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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증발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동년배들이 치열하게 고군분투 중인 정글 같은 사회에서 '미생' 노릇을 할 사기에 석사과정으로 입학했던 2015년은 정말 징그러웠다.

지금이 2018년이니 불과 3년 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뭐하나 특별히 이룬 것은 없는 듯한데 미간에 지렁이가 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도 달라진 점 하나. 20대 때 기록하지 않아 잃어버린 추억에 대한 반성으로 뭔가를 끄적거리기를 시작했다는 것. 그 파편들을 나름 모으고 모았더니, '내 천 자(川) '가 패이기 시작한 30대 중반 초입에서 마침내 글 형태의 구색을 갖춘 듯하다. 더 늦기 전에 날선 조각들을 다듬어 액자화하고자 이 지면을 빌려 기록하고자 한다.

2015년 늦깎이로 입학한 석사과정에서 1학기를 마치기 무섭게 학업을 중단했다. 대학원 생활을 막 시작했는데 휴학해도 괜찮겠냐는 주변의 걱정, 그리고 아주 가끔, 그 걱정 이상의 핀잔이 들려왔다. 지인들의 걱정 어린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면서도 마음 속에 굳은 결심이 섰다. 그 해 8월, 모든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비행기에 몸을 실어 '아름다운 미소의 나라'로 불리는 태국으로 훌쩍 떠났다.

꽤 오래 전 웃어른 말씀은 곧 법이라 믿던 학창시절, 집안 어르신의 조언대로 국제외교관이 되면 어떨까 상상했던 적이 있다. 유엔 직원을 상징하는 파란색 여권을 정장 안쪽 주머니에 고이 모셔두고, 24시간 안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남미로, 세계 곳곳을 누비는 초국가적 엘리트의 삶을 동경했었다. 물론 이 말고도 언급하기 부끄러운 꿈의 목록이 존재했다. 그 가운데서 국제기구는 늘 상위권이었다. 

독일, 이탈리아 아닌 태국 택한 이유

2002년 아시아 축구 변방국이었던 한국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다. 당시 전국을 빨갛게 물들인 남녀노소의 인파 속에서 나는 불특정 다수와 울고 웃으며 '꿈은 이뤄진다'는 메시지를 얻었다. 당시 사람들 모두가 그랬다. 마치 IMF 금융위기 때 야구선수 박찬호의 투구를 보며 희망의 싹을 틔웠던 그 시대 사람들처럼 말이다. 여기에 "두드리면 열린다"는 모태 기독교인의 신앙까지 버무려져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형성된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비행기 타고 세계를 누비는 즐거움보다 그로 인해 배출되는 탄소발자국에 대한 염려가 앞선다. '멋'에 빠져 살던 당시 사춘기 소년은 쓰디 쓴 사회화 과정을 통해 숙성되어갔다. 그러다 20대 시절 자괴감에 빠져 까맣게 잊고 있던 국제기구의 꿈이 늦게나마 이뤄졌다. 물론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고작 인턴(intern)이었지만, 과거의 목표가 현실화 되었을 때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태국 방콕
▲ 유엔 에스캅 국제회의장에서 태국 방콕
ⓒ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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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에 적힌 내 나이 숫자는 '1984', 인턴 합격의 기쁨은 현실의 냉혹함이 삼켜버렸다. 국제기구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에서 연수받은 대다수는 20대 초·중반의 학생들, 드문드문 섞인 20대 후반의 동생들이 있으나 그리 위안되진 않았다. 맞다, 자격지심이다. 처음 겪은 감정은 아니었다. 이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유식하고 경험 많은 '어린 동기와 선배들'에게 한 풀 기가 꺾였었다. 더 과거로 시계바늘을 돌려보니, 3년 4개월의 군 복무를 마친 직후 인터넷을 통해 형성된 취업(?) 스터디 멤버들이 떠올랐다. 하나같이 똑똑한 동생들과의 함께 한 시간을 회상하다 불연 듯 드는 생각.

'나 여태 뭐하고 산 거지.'

시간을 복기할수록 내 영혼은 쥐구멍을 향해 내달리는 듯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지식도 경험도 풍부한 동생들 앞에서, 내 에고(ego) 마지막 한 조각조차 무너지기 전에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다. 어디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을까. 석사과정 2년 안에 졸업해도 어차피 또래보다 사회진출이 뒤쳐진 것은 자명한 사실. 무엇을 시작하든 내 출발선은 이미 한참 뒤에 있으니 그깟 한 두 해 천천히 거닐어도 괜찮을 거라고, 인생 경로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내가 간 곳은 유엔 기구 가운데 '리우 3대 환경협약' 중 하나라 불리는 사막화방지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Desertification, UNCCD)이다. 사실 이 기구의 본부가 있는 독일 본(Bonn)이나 유엔 식량농업기구(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FAO) 본부가 위치한 이탈리아 로마처럼 지원자 선호도가 높은 곳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1순위로 꼽는 경쟁지는 이상하리만치 마음 가지 않았다. 과거 주제 넘게 기고만장했던 그때의 나라면 모를까, 서른한 살 군복을 벗은 후 진로 고민으로 허송세월하다 대학원에 들어간 이래 '빛 좋은 곳'은 일단 피하고 보자는 것이 삶의 모토가 되었다. 

태국 코창(Koh Chang)
▲ 여행지에서 태국 코창(Koh Chang)
ⓒ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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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매우 좋아한다. 어디를 가든 지역 음식을 선택하며 이국적인 맛을 음미한다. 현지 조상의 영혼이 깃든 고풍스러운 건축물에 반하고, 후대의 미래지향적 의지가 돋보이는 최첨단 복합시설 건축물에 쉽게 매료된다. 이것이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첫번째 이유다. 두 번째는 '일상에서의 탈출'이다. 평소 같으면 일하거나 공부하고 있을 텐데 그 시간에 놀고, 먹고, 자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 눈에는 동남아시아만 들어왔을 수도 있다. 파견 후보 지역 가운데 태국 방콕이라면 주변 눈치 안보고 베짱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프랑스 18세기를 대표하는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행복은 꿈에 지나지 않고 고통만이 늘 내 곁에 붙어 있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고백하건데 내 태국 여정의 시작은 국제기구 파견을 내세운 현실도피성 줄행랑이었다. 국제환경, 지속가능성... 이런 말은 소개하기 좋게 갖다 붙이는 미사여구일 뿐이다. 무저갱으로 추락 중인 당시 상황 속에서 심폐소생을 해보겠다고 동아줄을 겨우 부여잡은 여행을 정리하는 차원이니 너무 귀담지 마시길. 그래도 '여행지에서 마주친 지속가능성 이야기' 본론에 앞서 개인 민낯을 까발린 진솔함만큼은 애정 어린 눈빛으로 봐주시길.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구를 위한 착한 여행기' 공모전(에너기후정책연구소)에 채택된 작품으로, 오마이뉴스를 통해 최초 공개되었습니다.



태그:#지속가능한여행, #지구를위한착한여행기, #국제기구인턴, #사막화방지협약, #환경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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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프리랜서 기자/에세이스트 前) 유엔 FAO 조지아사무소 / 농촌진흥청 KOPIA 볼리비아 / 환경재단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 유엔 사막화방지협약 태국 / (졸)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 (졸)경상국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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