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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 들여다보지 않던 블로그를 찾았다. 글 연습을 하겠다며 운영하던 블로그였다. 블로그를 접으며 모든 글을 비공개 처리해놨는데, 까맣게 잊고 있던 마지막 글의 제목이 아래와 같았다.

'2014년에 책 세 권 쓰기'

2013년 10월 28일 오후 10시에 올린 글이다. 한 해에 세 권의 책을 쓰겠다는 계획이 지금 보면 허황돼 보이기도 하지만, 그때는 나름 진지하고 간절하게 앞으로의 시간을 그려 본 거였다. 물론 나는 2014년에 세 권의 책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한 권의 책을 쓰긴 했다. 출간하진 못했지만.

책을 쓰는 것과 책을 내는 것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그때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진정성 있게, 최선을 다해, 단행본 출간이 가능할 만큼 글을 써두면, 누군가 알아서 다가와 책을 내주겠다며 손 내밀어줄지 알았던 걸까. 야구를 구경하다가 문득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세계적인 소설가가 첫 소설을 무리 없이 출간하고, 그 책으로 상을 받았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내 이야기라도 될 줄 알았던 걸까.

 대형 서점에서 만난 내 책.
 대형 서점에서 만난 내 책.
ⓒ 황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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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글들을 비공개 처리한 후 2013년 말부터 나는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매일마다 책상에 앉았다. 부모님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추측만 할 정도로 두문불출했다.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듯하여 잠자코 바라보고는 있지만, 그때 부모님의 심정은 나보다 더 아슬아슬하지 않았을까.

2015년 1월, 일년 넘게 쓰고 다듬은 글을 투고했다. 출판사 수십 군데에서 거절 메일을 받았다. 두 군데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서 두 번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며칠 전 메일에선 분명 긍정적이었던 한 출판사는 막상 나를 보자 내 원고가 구체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출판사와는 친구와 연이 끊기듯 연락이 흐지부지해지다가 서로를 찾지 않게 됐다. 나는 A4 크기로 121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노트북 하드 디스크에 고이 넣어두고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2015년에도 글을 썼고, 2016년 1월에 또 투고했다. 한 군데에서도 긍정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다. 나는 A4 크기로 128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노트북 하드 디스크에 또 넣어두고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누군가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나를 봤다면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봤다면 당시 내 안의 우울을, 의기소침을 눈치챘을 것이다. 겨우 두 번의 실패일지 모르지만, 너무 조급해한 건지 모르지만, 난 마치 내가 글 쓰는 걸 아무도 허락해주지 않는 것 같아 기운이 많이 빠졌다. 한동안 맥없이 보냈다.

계속 글을 써도 될까, 아니면 이쯤에서 그만 써야 할까. 이 질문을 안고 몇 개월을 보냈다. 답을 찾기 위해 작가들에 관한 책을 읽어나갔다. 책을 통해 하나 알게 된 건 이 세상에는 야구 구경을 하다가 꽤 순탄하게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 작가의 이야기보다, 수년, 수십 년의 기다림 끝에 작가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다는 거였다.

나는 어느샌가 '셀프 위안' 용도로 이런 정보들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오르한 파묵, 스물두 살에 소설가가 되기로 했으나 서른이 될 때까지 출간 못함, 세 번째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해리 번스타인, 작가가 되려고 평생 동안 안간힘을 쓰다가 96세에 첫 회고록 출간.'

'조지 버나드 쇼, 첫 책이 50년 뒤에나 출간, 출판계 사람을 싫어하게 됨.'

'마르셀 프루스트, 거듭된 거절 끝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부 자비 출판.'

긁어모은 정보들을 주제에 맞게 정리하며 조급함을 털어냈다. 정리된 글을 읽다 보면 힘도 났다. 문득, 나와 비슷한 처지의 작가 지망생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봤다. 작가가 아닌데도 작가처럼 글을 쓰고 있을 그들에게 힘이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나를 생각하며, 그들을 생각하며, 2016년 가을 즈음부터 '글쓰기 위로' 테마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계속 글을 써도 될까, 아니면 이쯤에서 그만 써야 할까' 하는 고민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2017년, 첫 책 출간

 색을 달리한 두 개의 책표지가 나왔다.
 색을 달리한 두 개의 책표지가 나왔다.
ⓒ 어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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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2017년 새해가 밝았다. 작년에 이어 계속 글을 쓰고 있었는데, 그러다 다른 주제로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두 개의 소식을 거의 동시에 접하고 나서였다. 한쪽에서는 국내 2위 서적 도매업체가 부도났는데 부도 이유 중 하나가 '독서 인구 감소'라는 소식이 들려왔고, 다른 한쪽에서는 '1년 계획'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에 (여전히) '독서'가 포함돼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독서 인구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데, 독서를 하고 싶은 사람은 많다는 거네?'

며칠 동안 이 생각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취미라곤 독서 하나였던 사람 아닌가. 이런 나라면 두 소식 사이에 끼어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책상에 앉아 그간의 독서 생활을 머릿속에 떠올려봤다.

에피소드 몇 개가 어렵지 않게 글로 풀어졌다. 그러자 꼭지 제목들이 절로 생각났다. 책 제목으로는 <책과 가까워지는 방법> 정도가 좋을 듯 했다. 어차피 누가 쓰라고 해서 쓰는 것도 아니니 기존에 쓰던 글은 잠시 접고 나는 이번에도 내 마음대로 독서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독서가 '1년 계획'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상'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책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내 삶이 독서에 의해 어떻게 변했는지, 내 미래에 독서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털어놓으면 어떨까. 책을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인터넷 앞에선 무력해진다고 고백해볼까. 책을 향한 내 애정을 말해볼까.  

4월에 14편의 글과 기획서를 출판사 한 곳에 투고했다. 더는 조급하게 굴기 싫어 한 번에 한 출판사만 콕 찍어 보냈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낸 출판사를 선택했다. 거절 메일이 오면, 그다음 출판사에 차례대로 투고하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 번 만에 연락이 왔다. 계약하자고 해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올해 여름과 가을을 거치며 14편의 글은 53편으로 불어났고, 2017년 11월 30일, 내 첫 책이 <매일 읽겠습니다>란 제목으로 출간됐다(책이 집에 온 날, 엄마는 방에서 몰래 눈물을 흘리다 내게 들켰다).

되돌아보면 지난 몇 년 간 내 계획은 늘 글과 관련되어 있었다. 하루치 계획으론, '오늘은 이 글 다 마무리해야지'였고, 일 년 계획으론 '책 한 권 써야지'였다. 이 외에는 딱히 세운 계획이 없어서 조금 단조로운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일이 좋았다.

결과가 좋지 않아 실망한 적도 많지만, 그래도 또 다음 계획을 세우고 나면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내년 계획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올해 초에 쓰다 만 글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시도하기 위해 희망할 필요도 없고, 지속하기 위해 성공할 필요도 없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언젠가부터 자주 되뇌는 문구다. 일년 계획을 세우는 데 이렇게까지 진지해질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적어본다. 끝으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내년에는 원하는 일 모두 이루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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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오마이뉴스 에디터. '에디터만 아는 TMI'를 연재합니다.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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