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최종 3차전 한국 대 일본 경기. 신태용 감독이 네번째 추가골을 넣은 염기훈과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16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최종 3차전 한국 대 일본 경기. 신태용 감독이 네번째 추가골을 넣은 염기훈과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 연합뉴스


신태용 감독이 축구대표팀이 숙명의 한일전을 완승하고 동아시안컵 일정을 기분좋게 마무리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지난 16일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3차전에서 일본에 4-1 역전승을 거뒀다.

한국은 승점 7점(2승1무)을 기록, 일본(6점·2승1패)을 제치고 동아시안컵 정상의 자리를 지켜냈다.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이 이끌던 지난 2015 중국 대회에 이어 대회 사상 첫 2연패를 차지하며 통산 최다우승국(4회)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동아시안컵 기간 동안 신태용호의 행보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였다. 대회 첫 경기 1.5군에 가까운 전력으로 나선 중국(2-2)전에서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무승부에 그치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이어 최약체로 꼽힌 북한전(1-0)에서도 상대 자책골로 겨우 신승하는 등 기대에 못미치는 모습의 연속으로 우려를 자아냈다.

최정예 유럽파가 빠졌고 국내파 선수들은 장기레이스를 마치고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였지만 어차피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 조건이었기에 큰 변명거리는 될 수 없었다. '마이 웨이'를 고집하는 신태용 감독에 대한 여론은 다시 급격히 나빠졌고, 사실상의 '단두대 매치'로 평가받았던 한일전마저 결과가 나빴다면 또다시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었다.

신태용 감독은 동아시안컵 출항을 앞두고 공식 기자회견에서 성적과 실험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욕심을 드러낸 바 있다. 일본을 꺾고 대회 2연패를 달성하는 것과, 내년 월드컵을 대비한 선수점검 및 플랜 B, C 실험까지 시도해 보겠다고 선언했다.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적지에서 홈팀 일본에 찬물을 끼얹고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결과적으로 약속을 지켰다.

이로서 한국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사이타마에서 거둔 평가전 승리 이후 무려 7년 연속 계속되던 한일전 무승 징크스를 시원하게 끊어냈다. 일본전 3골차 승리는 지난 2011년 8월 당시 조광래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이 일본에 0-3으로 완패를 당했던 '삿포로 참사'에 대한 6년 만의 설욕이다. 신태용 감독 개인으로서도 올림픽대표팀 시절이던 2016년 아시아 챔피언십(23세 이하) 결승전에서 일본에 당한 2-3 역전패의 트라우마를 씻어내는 설욕이었다.

성과와 과제 모두 보여준 신태용호의 동아시안컵

 16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최종 3차전 한국 대 일본 경기. 한국의 김신욱이 멀티골을 넣고 있다.

16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최종 3차전 한국 대 일본 경기. 한국의 김신욱이 멀티골을 넣고 있다. ⓒ 연합뉴스


공은 공, 과는 과대로 평가해야 한다. 신태용호는 동아시안컵에서 성과와 과제를 모두 남겼다. 대표팀은 지난 3경기에서 매번 극과 극을 오가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동아시안컵 우승이라는 성과는 결코 폄하되어선 안 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이 미화되거나 희석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한국축구의 진정한 목표는 내년 월드컵에서의 경쟁력이고 동아시안컵은 어디까지나 과정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번 동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제외하고 신태용호가 보여준 가장 큰 성과라면 역시 4-4-2 전술의 경쟁력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신태용호는 지난 11월 콜롬비아-세르비아와의 평가전부터 4-4-2를 주 전술로 채택했다. 강력한 전방위 압박과 빠르고 측면에서의 역동적인 역습으로 끊임없이 상대 문전을 뒤흔드는 플레이로 공수 양면이 모두 살아나는 효과를 가져왔다.

신태용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매경기 상대에 따라 다른 맞춤형 전술을 가져갔는데 가장 중요한 일본전에서 다시 4-4-2 카드를 꺼내들었다. 에이스인 손흥민과 기성용이 빠졌지만 국내파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한국보다 한수위 전력의 팀들을 상대해야 하는 월드컵에서 한국이 어떤 보여줘야 할지 힌트를 남긴 장면이다.

국내파 선수들의 재발견도 빼놓을 수 없는 수확이다. '전북 듀오' 이재성과 김신욱의 활약이 특히 돋보였다. 이재성은 유럽파가 빠진 한국대표팀의 실질적인 2선 에이스로 활약하며 측면과 중앙을 넘나들며 위력적인 공간침투와 경기조율 능력을 보여 현재 K리그 최고의 선수다운 능력을 과시했다. 잠시나마 전성기 이청용과 박지성의 데자뷰를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대표팀에서는 조커로만 활용되었던 김신욱은 동아시안컵에서 주전 공격수로 중용되며 그간의 한풀이를 보여줬다. 이전까지 A매치 38경기나 나서고도 단 3골에 그치며 3년 10개월 가까이 무득점에 시달리던 김신욱은 이번 동아시아대회에서만 3경기 3골 1도움을 터뜨리며 팀내 최다득점자에 등극했다.

