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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에 텐트를 치고 "박근혜 퇴진"을 요구할 때 수시로 일본대사관 앞을 지나다녔다. 이동거리가 짧은 다른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지나다닌 이유는 단순하다. 소녀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매번은 아니지만 가끔 소녀상을 촬영했다.

광화문광장에서 인사동을 오가는 길은 미국대사관 사이로 해서 삼봉로를 거쳐 우정국길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인사동사거리로 이동하는 게 가장 빠르다. 그러나 역사박물관과 시민열린공원 사이를 경유해 소녀상을 본 뒤 안국동사거리에서 인사동으로 들어가곤 했 다. 1월 27일은 상당히 추웠는데 그때도 비닐천막 안에서 대학생들은 소녀상을 지키고 있었다.
▲ 소녀상 광화문광장에서 인사동을 오가는 길은 미국대사관 사이로 해서 삼봉로를 거쳐 우정국길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인사동사거리로 이동하는 게 가장 빠르다. 그러나 역사박물관과 시민열린공원 사이를 경유해 소녀상을 본 뒤 안국동사거리에서 인사동으로 들어가곤 했 다. 1월 27일은 상당히 추웠는데 그때도 비닐천막 안에서 대학생들은 소녀상을 지키고 있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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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탄핵이 인용되고 난 뒤에도 여러 번 이곳을 지났다. 그리고 4월 4일 오후 5시 무렵 인사동을 가며 잠시 겨울옷을 벗은 소녀상을 촬영했다.

그때 상황은 오마이뉴스 기사 <아베의 딸이 위안부로 끌려가도 철거 운운 하나요?>에 이렇게 소개했다.

"잠시 차도로 내려서서 소녀상을 촬영하는데 묻지도 않고 TV카메라가 내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크게 개의치 않았으나 자세를 낮춰 최대한 카메라를 비껴나려 했다. 그들은 내 의도와 다르게 다시 내 모습을 담으려 했다. 그들을 피해 촬영하기가 어려워 그대로 2장의 사진을 촬영하고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한 사람이 다가왔다.

"일본 NHK방송사입니다. 취재를 하는데 인터뷰를 부탁합니다."

거절할 이유도 없고, 분명 소녀상과 관련된 질문이겠다 싶어 흔쾌히 응했다. 예쁘장한 기자가 말하자 처음 다가와 인터뷰 요청을 한 남자가 통역했다." - <아베의 딸이 위안부로 끌려가도 철거 운운 하나요?> 중


4월 4일 오후 5시, 인사동으로 향하던 난 소녀상을 촬영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해가 기우는 시간부터는 제법 쌀쌀했다. 이때 방송용 카메라가 촬영을 하는 각도를 피하려 했으나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소녀상을 촬영하는 내게로 향했다. 그들의 요청으로 인터뷰를 할 때서야 왜 그들이 의도적으로 카메라를 내게 향했는지 알게 됐다. 그냥 무심히 지나가는 행인이 아니라, 소녀상을 찾아 촬영하고 가는 모습을 본 그들로서는 소녀상지킴이로 활동하는 대학생들과는 다른 어떤 생각을 지녀 촬영까지 하는지 물었을 것이다. 어쩌면 소녀상을 철거하는데 동조를 할 정도의 세대로 보여서일 수도 있다.
▲ 소녀상 4월 4일 오후 5시, 인사동으로 향하던 난 소녀상을 촬영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해가 기우는 시간부터는 제법 쌀쌀했다. 이때 방송용 카메라가 촬영을 하는 각도를 피하려 했으나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소녀상을 촬영하는 내게로 향했다. 그들의 요청으로 인터뷰를 할 때서야 왜 그들이 의도적으로 카메라를 내게 향했는지 알게 됐다. 그냥 무심히 지나가는 행인이 아니라, 소녀상을 찾아 촬영하고 가는 모습을 본 그들로서는 소녀상지킴이로 활동하는 대학생들과는 다른 어떤 생각을 지녀 촬영까지 하는지 물었을 것이다. 어쩌면 소녀상을 철거하는데 동조를 할 정도의 세대로 보여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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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로 밝힌 인터뷰 내용 가운데 일부만 여기 더 인용하면 "부산의 소녀상도 철거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인가요?"란 질문에 제목 그대로 "입장을 바꿔 봅시다. 아베의 딸이나 일본인들의 딸이 끌려가 그런 일을 당해도 괜찮나요? 솔직히 말해서 일본인들의 딸이 아니라 대한민국 고위직들의 딸이 나라의 힘이 약해 그런 일을 당해도 가만히 있겠느냐 묻고 싶습니다. 어느 국가나 국가는 국민에 의해 존재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라 대답해줬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7일, 2년 전 진행된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 장관 직속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사실상 일본에 유리한 이면 합의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문에서 가장 큰 논란은 '불가역적 해결'이란 문구였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원래 이 문구는 우리가 일본의 사과가 뒤바뀔까봐 먼저 제안했는데, 합의문에는 이상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고 했다. 당시에도 외교부는 "표현에 문제가 있다"며 검토를 요구했으나 청와대가 이를 묵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 뒤 연 공동기자회견 당시 외교부 장관이었던 윤병세는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했었다.

