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땅의 평범한 여성들을 강제로 전쟁터에 끌고 가 '위안부'라는 이름 아래 성노예로 만든 일본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고, 피해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졸속으로 체결한 한일위안부 합의의 폐기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전국 각지에 세워진(지금도 세워지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답사한다.

이는 '국가'라는 이름 아래 조직적으로 전개된 여성인권유린과 아직도 이를 공식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필자만의 평화적인 방법이며, 부끄럽고 잘못된 과거를 바르게 청산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이 사회의 여러 노력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단, 그냥 찾아다니기만 해서는 의미가 적다. 가능하면 소녀상이 세워진 지역의 역사성과 소녀상 건립이 갖는 의미, 소녀상의 모습과 상징성 등을 다양하게 알아보고 그 의미를 탐색하고자 한다(더불어 평화의 소녀상 답사를 넘는, 지역 답사의 의미도 꾀한다). - 기자말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는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기 위한 1인 시위가 진행중이다.
▲ 평화의 소녀상과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기 위한 1인 시위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는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기 위한 1인 시위가 진행중이다.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내가 소녀상을 찾아간 이유

필자가 소녀상에 관심을 가진 직접적인 계기는 부산 평화의 소녀상 건립 때문이다.

2017년 2월 어느 날, 대한민국 외교부가 부산시와 부산시의회, 부산 동구청에 공문을 내려 보내 일본 영사관 담장 옆 평화의 소녀상 이전을 촉구했다는 기사를 보고, 복잡한 분노와 감정이 섞인 마음으로 현장에 찾아간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외교부 대변인은 "어떤 압박이라든가 강요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부는 이러한 입장을 작년 말부터 수차 표명해 왔다"라며 "좀 더 분명하게 관련 지자체에 (소녀상 이전에 대해 지혜를 모으자는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서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무원을 비롯한 공직에 있어본 사람들은 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 보낸 공문의 내용이 비록 '권유'의 형식을 띠더라도 표현만 그럴 뿐, 사실상 명령이자 압박이라는 것을.

온갖 사건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이제 1년째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
▲ 평화의 소녀상 온갖 사건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이제 1년째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대한민국 외교부는 당시 학습지도 요령 개정 초안 공개를 통해 독도 영유권 도발을 한 일본에 대한 외교적 대응보다 일본 외교관을 한국에 돌아오게 하기 위한 소녀상 이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나 보다(하필 공문을 내려 보낸 날(2월 14일)이 일본이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 반드시 독도 영유권 표기를 하라는 학습 지도 요령 초안을 공개한 날이라니).

하여간 이 공문이 알려지면서 많은 비판이 일었고, 부산 동구청은 이전 계획이 없다고 못 박기도 했다. 이 해프닝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돼 평화의 소녀상이 제자리에 안착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2017년 12월, 다시 부산 평화의 소녀상을 찾았다. 좀 더 분명한 목적을 갖고.

부산 평화의 소녀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시민들의 정성으로 털모자, 털목도리를 착용하고 있다
▲ 평화의 소녀상 시민들의 정성으로 털모자, 털목도리를 착용하고 있다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부산 지하철 1호선 초량역 5번 출구 옆.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이 가장 먼저 들어와 전투를 벌이고 조선군을 전멸시킨 부산성, 바로 그 일대다.

부산성을 지킨 정발 장군이 부산성 군대와 주민들과 함께 죽음을 당한 일대. 왜군은 이곳을 거점으로 동래성을 거쳐 한반도 전체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하필이면 그 부산성 입구쯤에 해당하는 자리에 일본영사관이 들어앉아 있다. 지금은 성터의 흔적조차 없지만, 정발 장군의 동상만이 유일하게 그 자리를 증언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정발장군의 동상. 일본영사관 입구에 서 있다
▲ 정발장군 동상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정발장군의 동상. 일본영사관 입구에 서 있다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도로를 따라 주 부산일본영사관의 담장이 이어진다. 평화의 소녀상은 담장을 바라보며 의자에 차분하게 앉아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이 하나둘 잠시 지켜보거나 사진을 찍고 간다. 도로를 지나가는 버스나 승용차 안 사람들도 흘끔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영사관을 지키는 전경들이 담장 앞을 지키고 있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의 노력을 거쳐 지금은 말끔히 정리돼 있다.

