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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엄마의 일’이라는 구닥다리 공식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들, ‘육아빠’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악의 저출산 사회, 2018년 대한민국에서 육아빠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육아빠와 워킹맘의 솔직한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또한 새로운 ‘아빠 노릇’을 고민하는 이들을 만나봅니다. [편집자말]
아내는 비혼주의자 친구에게 미쳤다는 소리 들어가며 둘째를 낳았다. 언니를 똑 닮은 예쁜 여자 아기였다. 첫째 키우느라 거쳐온 길고 험난했던 24개월이 다시 '1일'로 초기화되었다. 엄청난 기쁨과 굉장한 막막함이 마구 뒤섞인 기분이었다.

조리원에 2주 머무는 동안 아빠만의 육아원칙을 세웠다. 큰 아이 키울 때 제대로 못 해준 부분을 이번에야말로 야무지게 챙겨주겠다는 야심 찬 의지가 차올랐다. 자잘한 걸 빼면 골자는 세 가지였다.

첫째가 엄마와 안 떨어지려 할 테니 둘째는 건넛방에서 아빠가 데리고 자기, 회식에 가급적 참석하지 않고 빠질 수 없는 자리라면 1차만 간단히 끝내고 8시 안에 귀가하기, 매일 육아기록 남기기.

친한 선배에게 계획을 알렸더니 "사회생활 포기했냐? 괜찮겠어?" 소리가 대번에 날아들었다. 워낙 막역한 사이라 "형이 술 안 먹고 놀아줘" 하고 넘겼지만 갓 득녀한 남자에게 육아보다 더 우선시되는 항목인 '사회생활'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남자로 태어나면 반드시 직업에 헌신하고 동료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 사회적 성취를 이루어야만 하는 걸까? 에라, 모르겠다. 일단 아이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신생아를 데리고 자다

 아기 숨소리가 곱다
 아기 숨소리가 곱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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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원에서 퇴소한 첫날,

"걱정하지 마. 애 한두 번 재워보나. 푹 자둬."

호기롭게 외치고는 신생아를 데리고 제2의 안방으로 개조한 책방에 들어갔다. 아이는 젖을 먹고 금방 잠들었다. '뭐야, 의외로 순조롭네.' 불 꺼진 방에서 인터넷 뉴스를 뒤적거리다 눈을 붙였다. 잠이 들락 말락 하는데 "으애앵! 으애앵!" 가냘프고 애처로운 목소리가 옆에서 흘러나왔다.

'맞다! 갓난쟁이는 자주 먹고, 싸고, 깨지!'

즉각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아내가 유축해둔 젖병을 뜨거운 물에 넣고 데웠다. 그 사이 팬더 새끼처럼 여리고 조그만 둘째는 쉬지 않고 울었다. 안방 문이 열렸다. 놀랍게도 아내가 안 자고 있었다. 큰 놈이 장난치고 떼쓰는 바람에 몇 분 전에 겨우 잠들었다고 했다. 혼이 나간 듯 퀭한 얼굴로 아내는 젖을 먹였다. 아깝지만 유축한 모유는 버렸다.

"자기야, 젖이 모자라네. 다음 간격에는 분유 타서 먹여줘."

세균 감염 예방을 위해 미리 물을 끓이고, 끓였다 식힌 물을 다시 데워 분유 타는 데 썼다. 소독기에 젖병과 젖꼭지를 분리하여 넣어두고, 수유 끝난 아내에게 둘째를 받아 재웠다. 그날 나는 네 번 기상했다. 출근길 발걸음이 퇴근길처럼 무거웠다. 카풀 차 안에서 처음으로 양해를 구하고 뻗어버렸다. 코까지 골았다.

앞으로 이 생활을 지속해야 한다니 막막했다. 3일 치 피로가 하루 만에 쌓였다. 스무 살 때는 술 마시며 날밤 지새워도 몇 번 꾸벅꾸벅 졸면 말짱했는데, 30대는 회복이 더뎠다. 헉 소리가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왔지만 "자기 덕분에 정말 푹 잤어. 고마워"라며 활짝 웃는 아내를 보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야간 돌봄은 초반이 최고 난이도였다. 둘째는 나날이 잠에서 깨는 횟수가 줄고, 간격도 늘어났다. 꿈꿀 여유가 생겼다. 또 한 가지 얻은 게 있다면, 둘째와 친해졌다. 첫째는 엄마 의존증이 있었다. 그러나 둘째는 아빠 냄새를 기억해 엄마만큼이나 아빠를 편안해 한다. 밤새 곁을 지킨 보람이 있었다.

직장에서 미운털 안 박히게 살아남기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은 그때, 오직 한 번 뿐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은 그때, 오직 한 번 뿐이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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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피곤해 보이네. 연구회 회식 올 수 있나?"
"아기가 어려 참석이 힘들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애 어릴 땐 다 그렇지 뭐. 다음에 보자고."

모임 거절이 일상화되었다. 인간관계를 놓치는 만큼, 직장에서는 최대한 지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가급적 말은 줄이되, 적절한 반응을 잊지 않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평온을 유지했으나, 속마음은 변기 위에 걸터앉아 쪽잠이라도 자고 싶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괜히 눈치가 보였다. 아이 때문에 일을 소홀히 한다는 인상을 주기 싫었다. 선배들이 술 얼큰하게 취하면 우스개로 꺼내던 "내 때는 말이야. 출산휴가가 어딨어. 쉬란다고 다 쉴 수 있나. 살기 좋아졌어" 같은 말들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굳이 별난 티 내지 않기 위해 평소처럼 지냈다.

