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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1월 29일,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을 태운 환자 이송 전용기가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석 선장이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되기 위해 구급차량으로 옮겨지고 있는 모습.
 지난 2011년 1월 29일,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을 태운 환자 이송 전용기가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석 선장이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되기 위해 구급차량으로 옮겨지고 있는 모습.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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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여명작전'.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11년 1월 21일 청해부대 소속 'UDT/SEAL'팀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호'의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펼친 2차 기습작전의 이름이다. 당시 해군은 해적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하는 과정에서 선원 21명 전원을 구출해 내는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이 기분좋은 소식은 이국만리 떨어진 대한민국에 곧바로 전해졌다. 선원들의 안부가 걱정돼 불안에 떨던 가족들은 물론이고 피랍 소식을 안타까워하던 국민들은 청해부대원들의 눈부신 활약에 함께 기뻐했고, 안도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이 사실을 기뻐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당시 최고통수권자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작전이 종료된 지 불과 30여 분 만에 카메라 앞에 섰다.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하고 결의에 찬 모습으로 담화문을 읽어내려가던 그는 '아덴만 여명작전'은 완벽한 작전이었고, 이를 자신이 직접 지시했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그런데 바로 이 발언 때문에 한바탕 논란이 벌어진다. 목숨 걸고 작전을 수행한 것은 청해부대원들인데 대통령이 '슬쩍' 숟가락을 얹은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논란은 실패로 끝난 1차 작전 당시와 비교되면서 더욱 뜨거워졌다. 이 전 대통령이 1차 작전 이후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가 작전이 성공하자 득달같이 특별담화문을 발표하며 생색내기에 나선 탓이었다. 당시 진중권 교수는 이 전 대통령 행태를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해 눈길을 끌었다. 진 교수는 정치인의 유형에는 "작전 초기엔 '모든 것을 군에 맡겼다', 작전 성공(?) 후엔 '내가 명령을 내렸다'"는 '이명박형'과 "작전 전엔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 작전 후엔 '난 한 일이 없다'"는 '노무현형'이 있다며 이 전 대통령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당시 보수언론은 '아덴만 여명작전' 성공을 연일 대서특필했다.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과 치열했던 전투 과정을 상세히 보도하며 이를 진두지휘한 이명박 정부를 한껏 치켜세웠다. 광우병 파동, 4대강 사업, 민간인 사찰 의혹, 천안함·연평도 사태 등 크고 작은 논란과 권위주의적 국정운영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이 높은 상황에서 '아덴만 여명작전'은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호의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은 청해부대원들의 활약상을 깨알같이 보도하며 정권 홍보에 열중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사실은 쉬쉬했다. 삼호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이 5~6발의 총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한 상태이며, 그중 한 발은 우리 군이 쏜 총탄이었다는 점이다. 석 선장이 3발의 총탄을 맞았으며 상태가 위중하지 않다는 최초 정부 발표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말과는 달리 석 선장은 처음부터 의식이 없는 매우 위중한 상태였다.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이 작전 성공에 취해 있던 사이, 정작 석 선장은 생사의 기로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셈이다.

석 선장 후송비, 치료비 나몰라라한 MB 정부

지난 2011년 1월 29일,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을 태운 환자 이송 전용기가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석 선장이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되기 위해 구급차량으로 옮겨지고 있는 모습.
 지난 2011년 1월 29일,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을 태운 환자 이송 전용기가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석 선장이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되기 위해 구급차량으로 옮겨지고 있는 모습.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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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것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석 선장은 기적처럼 살아났다. 작전 성공 직후 오만에 급파된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의 헌신과 열성 어린 치료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석 선장의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고, 현지의 의료시설 역시 열악했다. 석 선장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한국으로 이송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의료뉴스를 전하는 언론매체인 <라포르시안>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석 선장 후송과 관련한 비용만 약 40만 달러(약 4억 4000만 원)에 달했다. 석 선장을 살리기 위해선 반드시 한국으로 이송해야 하는 상황. 문제는 비용이었다. 촌각을 다투는 찰나, 이 교수는 청와대와 정부 설득에 나섰고 결국 자신의 이름으로 에어 앰뷸런스를 빌리되 외교부가 지급보증을 하는 것으로 석 선장을 이송할 수 있었다. 정부보다 이 교수가 더 적극적으로 국면을 주도한 셈이다.

비용 처리 과정 역시 기가 막히다. 앰뷸런스 임대 비용 역시 정부가 아닌 한국선주협회에서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앰뷸런스를 임대해준 회사가 이 교수에게 비용 지불을 요구하는 최고장까지 발송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2억 5500만 원에 달하는 석 선장의 치료비 중 국민건강보험에서 지급한 8800만 원을 제외한 1억 6700만 원 역시 아주대병원 측에서 떠안았다. 석 선장이 소속된 삼호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치료비용을 받을 방법이 사라진 탓이다. 석 선장의 치료비용 지급 문제는 이후 논쟁의 대상이 된다. 

일각에서는 법적 의무가 없다 해도 정부가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석 선장의 치료를 담당했던 아주대병원 측은 이와 관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에서 조치를 해줄 수 없다면 추후 다른 국가적인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며 진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시민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석 선장을 '아덴만의 영웅'이라 추앙하며 정권 홍보에 적극적이더니, 정작 치료비와 관련해서는 모른체 해온 보수정권의 이중적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14일 문재인 정부가 석 선장의 미납 치료비 1억 6700만 원을 대신 지불하기 위해 법리 검토에 들어갔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벌어진 일을 민간병원에 맡긴 상황에서 치료비조차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도의상 맞지 않다. 비록 늦었지만 치료비는 정부 차원에서 지불하는 것이 맞다"며 응급의료기금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석 선장의 치료비를 정부가 부담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주대병원 측은 즉각 환영의 뜻의 내비쳤다.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관련 기사에는 정부의 결정을 칭찬하고 공감을 표하는 댓글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성원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결정은 단지 비용처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다. 집권세력의 철학과 윤리, 의지에 따라 국가정책의 방향과 운영의 우선순위가 달라진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정권이 치켜 세운 '아덴만 영웅'의 치료비를 문재인 정부가 책임지기로 했다는 소식이 아주 특별해 보이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석해균 선장, #이국종 교수, #아덴만 여명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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