현장에는 민주노총 부산본부 관계자가 소녀상 옆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고자 하는 1인 시위를 전개하고 있었다. 올 9월부터 담당자들이 날짜를 나눠 번갈아가며 1인 시위를 시작했고,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 가능한 시간에 나와 1시간씩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 시위는 일단 12월 말까지 진행되며, 그 다음 일정은 본부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단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모형이고 아직 공식적으로 세워지지 않은 것이라, 가지고 다니기 좋게 바퀴가 달려 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이 확정되면 제대로 된 모습으로 소녀상 옆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서게 될 것이다.

"소녀상 건립도 그 난리를 겪었는데, 이게 어디 쉽겠습니꺼."

우리 땅에 우리 의지로 우리의 돈을 모아 세우겠다는데, 관청은 난색을 표하고 일본의 언론은 빈 협약 위반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소녀상 건립 때는 국제 예양을 언급하더니 이제는 빈 협약 위반이란다. 허허. 헛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 국민들의 반발과 대응은 더욱 거세지고 평화의 소녀상은 물론, 강제 징용 노동자상의 건립은 더욱 촉발될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하지만,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을 터.

제법 객관적이라거나 고급 지식인 척하는 사람들은 국제 예양이니, 안보 위기가 거세지는 이 상황에서 굳이 외교적 마찰을 초래할 이유는 없다느니, 굳이 그 장소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느니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 말 하는 분들일수록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거나 현장에 와보는 사람 못 봤다.

소녀상 옆에 들어선 우체통. '할머니들께 보내는 마음을 넣어 주세요'
▲ 평화의소녀상 옆 우체통 소녀상 옆에 들어선 우체통. '할머니들께 보내는 마음을 넣어 주세요'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소녀상을 보자. 잠깐 차가 지나가지 않을 때 인도에서 도로로 나가 소녀상 뒤편에서 영사관 담장을 올려다본다. 정확하게 정면으로 일본 국기가 나부끼고 있다. 아하, 소녀상이 이 지점에 설치된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깨닫는 순간이다.

소녀상 뒤편에서 영사관 담장을 올려다보면 이렇게 일본 국기가 보인다
▲ 영사관 내 일장기를 바라보는 소녀상 소녀상 뒤편에서 영사관 담장을 올려다보면 이렇게 일본 국기가 보인다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소녀상 자체에는 많은 의미가 숨어 있다. 하나하나 확인해보자.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이다. 1930, 1940년대 당시 조선 소녀들의 일반적 외모인 단발머리를 하고 있으며, 의자 위에 손을 꼭 쥔 채 맨발로 앉아 있다.

단발머리는 부모와 고향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며, 발꿈치가 들린 맨발은 전쟁 후에도 정착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방황을 상징한다. 겨울에는 맨발이 추워 보여 시민들이 발에 두터운 양말을 신겨주기도 한다.

소녀상은 소녀의 얼굴이되 바닥의 그림자는 할머니의 그림자이다
▲ 소녀상 뒤편 바닥의 할머니 그림자 소녀상은 소녀의 얼굴이되 바닥의 그림자는 할머니의 그림자이다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소녀의 왼쪽 어깨에는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조각돼 있다.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과 현실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소녀상 뒤편 바닥에는 할머니 모습의 그림자를 별도로 새겼다. 조각상은 소녀상이되, 그림자는 할머니의 그림자이다. 이를 확인하는 순간 울컥 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치밀어 오른다. 의미 깊은 상징이다.

소녀상 옆에 놓인 빈 의자는 세상을 떠났거나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모든 피해자를 위한 자리다. 빈 의자에는 방문객이 앉을 수도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고 간다.

평화의 소녀상은 서울의 주한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비롯해 현재 전국에 70여 개 이상 있으며 지금도 꾸준히 세워지고 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와 미시간주, 캐나다의 토론토에도 하나씩 있다. 모습은 약간씩 다르지만, 모두 같은 의미를 갖는 평화의 소녀상이다.
  
이 소녀상들은 '위안부 소녀상'이 아닌, '평화의 소녀상'이다. 이는 단순한 위안부 문제가 아니라 전쟁 범죄를 죄악시하고 비인간적인 전쟁 자체를 반대하며 전쟁 중에 벌어진 인권 유린을 비판하는, 인류 보편적 인권의 문제임을 표현한 용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 부산 평화의 소녀상은 시작부터 갖은 풍상을 겪은 소녀상이었다. 2016년 12월 28일 이 소녀상이 처음 설치될 때, 부산 동구청 직원·경찰이 강제로 철거에 나서며 시민단체 측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소녀상이 강제 철거됐지만, 부산 시민들의 강력한 항의를 통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12월 31일 제막식을 치렀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녀상은 계속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현재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기 위한 1인 시위가 진행중이다
▲ 평화의 소녀상 주변 풍경 현재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기 위한 1인 시위가 진행중이다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일본 정부와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

부산 평화의 소녀상 철거는 이 합의의 연장에서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부산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되면 같은 선상에서 서울의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도 철거 혹은 이전돼야 한다. 그러니 더욱 평화의 소녀상은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의도는 알겠으나 그 '위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아. 그 '위치'야말로 핵심이다. 소녀상은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정식으로 지난 역사의 과오를 인정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하며 그들의 인권과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항의의 표현물이며 일본 정부에 대한 압박의 표현이다.

