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금강, 1894> 재연에 전봉준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김도현의 프로필 이미지.

▲ 그 무엇도 아닌, '배우' 김도현 뮤지컬 <금강, 1894> 재연에 전봉준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김도현을 지난 15일에 만났다. 브라운관에서도 언뜻 얼굴을 비추고, 그 잠깐의 순간에도 화면을 잡아먹는 배우이지만 그의 진가는 누가 뭐라고 해도 무대 위에서 드러난다. 김도현은 연기를 잘한다. 그 외에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구들은 그저 곁가지에 불과하다. ⓒ 성남아트센터


스스로 '대한광대'라 칭하는 배우 김도현. 소극장과 대극장, 연극과 뮤지컬, 주연과 조연을 오가며 가리지 않고 무대를 사랑하는 배우. 본인은 "너무 평범하게 생긴 게 콤플렉스다, 연기가 뭉툭하다는 얘기도 들었다"며 겸손해 했지만, 이 바닥에서 작품 좀 본 사람들은 안다. 김도현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지, 얼마나 다양한 매력을 지녔는지를 말이다.

공간의 크기에 좌우되지 않는 발성, 때려 넣듯이 관객의 귀에 정확히 박아 넣는 발음, 애써 꾸미지 않은 투박함으로 선 굵고 힘 있게 연기를 가져가면서도, 중간중간 섬세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사람. 모든 배우가 각자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김도현만큼 독보적인 자기만의 연기 영역을 개척한 남배우는 드물다.

그런 김도현에게 2017년은 참 다사다난한 해였다. 공들여 준비했던 대극장 뮤지컬은 재정 문제로 개막 하루 전에 공연이 취소되는 참사를 빚었다. 관객에게 무척 사랑받는 배역을 다시 소화할 기회를 잡았지만, 안타까운 사고로 인해 공연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조기 폐막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괴물을 잡으려다 괴물이 되어 버린 검사 역할을 무대 위에서 멋지게 소화했고, 척박한 환경 중에서도 초연 창작 소극장 뮤지컬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며 관객의 환호를 한 몸에 받았다.

롤러코스터처럼 위와 아래를 오고 갔던 그가, 이 2017년을 마무리하는 작품으로 뮤지컬 <금강 1894>를 택했다. 지난해 성남아트센터에서 성공적으로 초연을 치렀던 이 작품에 '전봉준' 역으로 캐스팅됐다. 지난 15일, 서울 남산아트센터 창작연습실에서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던 그를 만나 잠시나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초심을 되새기게 된 작품

 뮤지컬 <금강, 1894> 재연에 전봉준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김도현의 프로필 이미지.

▲ 작품을 고르는 기준 "제가 차기작을 결정할 때 '1번 조건'은 '지금 제가 있는 작품과 얼마나 다른가'이거든요. 덕분에 '요번엔 또 뭐하려고?'하며 궁금해서 저를 보러 오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옆집 오빠 같은 애가 뭘 하면서 놀려고 하나'하고요." 그의 차기작은 연극 <리차드 3세>이다. ⓒ 성남아트센터


본래 이번 <금강 1894>의 전봉준 역에는, 지난해에도 완벽에 가깝게 전봉준을 대변한 박호산 배우가 캐스팅되어 있었다. 캐스팅 발표 보도자료도 나오고, 심지어 티켓 판매도 오픈된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러운 스케쥴 변동으로 박호산 배우가 하차하고, 그 자리를 김도현 배우가 들어오게 됐다. 이렇게 중간에 합류하는 건 배우 입장에서 분명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 하지만 김도현은 오히려 "별로 고민하지 않고 결정했다"라고 한다.

"사실 진짜 초연 멤버는 저입니다! (웃음) 10년도 더 전에 가극 <금강>이 평양을 갔을 때, 그때 2004년이었나 의정부에서 먼저 짧게 공연했거든요. 그때 그 <금강>에 제가 추새꾼 역할로 출연했어요. 지금은 없어진 역할인데, 거기서 하늬 막 잡으러 다니는 악역이었죠. 그런데 일정 문제로 인해 평양에는 못 가게 됐고, 2005년에 평양에 갈 때도 다들 가는데 저만 다른 사정으로 인해 합류하지 못했죠. 진짜 아쉬웠었는데, 이번에 제의를 받게 돼서 엄청 기뻤어요. 전화 받고 2시간 만에 바로 하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결정한 작품이 거의 처음이죠. (웃음)

