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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씨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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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도 독감이신가요?" "아뇨." '어젯밤에 과음해서 수면부족이라고는 죽어도 말 못해.' (4쪽)

니노미야 토모코 님이 그린 만화는 한국말로 꽤 나왔습니다. 저는 이분이 그린 만화 가운데 <주식회사 천재 패밀리>를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매우 똑똑하면서 새롭게 생각하는 아이가 외곬 같으면서도 싱그러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윽고 <GREEN>을 만났어요. 시골로 시집을 가겠노라 밝히는 허둥쟁이 아가씨가 나오는 만화입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시골로 떠나는 사람이 드물 무렵에 이 만화가 나왔는데요, 시골을 만화감으로 그릴 뿐 아니라, 도시 아닌 시골이 좋다고 노래하는 아가씨가 나오는 만화여서 몹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불어터져 국물이 실종된 라면을 본 순간 깨달았습니다. 애를 달고 온 주제에 금방 끓인 라면을 당연히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내가 잘못했네! 아이가 스스로 응가를 컨트롤할 수 있을 리 만무하건만.' (15쪽)

이런 뒤에 <노다메 칸타빌레>를 만났고 <음주가무 연구소>를 만나며 새삼스레 깜짝 놀랐어요. 아직 한국에 술 만화가 거의 안 나올 즈음, 만화를 그리다가 뭔가 막힌다 싶으면 신나게 술잔치를 벌이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았지요. 저하고 나이가 비슷한 만화가 아주머니가 그리는 만화에 깃든 너털웃음이나 익살을 차근차근 돌아보면서 한 가지가 궁금했어요. '이 아주머니는 아이하고 어떻게 지내려나?'

1권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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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제 궁금함을 풀어 주기라도 하려는 듯, <주먹밥 통신>(대원씨아이)이 2014년에 첫째 권, 2015년에 둘째 권이 나왔습니다. 다만 셋째 권은 아직 한국말로 안 나옵니다.

'왜 바다인가 하면, 코우가 물놀이를 좋아하기도 하고, 무겁지도 않고, 같이 떠 있으면 되니까 무릎과 허리에도 좋고, 장난감과 탈것이 없어도 아이가 좋아하고, 파도에 흔들려 금세 잠들고, 아무튼 고령의 부모에게는 더없이 좋은 곳입니다.' (48쪽)

만화책 <주먹밥 통신>은 여러 가지로 읽을 수 있어요. '주먹밥'처럼 수수한 밥살림이 좋다는 매무새로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살림도 그저 수수하게 나아가겠다는 뜻이 됩니다. 또는 주먹밥 아니고는 밥을 할 줄 몰라서 아이가 주먹밥 아니고는 도무지 어버이한테서 배울거리가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주먹밥 통신>을 읽으면 만화지기 아주머니가 얼마나 허술하며 허둥거리는 어버이인가 아주 잘 알 수 있습니다. 만화지기 아주머니는 허술하며 허둥거리는 이녁 모습을 숨기지 않습니다. 낱낱이 드러내면서 스스로 너털웃음을 짓고, 만화를 읽는 이웃도 배꼽을 쥐도록 이끕니다.

"엄마, 내 다리가 히로보다 길지? 히로는 숏다리야." "엄마는 지금, 네가 동생을 괴롭히는 만화를 그리는 중이니까, 방해하면 안 돼요♡" "지워 줘." (90쪽)

만화 마감에 맞추느라 너무 바쁠 때면 시아버지하고 시어머니가 만화지기 아주머니네 집에 찾아와서 아이랑 놀고 밥도 짓고 청소에 빨래를 도맡아 준다는데, 만화지기 아주머니가 사는 고장은 겨울에 눈이 대단히 잦고 많대요.

시아버지하고 시어머니가 아이를 돌보고 집안을 건사하며 도움이(만화 어시스턴트)한테 한창 밥을 지어 주다가 슬슬 돌아가실 날이 다가오는데 함박눈이 쏟아지면 속으로 웃는다고 합니다. '아무도 이 집에서 달아날 수 없구나!' 하고요.

일본에서 2016년에 나왔으나 아직 한국말로는 안 나온 셋째 권 겉그림
 일본에서 2016년에 나왔으나 아직 한국말로는 안 나온 셋째 권 겉그림
ⓒ 니노미야 토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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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를 괴롭히는 큰아이를 굳이 나무라거나 꾸짖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화지기 아주머니는 슬그머니 웃으면서 "엄마는 지금, 네가 동생을 괴롭히는 만화를 그리는 중이니까, 방해하면 안 돼요♡" 하고 한 마디를 한답니다. 혼자 만화책을 읽을 수 있는 큰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제발 그 대목을 지워 달라 한대요. 그러면 이런 모습까지 더 신나게 만화로 담아냅니다.

"눈이, 장난 아니에요, 선생님. 기록적 대설이 될 거래요." "아무도, 집에 못 가겠네. 아버님도 어머님도, 후후후." "뭐가 우스우세요?" '아무도 이 집에서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 기쁜 만화가.' (122쪽)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바깥일을 해내야 하는 살림은 얼마나 힘들거나 고될까요. 틀림없이 만만하지 않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저 스스로 집안일하고 집밖일을 모두 하는 어버이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꽤 힘에 부치기도 한다고 느껴요. 그러나 두 가지 일을 모두 하기 때문에 아이를 더 오래 마주합니다. 아이하고 늘 함께 지냅니다. 아이를 둘러싼 온모습을 지켜보고, 아이하고 온살림을 뚝딱뚝딱 가꾸면서 어버이로서 새롭게 배우곤 합니다.

어쩌면 힘들기 때문에 더 즐거울 수 있습니다. 어쩌면 바쁘기 때문에 더 재미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놀고서 어지르기만 한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놀이하듯 함께 치울 수 있습니다. 만화책 <주먹밥 통신>은 '아이 어버이'인 이웃한테 '다 좋아요. 어질러졌으면 어지러운 대로 아이랑 웃고, 치울 적에는 치우면서 콧노래를 불러요.' 하고 넌지시 속삭이는 이야기꽃일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옛말에도 이런 얘기가 있어요. 웃으면 기쁨이 찾아온다고. 함께 웃으면서 아이하고 하루를 지어 봐요.

덧붙이는 글 | <주먹밥 통신 2>(니노미야 토모코 글·그림 / 장혜영 옮김 / 대원씨아이 펴냄 / 2015.1.15. / 8500원)



주먹밥 통신 2 - 불량엄마일기

니노미야 토모코 지음, 대원씨아이(만화)(2015)


태그:#주먹밥 통신, #니노미야 토모코, #만화책, #육아,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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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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