소녀상이 무슨 기념물이나 관광의 대상도 아니고,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가장 좋은 위치가 부산 전체에서 이만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과거 제국주의 일본 정부의 인권 유린과 조직적인 성폭력 그리고 현재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뻔뻔함에 분노하는 것은 정당한 분노라고 믿는다. 그래서 더더욱 일본 영사관 앞에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해자인 일본 정부의 태도다. 가해자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서 피해자의 입장도 달라지는 법이다. 그들이 진즉에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배상하면서 그들 스스로 이러한 조직적인 성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의지를 보였다면, 우리가 이렇게 분노하며 강하게 나섰겠는가.

이 문제는 국가 간의 문제를 넘어선, 인류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다. 여성의 인권이 국가와 군대라는 거대한 조직에 의해 철저하게 억압되고 유린된 극단적인 사안이다. 전쟁 상황에서 약 20만 명의 조선 여성들이 강제로 끌려가 성 노동을 강요당한 사안이다. 더구나 전쟁이 끝나가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집단 학살도 자행됐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후유증에 시달리며 숨어 살아야 했다. 따라서 철저한 배상과 명예회복이 필요한 사안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할 수 있는 위안부 합의를 명분으로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 해 주한 일본 대사를 철수시켰던 일본 정부의 태도는 후안무치를 넘어선 뻔뻔함의 극치였다. 얼마 후 돌아오긴 했지만. 정치용일지는 모르지만, 그 조치 자체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지 알 만한 부분이다.

주변의 숱한 빌딩숲과 담장이 무척이나 높아 거의 하루 종일 그늘지고, 그 안에 어떤 건물이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주부산 일본 총영사관(처음 찾아갔을 때 무슨 교도소에 온 줄 알았다). 소녀상을 영사관 내에 세운 것도 아니고, 영사관 정문 앞에 잘 보이도록 세운 것도 아닌데,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기보다는 이를 시비 걸고 문제 삼는 일본 정부. 소녀상 뒤에서 올려다보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일장기. 참 지지리도 못나고 아픈 우리의 역사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아울러 우리 역사 속 지도층이나 지배층이 해 왔던 숱한 못난 행태들도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학생 시절 똑똑하고 공부 잘 해서 지금 정부와 외교부의 상층부에 자리하고 있는 분들께 당부하고 싶다. 제발 그 좋은 머리를 대한민국의 자존과 국민들의 존엄을 위해 쓸 수는 없겠는가. 억울해하고 감정적으로 분노하는 국민을 상대로 국제 예양이니 뭐니로 소녀상 이전이 마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설득하려 하지 말고, 저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상대로 스스로가 과거를 반성하고 사과하게 하여 진정한 문제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그래서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할 수는 없겠는가.

당신들은 다른 어느 나라도 아닌, 대한민국의 지도층 아닌가. 국민들이 권력과 권한을 위임했다면, 그 좋은 머리와 문제 해결 능력으로 이런 난제들을 해결하라고 한 게 아니겠는가.

국가·정부가 바로 서야 국민이 편하고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한일 위안부합의가 폐기되는 그날까지. 그리고 폐기되더라도 평화의 소녀상 답사는 계속될 것이다.

그 시작은 부산이다. 일본이 자신들의 힘을 모아 외부로 팽창할 때, 대륙 침략의 거점 내지는 교두보가 되는 곳이 부산이다. 그러니 이를 막아내는 것도,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도 부산에서부터라야 한다.
  
* 답사 정보
- 주 부산일본국총영사관 길가 담장 옆 위치
- 주소는 부산 동구 고관로 18 일본국총영사관
- 대중교통으로는 부산 지하철 1호선 초량역 5번 출구 혹은 7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 아이를 데리고 온 뜻있는 부모라면, 인근의 부산과학체험관과 함께 들러보면 좋다. 혹은 부산과학체험관에 체험하러 온 김에 잠깐 소녀상에 들러보기를 권한다.
- 부산과학체험관 051-792-3000, http://scinuri.pen.go.kr/


태그:#부산 평화의 소녀상, #부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