특히 A매치 첫 멀티골을 작렬한 일본전에서 특유의 제공권을 활용한 헤딩 동점골은 물론이고 뛰어난 위치선정과 슈팅능력으로 승리에 쐐기를 박는 세 번째 골을 성공시킨 장면은, 김신욱이 세간의 편견과 달리 발재간과 연계능력도 갖췄다는 것을 대표팀에서 처음으로 증명해낸 순간이기도 했다. 신태용 감독은 이번 대표팀에서 김신욱을 중국전 원톱에 이어 일본전에서는 이근호와 함께 투톱으로 기용했고 북한전에서는 교체로도 활용하는 등 이전 감독들과는 달리 최대한 다양한 방식으로 점검했다. 향후 손흥민, 황희찬, 석현준 등 유럽파 공격수들과의 경쟁에서도 가능성을 보여준 장면이다.

이외에도 북한전에서 선발 원톱으로 출전하며 사실상 결승 자책골을 끌어낸 진성욱도 '제2의 이근호'를 연상케할 만큼 폭넓은 활동량과 저돌적인 침투능력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주세종은 기성용이 빠진 이번 대표팀에서 정우영과 함께 중원을 책임지며 날카로운 침투패스를 여러 차례 찔러주는 역할을 소화해냈다. 김민우는 측면에서 수비수와 윙어를 넘나들며 멀티플레이로서의 경쟁력을 보여줬다.

장기간 계속되던 원정 무승 징크스를 깨고 신태용호 출범 이후 첫 우승컵을 들어올린 것은 선수단의 사기와 자신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만하다. 한국축구는 지난 월드컵 예선 역대 최초로 원정 무승이라는 수모를 기록한 데 이어 신태용호 출범 이후에도 원정 약세가 한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동아시안컵을 통하여 북한, 일본전 2연승으로 지긋지긋한 원정 징크스를 깨뜨렸다. 특히 지난 월드컵 조추첨 이후 내년 본선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득세하던 분위기에서 동아시안컵 우승은 최근 손흥민 등 해외파들의 맹활약과 맞물려 한국축구에 아직 해볼 만하다는 최소한의 희망을 살렸다는 데 의의가 있다.

여기까지가 박수 받아야 할 부분이었다면 실망스러운 장면도 분명히 있었다. 이번 동아시안컵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던 '수비 조직력 완성'은 이번에도 물음표만 남겼다. 공격과 미드필드진이 플랜 B였다면, 수비진은 사실상 월드컵 본선에 나갈 베스트멤버를 그대로 데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심각했다. 대회 무실점을 목표로 내세웠으나 동아시아 무대에서 3경기 3실점을 허용한 수비가 과연 본선에서 독일이나 멕시코, 스웨덴같은 강팀들의 공격력을 얼마나 견뎌낼수 있을지 불안한 부분이다.

실점 장면 모두 수비수들의 위치선정과 판단미스에서 비롯됐다. 중국전에서는 2골 모두 측면에서 올라오는 상대의 크로스에 대한 대비가 되지않아 완벽하게 슈팅찬스를 허용한 상황에서 나왔다. 일본전에서도 주장 장현수가 상대에게 공간을 빼앗기고 급한 마음에 팔을 쓰다가 페널티킥을 허용한 장면은 월드컵같은 큰 무대에서는 결코 나오지 말아야 한다.

포백을 구사했던 다른 2경기와 달리 유일하게 무실점을 기록한 북한전은 스리백을 가동하는 3-4-3을 시도했지만 상대가 공격력이 약한 상황에서 큰 의미를 둘 수가 없었다. 오히려 선수들이 익숙하지 않은 전술에서 헤매는 모습을 보이면서 공격력까지 무뎌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월드컵에서는 상대에 따라 다양한 맞춤형 전술이 필요하다는 명분에는 공감하지만, 굳이 '북한을 상대로 스리백 실험이 의미가 있었나'하는 물음표를 해소해주지는 못했다. 한국은 북한전에서 유효슈팅 단 3개에 그치는 졸전을 펼쳤고 사실상 무승부에 그쳤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경기를 자책골로 운좋게 이긴 것은 말 그대로 '결과론'일 뿐이었다.

안정감있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부재도 아쉽다. 주세종이 공격전개 과정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고 정우영이 일본전에서 인생 경기를 펼쳤지만 두 선수 모두 포백을 보호해야 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위치선정이나 판단력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지난 11월 A매치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가능성을 보여준 고요한은 동아시안컵에서는 측면 수비수로 기용됐다. 대표팀의 중원의 핵으로 꼽히는 유럽파 기성용이나 구자철도 수비보다는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선수임을 것을 감안하면, 투쟁심을 갖춘 강력한 수비형 미드필더의 부재는 못내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공격 루트 역시 다양성 개선이 요구된다. 중국-북한전까지만 해도 한국축구의 중요한 득점루트인 측면에서의 크로스와 세트피스에서의 정교함은 크게 떨어졌다. 그나마 일본전에서는 크로스와 세트피스를 통하여 4골을 터뜨리며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어쩌다 한번 터지는 활약이 아닌 꾸준한 모습이 요구된다. 강한 압박과 활동량을 요구하는 신태용 축구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후반 '체력저하' 문제에 대하여 벤치의 적절한 선수교체와 경기운영 능력의 개선이 필요해보인다.

2017년 A매치 일정을 3승 4무 2패로 마감한 신태용호는 잠깐의 휴식기를 거쳐 내년초 해외전지훈련을 통하여 다시 월드컵 본선을 향한 대장정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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