무던하게 있으니, 주변에서도 출산을 너무 의식하지 않고 대해줬다.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누군가를 특별히 배려해야 하는 상황은 짧아야 했다. 초반에는 기꺼이 도와주겠지만, 불편함이 장기화되면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이런 식으로 근무 시간을 그럭저럭 버텼다. 난관은 반복되는 퇴근 후 모임 거절이었다.

"남직원 친목회 날짜 잡힌 거 알지? 삼겹살에 소주 걸치고, 스크린 골프 한 판 하자고."
"저... 그게 아내가 감기 걸려서 먼저 들어가 보려고요. 다음에 꼭 갈게요."
"집사람 아프면 가봐야지. 가서 봉사해."

밥자리, 술자리가 어찌나 많은지 갖은 핑계를 대야만 했다. 멀쩡한 아내를 아픈 사람 만들고, 여행 중이신 장모님을 손님으로 둔갑시키고, 굳이 어린이집 하원을 내가 하며 일찍 집에 왔다.

챙겨주려는 사람에게는 미안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이 둘을 건사하랴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아내를 구할 수 없었다. 더불어 집안일 처리와 새벽에 둘째를 보기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체력관리를 해야 했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고막염과 외이도염이 심해져 술을 절대로 마시면 안 되는 몸이 되었다. 공식적으로 술 못 마시는 인원으로 분류되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가 찾아왔다. 죽지 않을 정도의 질병이 고마운 아군이 되었다.

5개월간 회식을 7번 건너뛰고, 3번 참여했다. 물론 그 경우에도 8시 뉴스가 방송되기 전에 현관문을 두드렸다. 뒤에서 어떤 수군거림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면전에서 불쾌한 언사를 듣지 않았다. 이만하면 선방했다고 자축했다.

매일 육아 기록하는 남자, 그 이름은 아빠

 급하면 한의원 약봉지에 초고를 갈겨 쓴다.
 급하면 한의원 약봉지에 초고를 갈겨 쓴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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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 마침내 집이 조용해지는 시간이다. 아내와 큰 아이의 대화 소리가 잦아들고, 둘째는 이불에 싸여 세상에서 가장 예쁜 모습으로 꿈꾼다. 긴장이 풀리며, 의식이 바닥으로 녹아내릴 것만 같다.

여전히 허리에는 아기띠가 묶여있다. 품에서 잠든 둘째 내려놓고 아직 풀지 못했다. 연결 부분이 벨크로, 일명 찍찍이로 되어 있어 해체하면 종이 천 장이 동시에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기띠를 벗기 위해 까치발로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 작은 방에 들어간다. 두꺼운 카디건을 이중으로 두르고 흡음재로 사용한다. 조심조심 아기띠를 풀고 나면 아빠에게 주어진 일과는 모두 종료된다. 24시간 중 유일하게 주어지는 자유 시간, 육아 일상을 기록으로 남긴다.

첫째 키우며 사진과 동영상 찍을 줄만 알았지, 문장으로 그날의 기쁨과 아픔을 풀어놓지 못했다. 그게 못내 아쉬워 둘째 낳고는 매일 시인지 육아일기인지 구분이 안 가는 글을 썼다.

이불 덮고 스마트폰 밝기를 최저 수준으로 낮춰 쓰기도 하고, 첫째가 그리다 내팽개친 스케치북 귀퉁이에 적기도 했다. 몸살 걸려 못 쓴 날에는 간단히 메모해뒀다가 회복하고 다시 채워 넣었다. 꾸역꾸역 쓴 글이 벌써 130편을 넘겼다. 나중에 딸들이 줄글 읽을 나이가 되면 책으로 묶어 주려한다.

남자끼리 육아 수다 떠는 일상을 꿈꾼다

여기까지가 29개월, 5개월 딸내미 둘 키우는 아빠의 이야기이다. 내가 이러고 사는 걸 아는 사람들은 반응이 두 가지였다. 미쳤다거나, 대단하다거나. 그러나 이 모든 업적은 아내가 첫째를 낳은 직후부터 지금까지 당연하게 해오던 것들이다.

자기 일 사랑하는 그녀는 엄마니까 자의반 타의반으로 육아휴직을 했고, 입덧 기간에 고기를 입에 대지 못했다. 출산 전날까지 출근하였으며, 무리하다 허리 인대가 늘어났다. 그 몸으로 남편이 출근한 사이 집안 청소를 하고 젖먹이를 돌봤다.

그밖에 여자라서 말없이 감내하는 슬픔이 짧은 글로 담아내지 못할 만큼 무수히 존재하지만, 그 일부를 따라 하는 남편은 칭찬받는 아빠가 되었다. 나는 부모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그냥 아빠였다.

육아하는 아빠가 특별대우받는 사회를 근심한다. 주중과 주말,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남편을 가정에서 멀어지게 하는 직장 풍경을 본다. 아빠가 자녀 얼굴을 못 보는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아들 딸 얘기로 남자들과 수다 떨고 공감하고 싶다. 아빠가 명칭에 걸맞게 아빠로 살려면 집에 머물러야 한다. 아빠들을 집으로! 이 간단한 구호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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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교육, 그림책, 육아, 일상 주제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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