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밤이 깊어져도 사무실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밤이 깊어져도 사무실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 박정은

관련사진보기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노동시간이 긴 나라에서 직장인으로 견뎌온 사람들. 그들의 불만은 노동시간의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열악한 노동 환경과 강압적인 직장 문화 등 각종 악습이 직장인의 스트레스를 더하고 있다. 이러한 불만은 어느덧 정치권에 다다랐지만, 직장인의 삶은 여전히 그대로다.

"직딩들이여, 개미굴에서 안녕하신가?"

어떤 정책이든 일상과 괴리된 대책은 효과를 내기 어렵다. 직장이슈도, 그 이슈의 출구도 결국 일상에 발 딛고 있을 수밖에 없다.

직장인들의 안부를 묻는 책 <일개미 자서전>(구달 글ㆍ임진아 그림, 토네이도미란다그룹, 2017). 이 책은 지은이의 평범했던 '직딩' 시절 일상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 그는 신입사원일 당시 자신의 직장 생활을 '지긋지긋'했다고 회상한다.

광란의 야근 PARTY
 광란의 야근 PARTY
ⓒ 박정은

관련사진보기


"일단 업무량이 일개 신입 사원이 떠안기에는 해도 너무하게 많았다. 매일같이 야근 파티를 벌여도 일정은 조금씩 뒤로 밀렸고, 현장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걸어와 계산기 두들기다가 공장 세울 셈이냐고 나를 윽박질렀다" 56p 

이 책은 직장 이슈에 관한 정책적 시사점이나 의미 있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 다만 직장을 '개미굴'로, 직장인을 '일개미'로 표현하며 다른 '동료 일개미'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이를 위해 지은이는 자신의 '직딩' 시절을 도마 위에 올렸다. 순도 100%의 직장 생활을 옮긴 만큼 직장 이슈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특히 쉽게 읽힌다.

개미굴 속 일개미의 소소한 반항

그렇다면 지은이의 직장 생활은 안녕했을까. '공동체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동기 100여 명의 이름을 외우고, '선배와의 대화'를 빙자한 술자리에서 수직적 친목 쌓기를 터득한 사원 연수 프로그램이 지은이가 겪은 첫 개미굴 생활의 시작이었다.

한국의 수많은 일개미들의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과도한 업무량과 잦은 야근. 이 강압적인 직장문화 속에서 지은이의 소소한 반항이 시작됐다.

소소한 반항
 소소한 반항
ⓒ 박정은

관련사진보기


"예를 들면 차장에게 결재를 받으러 가서는 짝다리를 짚고 삐딱하게 섰다. (중략) 투피스 안에 블라우스 대신 캐릭터 티셔츠를 받쳐 입거나, 이어폰을 꽂고 에미넴을 들으며 두 귀를 막는 등 소심하기 짝이 없는 반항들이 이어졌다." 57p

지은이는 약 6년 동안의 '봉급생활자'를 졸업하고 현재 프리랜서 편집자로 활동 중이다. 직장 생활이 계속되면서 지은이의 소소한 반항은 나름 대범해지기 시작했다.

"중차대한 일이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만 휴가를 써야 된다고 그 누구도 정해놓지 않았다. 느닷없이 헌혈이 하고 싶어졌다거나, 컨디션이 영 안 좋거나, 하늘이 유난히 파랗다거나,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직원이 반나절쯤 쉬는 바람에 회사가 망했다는 뉴스는 들어본 적이 없다." 221p 

출근 후 헌혈이 가능한 날이라는 문자를 받은 그는 그렇게 반차를 내고 회사를 나왔다. 반차 사유는 '가사'였다.

나 하나쯤 쉰다하여 회사가 망하느냐.
 나 하나쯤 쉰다하여 회사가 망하느냐.
ⓒ 박정은

관련사진보기


일개미의 일상에서 보이는 노동 현안

직장 생활 6년이 지나서야 직원의 권리에 관심을 갖게 된 지은이는 세 번째 직장에서 처음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노조에 기여한 바는 미미했으나 노사가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적었다.

사무실 모습
 사무실 모습
ⓒ 픽사베이

관련사진보기


"건방져 보이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 없이 의견을 밝히고, 탐욕스러워 보이면 안 되는데 싶은 망설임 없이 권리를 주장했더니, 회사 생활이 조금은 더 견딜 만해졌다. 실제로 업무 환경도 조금씩 개선되었다." 229p 

노조활동을 시작한 일개미의 일상에는 각종 노동현안이 가득했다. 글쓴이가 속한 노조가 노사 간 단체협약을 새롭게 체결하면서 신설된 '탄력근무제'가 대표적이었다. 야근수당도 없이 법정 노동시간 한도인 68시간을 채우는 직장 현실 또한 최근 논의된 근로시간 단축 문제와 맞닿아 있다.

지극히 일상적인, 은근히 시사적인 <일개미 자서전> 

책 <일개미자서전>
 책 <일개미자서전>
ⓒ 박정은

관련사진보기


<일개미 자서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내용이 일상적이다. 쉽게 읽히지만 쉬운 글만은 아니다. 책의 내용은 지극히 일상적이어서 직장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만큼 책 속의 이야기는 최근의 직장 이슈와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여러 생각거리를 남긴다.

직장 이슈의 대안이 담기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시사적인 책 <일개미 자서전>. 다양한 직장 이슈가 논의되는 정치권의 탁상 위에 이 책 한 권쯤 놓여 있다면, 직장인의 현실은 조금이나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참이슈
 참이슈
ⓒ 박정은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참이슈 편집진의 브런치(https://brunch.co.kr/@kdy7118/2)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일개미자서전, #노동시간, #노동환경, #직장인, #반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