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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없이 평등한 삶을 바라는 여성으로서 인생의 선배이자 엄마로서 두 아이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아들 한들아, 엄마에게 페미니즘을 선물해 준 사람은 아빠다. 놀랍지? 엄마의 삶을 바꾼 한마디를 꼽으라면 아빠가 내뱉은 '김 여사'라는 말이야. '김 여사'로 촉발된 부부싸움을 격하게 하다가 아빠가 엄마를 향해 "니가 페미니스트야 뭐야?"하며 쏘아 본 덕분에 페미니즘에 일자무식하던 엄마가 전투적으로 공부하며 페미니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거든.

그때는 엄청 짜증나고, 분해서 아빠가 꼴도 보기 싫을 만큼 밉고 그랬는데, 아빠가 그때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면 평생 페미니즘이 뭔지 모르고 살았을 생각하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아빠는 엄마의 은인이다.

듣는 아줌마 열 받게 하는 '김 여사'라는 말

 아줌마가 돼서 듣는 "아줌마, 김 여사" 소리는 너무 거슬리더라
 아줌마가 돼서 듣는 "아줌마, 김 여사" 소리는 너무 거슬리더라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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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하고 집으로 향하던 어느 날, 골목길에서 주차에 서툰 누군가가 여러 번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아빠는 지켜보기 지루하다는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어.

"거기서 꺾어야지. 아휴, 답답한 아줌마~ 김 여사가 따로 없네."

우리가 멈춰있던 곳에서는 운전자가 누군지 보이지 않았지만 아빠에겐 '운전 못 하는 사람 = 아줌마'라는 공식이 있었나봐. 엄마가 듣고 있자니 같은 아줌마로서 너무 기분이 나쁘더라. 사실 아줌마가 되기 전에는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던 말이긴 한데. 아줌마가 돼서 듣는 "아줌마, 김 여사" 소리는 너무 거슬리더라고. 그래서 엄마가 말했지. 듣는 아줌마 기분 나쁘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기분 나쁠 수 있겠구나. 미안하다. 네 기분까지 생각 못했다."

이런 반성의 대답을 기대하며 엄마의 불편한 마음을 표현했는데. 맙소사. 아빠는 이렇게 말했어.

"여자들이 운전 못하는 거 사실이잖아? '김 여사'는 많이 쓰는 일상어고, 남들은 그냥 사용하는 말에 왜 그렇게 예민해. 그런 말이 기분 나쁘면 세상 어떻게 사냐. 하여튼 유별나."

'김 여사'라는 단어가 흔히 쓰이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남들이 다 쓰는 말이라고 해서 불편함을 느끼는 엄마의 감정이 잘못된 걸까? 여성비하의 말을 웃으며 받아들이지 못하면 예민한 사람이 된다니.

엄마는 아빠가 여성혐오 발언을 했다는 사실보다 엄마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아빠의 태도에 더 격하게 화가 났다. 사과 한마디로 넘어갈 수 있었던 대화는 결국 고성이 오가는 큰 부부싸움으로 번졌어.

한들, 남들이 모두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분 나쁘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비정상이거나 예민한 사람은 아니야. 우리 사회에는 여성들을 비하하는 말이 참 다양하다. 공기처럼 너무 익숙해서 문제의식을 갖기 힘들 뿐이야.

운전 못하는 사람은 '김 여사', 명품가방 좋아하고 커피숍 즐겨 찾으면 '된장녀', 요즘은 남자들 눈에 좀 거슬리는 한국 여자를 몽땅 묶어 '김치녀'라고 하더라. 애 데리고 외식하는 엄마는 '맘충', 불평등한 구조를 지적하면 '메갈', '꼴페미'...

왜 여자들만 더 욕을 먹는 걸까?

여자들이 운전을 못한다는 말은 왜 이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걸까? '여자라서' 운전에 서투르다는 게 사실일까? 교통법규를 무시하거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사고를 내는 가해자는 여성일 거라는 인식이 만연한데 정말 그럴까? 글쎄.
남성과 여성의 교통사고 발생건수를 비교해보면 남성 운전자들이 여성운전자들보다 월등히 많은 교통사고를 낸다.
▲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 통계 분석 남성과 여성의 교통사고 발생건수를 비교해보면 남성 운전자들이 여성운전자들보다 월등히 많은 교통사고를 낸다.
ⓒ 이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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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교통공단에서 발표한 교통사고 통계 분석을 살펴보자. 최근 2년간(2015~2016년)의 결과를 살펴보면 남성 운전자가 74만 건 이상의 교통사고를 내는 동안 여성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30만여 건의 사고를 냈을 뿐이다. 남성 운전자에 의해 사망한 사람들은 여성 운전자에 의해 사망한 사람들보다 무려 8배 가까이 많아.

