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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을 다녀온 제프리 펠트먼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이 14일(현지시간) 방북 기간 북측에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남북 간 채널 재개와 함께 2018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제안했다고 전했다.
▲ 제프리 펠트먼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 최근 북한을 다녀온 제프리 펠트먼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이 14일(현지시간) 방북 기간 북측에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남북 간 채널 재개와 함께 2018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제안했다고 전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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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을 다녀온 제프리 펠트먼 유엔(UN) 사무차장이 북한 관료들과 나눈 대화를 언론을 통해 공개하면서 북한의 속내와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펠트먼 사무차장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뉴욕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자리를 갖고 북측에 남북대화 재개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또 "북한도 장기적으론 비핵화가 맞다고 생각하는 듯했다"는 발언도 했다. 지난 12일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방북 결과를 보고한 뒤 기자들과 만나 리용호 북한 외무상 등과 15시간 넘게 "어떻게 우리가 전쟁을 막을지에 대한 것"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북한도 "전쟁을 막는 게 중요하다"며 "대화 지속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그동안 핵무기는 자위용이며 외부 세계를 위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논리를 반복적으로 국제사회에 전달해왔다.

펠트먼 사무차장은 지난 12월 5∼9일 5일간 북한을 방문해 리용호 외무상과 박명국 외무성 부상, 알렉산드리 마체고라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 등과 회동했다. 사무차장은 유엔을 대표하는 사무총장 바로 아래 직위로 부사무총장에 해당한다. 언론은 2011년 1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이후로 유엔 최고위 당국자가 북한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며 이번 방북을 높이 평가했다. 

펠트먼 방북 후인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수공업대회 폐막 연설에서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실현했다"고 말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같은날 자성남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중국 베이징에서 일본 언론과 만나 "조건이 갖춰지면 미국과 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북한이 그간 목표해온 '핵무력 완성'을 도달했기 때문에 주변국들과의 대화에 나서기 위해 유엔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앞서 2일에도 러시아를 통해 "협상 테이블에 앉을 준비가 돼 있다"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전제 조건"이라고 밝힌 바 있다.   

펠트먼 사무차장의 방북에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관심거리다. 북한이 유엔 사무차장 일행의 방북을 허가한 것은 '화성-15형' 발사 다음날인 11월 30일이지만 초청 의사를 밝힌 것은 이미 9월 말부터였다.

당시 일본 <교도통신>은 유엔총회 참석 중이었던 리용호 외무상이 구테흐스 사무총장과 비공개 면담한 자리에서 유엔과의 대화 채널 개설을 요청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성기영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은 "미국이 펠트먼의 방북을 통해 어떠한 메시지도 전달한 바가 없다고 거리를 뒀지만 펠트먼의 방북에 뒤이어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 의지를 밝힘으로써 최소한 국무부-유엔 라인에서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 조건에 대한 조율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지난 12일 "북한이 많은 돈을 투자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해야만 대화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면서 "전제조건 없이 기꺼이 북한과 첫 만남을 하겠다"고 말했다가 사흘이 지난 15일엔 "대화를 재개하려면 먼저 북한이 위협적인 행동을 지속적으로 중단해야 한다"고 다시 거리를 뒀다.

이를 두고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원래는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할 계획이었으나 해당 문구를 삭제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백악관의 급제동으로 한 발 물러선 입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동안 대화 재개의 핵심 조건이었던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의지 표명'을 다시 꺼내들진 않았다. 틸러슨 장관은 이날 "대화 채널은 열려 있고 북한도 그걸 안다"면서 "북한과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백악관과 국무부가 이렇듯 합의된 입장을 내지 못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일관된 대북 접근법을 취하지 않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비판을 불러올 수 있다.

성기영 부연구위원은 "주목해야 할 것은 왜 이 시점에 북한이 유엔을 통해 대화 복귀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냐 하는 점"이라며 "북한이 유엔 사무차장을 평양으로 불러들인 데는 다목적의 포석이 깔려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은 점증하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 유엔을 활용해 완충지대를 만들려고 한다"며 "미국의 군사 위협으로부터 출구를 찾아왔던 북한으로선 유엔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긴장 수위를 낮출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을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북한을 방문하는 등 북미간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사표시를 해왔다.

성 부연구위원은 앞으로 북한이 유엔을 통해 "유엔 제재 지속에 따른 경제난으로 인해 무고한 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부각하려고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북한은 이미 제재피해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제재로 인해 인민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으며 인도주의적 재난 위기에 처해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지난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 이후 남한과 정치적 대결의 장으로 유엔을 활용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엔 주로 심각한 식량난을 해소하고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기 위한 창구로 유엔을 활용해왔다.

현재는 북한이 핵 위기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있는 상황이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여론으로부터 인권 상황을 비판받는 처지에 있다. 그러나 북한은 유엔 회원국 자격을 획득한 지 3년 만인 1994년 제49차 유엔총회에서 부의장국에 선출된 바 있으며, 1997년 제52차 총회에선 '인권'을 주요 의제로 다루는 제3위원회 부의장국을 맡은 적도 있다.

미국과 한국은 그동안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고 진지한 대화에 나설 때까지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을 가한다는 전략에 합의해왔다. 그러나 앞서 틸러슨 장관의 발언처럼 비핵화는 대화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대화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현재로선 북한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은 전문가 일반의 중론이다.

다만 제6차 핵실험 후 국제사회의 초고강도 제재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으로선 미국과 군사적 긴장을 지나치게 고조시키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유엔 사무차장 방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펠트먼을 만나지 않았다. 최근 쑹타오 특사도 방북기간 동안 김 위원장과 면담하지 못했다. 김 위원장이 집권한 지 6년이 지났지만, 특별히 국제무대에 나선 적은 없다. 수년째 점쳐진 북중정상회담도 개최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유엔을 통해 미국에 어떤 시그널을 보내고 어떻게 대화채널을 구축해나갈지 관심이 쏠린다. 이러한 흐름을 한국정부가 남북관계 개선과 한국이 주도하는 북미대화, 북핵 해결과정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국의 대북정책 과제>에서 "한·미·중 3국의 공동 해법 마련을 위해 한·미·중 3자 대북정책 조정그룹의 운영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에 특사를 파견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권유할 수 있을 것이다. 특사 교류를 통해 어느 정도 신뢰가 구축되고 북한이 핵실험과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태그:#성기영, #정성장, #유엔, #대화채널, #핵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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