저에게는 좀 특별한 작품이에요. '가극'으로 분류되어 있었기에 제 필모그래피에서도 연극 쪽으로 분류되어 있기는 하지만, 제가 노래로 연기를 한 첫 작품이 가극 <금강>이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실질적인 뮤지컬 데뷔작은 이쪽일 수 있죠. 이 작품 제의를 받는 순간 '초심'이 떠올랐어요. 아내에게도 이 작품은 초심이라고 말했어요. (웃음) 아시는 것처럼, 지난해 하반기쯤부터 진짜 힘들었거든요. 마치 세상이 저를 향해 '배우 그만해!', '하지마!'라고 소리 지르는 것 같을 정도로요. 그런데 이 캐릭터에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고난 속에서도 자신이 가진 철학을 잃지 않는 게 너무 크게 와 닿았어요.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서, 다시 10년 전의 마음을 말씀해주시는 게 아닐까 싶었죠. (웃음)"

 뮤지컬 <금강, 1894> 재연에 전봉준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김도현의 프로필 이미지.

▲ 김도현의 도전 "최근에 살을 급격하게 찌웠다가 뺐다를 세 번 반복했어요. 주름을 만드려고요. 이렇게 하면 주름이 생긴다고 해서…. (웃음) 그러고나니 이마에 주름살이 3개가 생겼더라고요. 오랜만에 본 친구가 '형, 왜 이렇게 못 본 사이에 늙었어'하는데 전 기분이 오히려 좋더라고요." ⓒ 성남아트센터


참 힘들었던 와중에도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작품을 표현하는 이 배우를 향해 관객이 반응해줬다. 여기서 힘을 얻은 그는 흔들리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난 <금강>. 김도현은 작품을 맡은 뒤, 평소 친분이 두터운 박호산 배우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고민도 털어놓고, 여러 조언도 구했단다. "창작진하고 (박)호산 형님이 워낙 캐릭터를 잘 만들어 놓으셔서, 그런 점은 오히려 편하다"며, 새로운 연기 노선을 개척하기보다는 전봉준이라는 인물을 이해하고 그 캐릭터를 잘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극 중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에 고민했어요. 무술로 하면 곡선 위주의 권법이랄까요. 직선 위주의 때리기보다는 곡선으로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대단히 엄청난 노래를 하거나, 방대한 독백을 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우리 국민이라면 전봉준 장군에 대한 이미지가 다 있을 것이라고 믿었죠. 그게 잘 섞여지면서 좋은 매력으로 받아들지 않으실까 싶어요. 규정짓기가 참 그렇더라고요. 대신 '곡선의 호흡'에 집중했죠."

정권은 바뀌었지만, 작품의 힘은 그대로

 뮤지컬 <금강, 1894> 재연에 전봉준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김도현의 프로필 이미지.

▲ 연습실 분위기 "너무 좋아요. 작품따라 가나봐요. '우리가 하늘이다', '우리가 하나다', '우리가 똑같다'하는 얘기를 하다보니까요. 대본 보면서 몰입하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연습을 하든, 쉬는 시간을 갖든, 심지어 끝나고 중간중간 저녁 시간에도 그 정서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진짜 동학군들 분위기 같아요. (웃음)" ⓒ 성남아트센터


사실 전봉준이라는 인물은 <금강 1894>에서 굉장히 상징적인 인물이다. 동학농민운동을 이끄는 '총대장'이며, 이 혁명의 '인내천' 사상을 그대로 압축해놓은 듯한 캐릭터. 작품 내에서 전봉준은 올곧고, 흔들림 없는 신념의 소유자이다. 분명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이기에 큰 매력을 느낄 순 있지만, 혁명의 '깃발'로 존재하기 때문에 약간 평면적이라는 아쉬움도 동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김도현은 자신이 연기하는 전봉준에 푹 빠져 있었다.

"저는 오히려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완벽하게 1인 2역이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위장하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극명하게 나뉘어져 있는 게 신기하게 다가왔어요. 대본에도 그렇게 나와요. 처음 리딩하는 데 1막에서 처음 등장할 때 '전봉준'이 아니라 '보부상'이라고 써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전 당연히 제가 아닌 줄 알았죠. 그런데 보부상 차례가 되니까 모두 저만 보고 있는 거죠! '아, 그 보부상이 전봉준입니다'라고 해서 그때서야 '아!'했죠. (웃음) 또, 주변에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구수하고 짙은 사투리를 가지고 가면서, 부패한 고관대작 앞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고, 본인도 고귀한 사람인 것 같은 언어를 구사하잖아요.