공단의 발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통계에서 여성의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전체의 20%를 넘긴 적이 없어. 여성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내서 사람이 사망한 경우도 전체 사망 건수의 12%를 초과한 적은 없고 말야. 남성 운전자 수가 많으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e-나라지표에서 운전면허소지자 현황을 보면, 2016년 남자 운전자와 여자 운전자 비율은 58.6% 대 41.4%. 약 6대4야.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그렇게 많이 발생하는 남성들의 사고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인 양 넘어가면서 전체의 20%도 넘지 않는 여성들의 사고는 "역시 이번에도 김 여사" 하면서 부각된다는 사실 말야. 남자들이 내는 사고는 그러려니 하면서, 여자가 사고를 내면 욕부터 한단 말이지.

사회의 안전한 질서 유지를 위해 정확하게 꼭 집어서 한쪽 성별에게 운전 똑바로 하라고 경각심을 갖게 하고 싶다면 그 대상은 여성들이 아니야. 난폭운전이나 음주운전 등 잘못된 운전습관으로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성별은 남자들이 훨씬 많은데 왜 수치심, 열등감, 자기검열은 여성들의 몫이 되었을까? 죄 없는 아줌마들은 왜 운전대만 잡으면 욕을 먹을까.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를 '감히' 여성들도 운전한다는 사실이 탐탁지 않은 걸까? 자신들의 도로를 '감히' 침범해서 괘씸한 걸까? 왜 그렇게 여자들을 욕하고 싶어서 안달일까.

무슨 일이든 그렇겠지만 운전도 많이 해본 사람이 더 잘 하는 거야. 여성 택시운전사가 이제 막 면허증을 딴 남성 운전자보다 운전을 더 잘하는 건 당연하잖아. 여성이라서 못하고, 남성이라서 잘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미숙하게 운전하는 시기를 거쳐 능숙한 운전자가 되는 것뿐이라고.

김 여사뿐이니? 사치하는 여자들은 된장녀, 김치녀 하면서, 능력도 안 되면서 빚을 내서라도 수준에 맞지 않는 좋은 차를 타고 싶어 하는 허영심 가득한 남자를 뜻하는 비속어는 왜 없을까. 카메라, 오디오, 낚시 등 자신의 취미 유지를 위해 거금을 투자하는 남자들의 소비 형태는 오히려 고급스러운 문화인 양 포장되기까지 한다.

술 먹고 별의별 짓을 다하는 남자들을 비하하는 단어는? 아, 술 먹고 취하는 여자는 '골뱅이녀'라고 하더라. 취한 여성을 타깃으로 성추행, 성폭행하는 남성들을 부르는 용어는 없지만 여성들은 취하는 것만으로 비하의 대상이 된다.

남자 밝히는 여자는 '화냥년'이라 하면서 여자 밝히는 남자를 묶는 비속한 말은 왜 없을까.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를 뜻하는 '주색가'라는 말이 있지 않냐고? '화냥년'에 비하면 이 얼마나 낭만적인 단어인지. 헛웃음이 난다.

이런 차이를 여기에 열거하면 끝이 있을까? 분명,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이 부족한 것들도 있는데. 남자들은 개인의 문제, 개인의 무능함이 되는 반면 여자들은 집단의 문제, 집단의 무능함으로 비하되는 경우가 많아.

정말 황당한 건 뭔 줄 아니? 아빠가 답답해하며 '아줌마'라고 부른 그 서툰 운전자는 심지어 '남자'였단다.

여성혐오의 말들은 명백한 폭력이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니? 여성비하 더 나아가 여성차별은 이 사회에서 뿌리 깊어. 여자라는 이유로 비하되고, 여성의 '성'은 대상화 되고, 만만한 게 여자구나 싶은 사회야.