당장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에 다시 위안부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 우려는 곧장 사실로 드러나며 일본 정부는 불가역적의 의미를 실제 그렇게 활용해왔다.

일본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27일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의 발표가 난 뒤 "한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변경하려 한다면 한일 관계가 관리 불가능하게 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 요구에 대해 그동안 일본 정부는 "불가역적(不可逆的)으로 인해 재협상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고노는 한·일간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양국 정부 간에 정당한 협상 과정을 거친 것으로, 합의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며 "한일간 위안부 합의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확인하고 공동 기자회견에서 밝혔으며, 같은 날 양국 정상도 전화 통화에서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내년 2월에 개최되는 평창 동계 올림픽 개회식 참석을 보류하기로 했다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발표가 29일 뉴스로 전해졌다. 그들의 반응을 보며, 난 지난 4월 4일 일본 NHK와 인터뷰 한 내용 중 일부를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일본이 압력을 가해도 된다는 법도 없고,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에 압력을 행사할 수는 없어야 됩니다. 그런데 억지를 부리면 그에 알맞게 대응할 수 있어야 비로소 국가가 국가다워지죠. 일본 대사가 맘대로 귀국을 하면 폐쇄를 시키고 다시 못 오게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나의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베 총리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참석을 보류한다면 우리 정부는 애써 아베를 초청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 대사가 일본으로 돌아간다면 대사관을 폐쇄해버리는 강수를 사용해야 한다.

대학생들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혹한과 혹서를 무릅쓰고 소녀상을 지켜오고 있다. 오며가며 그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며 수중에 있는 돈 얼마를 손에 쥐어주기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진실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퇴진을 외칠 때 찾아오셨던 한국산악연맹 이해동 선배께서 함께 있다가 이 모습을 보시고, "동생, 동생이 뭔 돈이 있다고. 나 같은 놈이 해야 될 일을…"이라며 학생들에게 억지로 얼마간의 돈을 쥐어주시며 말렸지만, "제가 광장에 나온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여기 학생들은 엄청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어떻게 미안하지 않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진정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국가로 세계에 인정받으려면 '외교적 문제'란 말로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가해자가 뻔뻔하게 나올 땐 단호하게 대응할 줄 알아야 된다.

'애국' 운운하며 일본과 미국에 매달리는 자들이 많은데 그들보다 당당하게 행동하길 바라는 국민이 더 많다는 사실을 정부는 알아야 된다.

4월 29일 광장에도 봄이 완연했다. 5월 1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광화문미술행동 100일간의 기록’전이 있어 서울에 간 길에 소녀상을 찾았다. 이때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이 ‘대선후보 한일합의폐기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었다.
▲ 소녀상 4월 29일 광장에도 봄이 완연했다. 5월 1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광화문미술행동 100일간의 기록’전이 있어 서울에 간 길에 소녀상을 찾았다. 이때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이 ‘대선후보 한일합의폐기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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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9일 오후 5시에도 소녀상 앞을 지나며 촬영했다. 이때 대학생들은 '대선후보 한일합의폐기 촉구 기자회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자리엔 기자들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대부분의 언론사가 외면했다.

4월 29일에도 늘 촬영하던 장소에서 소녀상을 촬영했다. 소녀상은 그저 하나의 조각 작품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엔 ‘과거를 잊는 국가에겐 미래가 없다’는 국민들의 분노와 각성을 촉구하는 염원이 담겨있다
▲ 소녀상 4월 29일에도 늘 촬영하던 장소에서 소녀상을 촬영했다. 소녀상은 그저 하나의 조각 작품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엔 ‘과거를 잊는 국가에겐 미래가 없다’는 국민들의 분노와 각성을 촉구하는 염원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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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8 한일합의폐기 전까지는 우리는 연중무휴! 포기하지 않는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 언제까지 기다릴까요. 적당히 하세요!"


이 학생들의 외침에 이제 정부가 대답할 차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소녀상, #2018 평창동계올림픽, #아베 신조, #고노 다로, #불가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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