실존 인물 '전봉준'이라는 분을 알아가면서 되게 뭉클한 순간들이 많았어요. 이 분에 대해서 세세한 것까지는 몰랐는데 제 나이에 돌아가셨고, 특히 제 생일날 체포를 당하셨더라고요. 백몇십년 전에 저 정도의 나이에, 저 정도의 삶을 사신 분이 이렇게까지….  물론 역사 속에 그렇게 살아가신 분들이 많죠. 독립투사들도 있고, 다 마찬가지이지만…. 저는 고작해야 촛불을 드는 정도까지밖에 못했거든요. 그래서 더 창피했고, 이 분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기 위해 교집합을 지금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작품 안에만이 아니라 작품 밖에도 또 하나 있었다. 지난해 <금강 1894> 초연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그리고 촛불의 바다와 맞물려 거대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1894년 동학혁명운동과 2016년 촛불혁명이 맞물리며 보다 많은 사람을 무대 앞으로 끌어모았고,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정권은 바뀌었고, 시민들은 각기 다른 기대를 품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무대에서 전봉준을 표현하기 위해 이토록 적극적으로 파고들고 있는 배우의 입장에서는 이 시즌에 <금강 1894>를 올리는 게, 관객에게 작년만큼 어필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될 법하다. 그러나 이는 기자의 기우였다.

김도현의 전봉준 지난 24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금강 1894> 공연의 커튼콜에서 전봉준 역의 배우 김도현이 노래하고 있다.

▲ 공연 기간에 대한 아쉬움 지난 24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금강 1894> 공연의 커튼콜에서 전봉준 역의 배우 김도현이 노래하고 있다. "작품이 너무 짧아서 진짜 아쉬워요. 지방 투어라도 어떻게 좀 안 될까요? 작년 멤버들도 엄청 아쉬워하고 있는 걸 제가 또 잘 알고 있거든요. 다음엔 (박)호산 형님하고 더블로라도 좀…. (웃음)" ⓒ 곽우신

"<금강 1894>는 동학 얘기잖아요. '1894년에 있었던 동학의 얘기가 과연 지금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봤을 때, 결국 작품의 힘에 달려 있는 거더라고요. <레미제라블>도 프랑스 혁명 얘기이지만 지금도 계속 사랑받잖아요. 크리스마스 날 <레미제라블>을 보러 가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이 연말 시즌에 <금강 1894>를 보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크리스마스 날 한옥마을 가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크리스마스에는 이런 걸 봐야해, 이런 걸 해야 해'라는 건 오히려 편견이죠. <금강 1894>에는 사랑이 있고, 갈등이 있고, 절정-클라이맥스가 있고, 인물 간의 갈등과 아름다운 노래, 화려한 군무 등 이 모든 것들이 있어요. 그저 한복을 입고, 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뿐인 거니까, 편견을 갖고 봐주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궁금증을 가지고 오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작년 초연 때는 촛불 때문에 분위기가 또 달랐죠. 무대 작품은 시대의 이슈를 다루기도 하고, 그 작품이 올라갈 때의 동시대성을 가진 것도 분명하죠. 무대 예술를 다루는 데 있어서 동시대성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동시대성에만 의존하면 그건 다큐멘터리이지 예술 작품은 아니잖아요. 극적 요소들도 잘 갖춘 작품이고 전반적인 퀄리티도 잘 갖췄기 때문에…. 현실과 무대의 동질감뿐만 아니라 다른 재미도 충분히 느끼실 수 있으리라 확신해요.

저는 '세상은 반드시 변할 것이다'라는 전봉준의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 울었어요. '변했나? 변할 건가? 변하겠나? 변하기 위해선 난 무얼 해야 하나'와 같은 물음표가 머릿속에 백만 개 띄우게 되더라고요. 그냥 변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잖아요. 확신인데…. 그 대사가 많이 마음에 와 닿아서 '울컥'했거든요. 작년에는 분명 촛불의 분위기 때문에 그런 포인트에서 관객 분들이 감동하셨다면, 지금은 작년보다 분명히 세상이 나아졌잖아요. '나아질 것이다'라고 얘기하는 작품인데, 작년에 그렇게 말했던 걸 조금 나아진 상태에서,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 시점에서 보면 또 그 느낌이 다를 것이라고 믿어요. '맞어, 전봉준의 말처럼 나아졌잖아'하고…. 모두 마음 고생하셨으니까, <금강 1894>를 보시면서 가슴 속에 따뜻함이라는 선물 하나 갖고 가셨으면 좋겠네요."

배우가 배우로서 존재할 수 있게끔

 뮤지컬 <금강, 1894> 재연에 전봉준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김도현의 프로필 이미지.

