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보수쪽 패널인 박형준 교수의 입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7일 오후 방송된 JTBC 시사 토크 프로그램 <썰전>에서는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 개혁안을 가장 먼저 화제로 올렸다.

국정원은 지난 11월 29일 기관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변경하고 직무 범위의 구체화, 대공 수사권 이관, 예산집행의 투명성 제고 및 외부 통제 강화 방안 등을 뼈대로 한 '국정원법 개정안'(아래 개정안)을 국회 정보위원회에 제출했다. 이같은 개혁안에 대해 유시민 작가는 수사권 폐지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유 작가의 말이다.

"국정원은 검찰의 압수수색도 거부하는 기관이에요. 그러니까 국정원은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있으면서 거기서 인신을 구속해서 수사까지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으니까 밖에서 들여다 볼 수도 없고, 견제도 안되고 사후 검증도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수많은 조작 간첩사건이 있었잖아요. 그런 문제를 근원적으로 없애려면, 정보를 수집하는 건 좋지만 사람을 잡아오지 말라는 거예요."

 <썰전>의 유시민 작가는 국정원의 과거 행태를 지적하며 수사권 이관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썰전>의 유시민 작가는 국정원의 과거 행태를 지적하며 수사권 이관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 JTBC


실제 국정원은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인권 침해, 직권 남용 논란을 확실하게 해소하기 위해 대공수사권을 타 기관에 이관하고, 국가 안보 수사 역량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 안보 침해 관련 정보수집 활동에만 국한하겠다. '대공', '대정부전복'을 직무(범위)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맞서 박형준 교수는 "정보수집과 수사권 분리가 어렵다"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국정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말아줄 것을 주문했다. 박 교수의 말이다.

"국정원 전체를 불법적이고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고 모든 활동을 무리하게 하는 것처럼 그렇게 규정하고 시작을 하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원칙적인 측면에서 볼 때 박 교수의 말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정보기관이 북한 공작원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더 큰 정보를 획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유 작가의 지적이 옳다. 국정원은 창설 때부터 무소불위의 존재로 군림해왔고, 조직의 목적 달성을 위해 간첩을 양산(?)해 왔다. 특히 수사를 빌미로 강제구금, 증거조작, 고문 등 온갖 종류의 인권침해를 거리낌 없이 자행했다.

따라서 수사권 폐지는 국정원 개혁의 핵심이라고 할 것이다. 수사권과 관련해서 유 작가는 정보기관이 공작원 관련 정보를 검찰, 경찰에 넘기면 된다고 지적했다. 유 작가의 지적은 사실 새롭지 않다. 국정원 관련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제시됐던 방안이었다. 다만, 정치적 이유로 관철되지 않았을 뿐이다.

국정원 개정안, 통과의지 갖고 발표했나

 <썰전>의 보수쪽 패널인 박형준 교수는 국정원의 개혁의지가 의심된다고 했다.

<썰전>의 보수쪽 패널인 박형준 교수는 국정원의 개혁의지가 의심된다고 했다. ⓒ JTBC


수사권과 관련해서 대체적인 흐름에서 유 작가의 의견에 동의한다. 단, 박 교수에게 격하게 동의하는 지점이 있다. 박 교수는 개정안과 관련해 유 작가와 <썰전>을 마무리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국정원이 개혁안을 국회에 던졌지만 정말 제대로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갖고 던졌는지 거꾸로 의문스러운 점이 있어요. 야당이 반대할 걸 뻔히 아니까, 그걸 갖고 국정원이 그냥 버티고 가겠다는 건 아닌지 조금은 의심스러워요."

국정원법 개정안이 발표되자 보수 야당, 언론은 거세게 반발했다. 공안검사 출신인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도 개정안 발표 다음 날인 11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공수사가 무엇입니까? 나라를 지키는 수사 아닙니까? 대안도 없이 대공수사를 포기하면 누가 간첩을 잡습니까? 그런데 별다른 대안도 없이 갑자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겠다고 하는 개정안이 제출되었다니 정말 놀랍다"고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정작 개정안을 보면, 박형준 교수의 말대로 국정원에 과연 개혁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국정원 활동의 적법성을 감독할 감독기구 설치는 개정안에 반영돼 있지 않다. 이에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현재의 국회 정보위원회 활동만으로 국정원을 활동을 실효적으로 감독하기 어려운 만큼 국회 산하에 정보 및 인권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정보기관 감독기구'나 대통령 책임 하에 '정보감찰관' 등을 신설해야 하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국정원의 자료제출과 답변거부 권한을 반드시 제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 국가안보 관련 수사 역량의 훼손을 최소화하겠다며 △형법의 내란·외환죄 △군형법의 반란죄 및 암호부정사용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국가보안법 위반과 북한과 연계된 안보침해 행위를 직무범위에 추가한 점 역시 논란거리다. 특히 '국가보안법 위반'과 '북한과 연계된 안보침해 행위'는 정권이 자의적으로 정보수집하는 근거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정보수집 활동과 수사기관의 내사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수사권 이관의 의미가 크게 퇴색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박 교수의 지적대로 국정원이 야당의 반대를 내다보고 '획기적인' 개혁안을 공세적으로 제시했다고 볼 수도 있다. 박형준 교수의 지적에 대해, 유 작가는 "국정원법 개정안 통과를 두고 여야가 치열하게 싸울 것"이라며 토론을 마무리했다. 수사권 이관에 반대하는 박 교수의 입장은 언제나 그렇듯 보수 야당, 언론의 반대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박 교수가 국정원의 속내일지 모를 지적을 내놓은 데 대해선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그간 박 교수를 겨냥해 속히 하차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지금도 이같은 목소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박 교수의 발언은 보수 진영의 속내를 엿보게끔 하는 측면도 있다. 또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지적처럼 이따금씩 생각지도 못한 시각을 제시해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일면 긍정적이다. 패널의 참신한 시각은 시사 토크쇼를 보는 묘미다. 박 교수를 계속해서 <썰전>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유다.

썰전 박형준 교수 유시민 작가 국정원법 개정안 수사권 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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