엄마는 네가 이러한 사회 구조 속 불평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으면 해.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원하는 사회라는 게 남자들도 똑같이 당하는 사회는 아니야. 서로를 혐오하는 사회라니. 이 얼마나 암울하고 슬픈 사회니.

그럼 엄마가 하는 말이, 이 사회에서 비난받을 사람들을 모두 이해하면서 다 함께 평화롭게 살자는 말일까? 아니야. 엄마는 그렇게 실현 불가능한 꿈을 꾸는 이상주의자는 아니거든. 욕먹을 짓을 했으면 욕먹고 살아야지.

다만 엄마는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인간적이길 바라는 거야. 남자들과 성별이 다를 뿐인 여자 '사람'으로 존중받길 바란다는 말이지.

운전 못하는 여자가 아닌 운전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비하의 말 ○○○이 있었다면 남자든 여자든 운전을 이상하게 하는 누군가에게 공평하게 사용하고 있겠지. 아빠가 "아휴 답답한 ○○○"라고 했다면, 엄마는 기분 나쁘지도 않았을 테고 아빠는 운전자가 남자란 걸 확인하고 머쓱해 하지도 않았을 거야.

사치하는 여자가 아닌 사치하는 '사람'에 대한 비하의 말이 있었다면 남자든 여자든 분수도 모르고 허영심에 찌들어 사는 누군가에게 공평하게 쓰이겠지.

여성차별이 없는 사회, 평등한 사회를 바란다는 말은 욕하지 말라거나 대단한 특권을 달라는 말이 아니야. 다만 인간적으로 동등하게 존중해 달라는 말이야.

한들, 이 사회는 남자에게 지나치게 관대하고 여자에게 지나치게 엄격하다. 엄마는 네가 남자인 너 자신에게 엄격하고 여자들에게 관대한 사람이 되었으면 해. 그렇게 해야 많이 기울어진 이 세상이 그나마 아주 조금이라도 균형을 찾아갈 테니까 말야. 그리고 더 나아가 여성들의 불편함에 대해 좀 더 섬세한 감수성을 키우며 조심스럽게 살았으면 좋겠어. 네가 던지는 사소한 말 한마디는 결코 사소하지 않아.

아빠가 '평범하게' 던진 한마디에 엄마는 '매우'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엄마의 불편함을 '유별나다' 평가한 아빠의 '무심함'에는 불편한 감정을 넘어 분노가 차올랐어. 기분 나쁘다는 엄마를 이해하기는커녕 손가락질 하다니.

아빠가 엄마를 향해 '쓸데없는' 걸로 시비 건다고 말하던 그때 엄마의 자존감은 산산조각 났고, 이 사회에서 완벽하게 소외당하는 기분이 들었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하다니. 엄마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처참한 기분이더라.

여자 인생은. 아줌마 인생은 원래 이렇게 무시당하는 일상을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건가. 진짜 그래야 하나. 너무 아프고 답답하고 쓸쓸했다.

불편하게 사는 것이 꼭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빠에게 엄마의 분노를 인정받지 못하고는 행복할 자신이 없었어. 그래서 엄마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말 한마디에 끝까지 싸웠지.

아빠는 엄마와 격렬히 싸운 이후 이제는 더 이상 '김 여사' 같은 여성혐오 발언을 하지 않는다. 아빠는 도저히 이해 못할 엄마의 분노에 공감하려 '노력'해왔어. 책도 읽고, 엄마와 대화도 충분히 나누면서 말야.

한들아, 세상에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쪽은 늘 약자들이란다. 네가 만약 타인이 느끼는 어떤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넌 이미 약자가 아니라는 의미야. 엄마는 네가 타인의 불편함 앞에 너무 당당하지 않길 바란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를 하지 않는 것. 그 불편함을 존중하며 사는 것.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사랑과 노력없이는 어려운 일이야. 매우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태도를 바꿔 엄마와 우리 가정을 더 행복하게 만든 아빠처럼, 너의 태도를 돌아보며 네가 속한 너의 사회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길 바랄게.

김 여사. 사소한 단어 하나가 엄마의 길을 바꿨다. 너에겐 사소할 수 있는 말이 누군가에게 비참한 기분을 안겨주는 상처의 말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주렴. 여성혐오의 말들은 명백한 폭력이다.


태그:#주간애미, #페미니스트 엄마, #엄마 페미니즘, #김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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