▲ 팬들이 지어준 별명 "<셜록 홈즈> 때부터 생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웃음) 사실 별명이 있다는 건 진짜 좋아요. 제 공연을 다 보고서 지어주신 거잖아요. 별명으로 불러주신다면 그게 '못난이'여도 좋고, '변태'라도 좋아요. 다만, 제 나름대로 장난치면서 애교를 피우는 건데…. 그런데 왜 저에게 이 인형을 주신 거죠? 잘 모르겠는데. (딴청) 하아…. 제가 그거 끼워맞추려고 얼마나 검색을 해보고 노력을…." ⓒ 성남아트센터


1977년에 태어나 만으로 40년을 살아온 김도현에게, 2017년은 뭐라고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해였다. 그러나 그는 이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2017년도 배우로 살았고, 2018년에도, 2019년에도 배우로 존재하고 싶어 한다. 스스로 '대한광대'라고 칭하는 것도,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관객을 웃고 울리는 '광대'를 자처하며 주변을 위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더 감정이입할 여지를 만들고, 무대 위에서 판타지를 만들며 사람에게 영감과 카타르시스를 불어넣는다. 선역과 악역을 모두 소화하면서 숨 가쁘게 달려온 그에게 이번 <금강 1894>는 인터미션과 2막 개막을 앞두고 갖는, 마치 1막의 피날레 넘버 같은 작품이다.

"저는 이제 기다렸던 나이가 됐어요. 엄밀히 말하면 아직 조금 부족하죠. 제 진짜 연기 인생은 지금부터 아니면 한 45살쯤부터라고 생각해요. 저는 예전에도 40대 역할을 많이 했어요. <셜록홈즈: 앤더슨가의 비밀>할 때도 대본상 셜록 홈즈가 40대 중반으로 설정되어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50살 되기 전까진 계속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 50대 초반까지의 역할을 더 많이 해왔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제 나이에 비해서 너무 나이 든 역을 하는 게 부담이었어요. 주변에 선배들도 '너는 마흔 넘어야 해', '넌 중년이 되어야 해'라고 그랬었고, 그때는 그런 말을 들으면 '아, 언제 그 나이가 되냐',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라며 고민이 많았죠. 이제야 제가 그때 생각했던 배우 나이가 된 것 같아서 반갑고, 당시 선배들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죠.

다만 간절히 원하는 게 하나 있다면, 제가 계속 연기생활을 할 수 있는 에너지원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배우 김도현이라는 존재가 계속 존재할 수 있게끔 하는 에너지들이요. 물론, 그 전제는 제가 작품 제작사들이 같이 일하고 싶은 배우, 관객들이 계속 보고 싶은 배우가 되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건 성실하게 연기하는 것 말고는 없잖아요. 외부 조건들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럴 때 답이 없어서 답답한 것도 있죠. 아이를 키우는 아빠이기 때문에 경제력도 무시할 수 없고요…. 무대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배우 하는 게 창피하지 않도록, 그런 사회적인 힘이 유지됐으면 좋겠고요. 그래서 이런 고민을 할 때 <금강 1894>를 만난 게 더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죠."

"고난 속에서도 자신이 가진 철학을 잃지 않는 게 너무 크게 와 닿았어요"라고 앞서 말했던 답이 어떤 맥락이었는지가 보다 명확하게 다가왔다. 매년 공연계의 거대한 시장 규모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성장은 정체됐고 그나마도 이익의 과실은 소수의 누군가에게 돌아간다. 너무도 번잡스럽고 시끄러운 외부 환경이, 좋은 연기를 위해 자기 노력만 하기에도 바쁜 배우를 제대로 연기할 수 없게끔 몰아간다. 그런 상황에서도 김도현은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달려갈 것이다. 아무리 거친 산야도 우직하게 돌파하는 짐승처럼, 강철의 투구를 쓰고 오직 자기 신념을 위해 돌진하는 기사처럼.

<금강 1894>를 떠나보낼 때, 전봉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냐고 물었더니 김도현은 "안녕히 가세요, 이제 편히 쉬세요"라고 답했다. 짧지만 굳이 별다른 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문장이었다. 지난 23일, 경기도 성남시 성남아트센터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한 <금강 1894> 무대 위에는, 흰 도포 자락에 죽창을 들고 새 시대를 향한 희망의 씨앗을 노래하는 그가 있었다. 마치 전봉준이 환생한 것 같은 그 모양 그대로의 배우 김도현이. <금강 1894>는 오는 26일까지 공연되며, 26일에는 네이버 생중계도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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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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