 조직의 임원부터 말단직원까지 그 조직의 정체성에 맞게 말할 수 있다면 그 조직 경영자는 인건비를 핑계로 구성원을 내치지 않을 것을 미항공우주국 청소부 일화는 말해주고 있다. 당신의 메시지가 청소부 예화가 말하는 정도의 파급력이 있다고 상상해보라. 세상은 바뀔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트위터가 없던 시절에 단 여섯 단어로 인생 최고 작품을 선보였다. 오늘날 트위터를 사용한다면 트위터 정치를 하는 트럼프 정도는 한 방에 날려버릴 그 역작은 이랬다.

"판매합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아기 신발 For sale: Baby shoes, never used." -188쪽
신발을 판매하려고 내놓은 사연을 묻지 않아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신발을 살 때,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지, 다시 내놓아야 하는 엄마 심정은 어떨지를 상상해 보라. 누군가가 아기 신발을 산다면 그것은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신발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사는 것이다. 비록 헤밍웨이가 신발을 팔려고 쓴 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처럼 공감은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팩트보다 강한 스토리텔링의 힘>은 부자가 되고 싶으면 이야기꾼이 되라고 말하고 있다. 이야기를 쉽고 간단하게, 일상에서 할 수 있도록 훈련할 것을 권한다. "스토리를 말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는 호피족 격언이 있다. 적절한 이야기를 통해 상대방과 신뢰를 쌓고 감정적 교감을 갖게 된다면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는 말이다. 스토리텔링을 배우고 싶은가? 도전하라!

"스토리텔링은 가르쳐주고 배울 수 있는 기술이다." -71쪽 


팩트보다 강력한 스토리텔링의 힘 - 평범한 리더는 팩트로 설득하고, 현명한 리더는 스토리로 마음을 움직인다

가브리엘 돌란.야미니 나이 지음, 박미연 옮김, 트로이목마(2017)


태그:#스토리텔링, #이야기, #자기개발, #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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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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