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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서울교정 본관앞
 경희대학교 서울교정 본관앞
ⓒ 박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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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의 차남인 조인원 총장이 11년간 3번째 총장을 연임하고 있는 경희대학교의 부서명과 조직에는 유난히도 '미래'가 많다. 미래정책원, 미래문명원, 미래혁신원, 미래협약사무국, 미래리포트, 경희미래위원회, 미래과학클러스터, 미래융합R&D기획단/사업추진단/추진위원회... 그러나 '미래'라는 말잔치에 '미래가 없다'는 세간의 조롱처럼, 경희대학교의 노동자들은 과거 골품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경희대학교는 2017년도 임금협약을 체결하면서, 직원들에 대하여 연 200만원의 임금인상을 약속하였다. 일반적으로는 '3%'와 같이 정률로 인상해오던 관례에서 벗어나 정액으로 200만원을 인상하게 된 이번 임금협약에 대하여, 사측은 상대적인 약자를 배려하는 '하후상박'의 개념을 도입하였다고 논평하였다.

상급자, 강자에게는 다소 박하게 하되, 하급자, 약자에게 후하게 대우한다는 얘기다. 이는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통한 인문교양교육에 힘쓰고, '배려와 존중', '소통과 화합', '경희가족정신'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던 경희대학교의 지향과 일치하는 결정으로 박수 받을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얼마 후, 실상이 공개되었다. 경희대학교의 "2017학년도 기간제근로자 급여 책정 기준 변경 안내"를 구성원에게 보내면서, 비정규직에 대하여는 월 7만 5천원씩 연 90만원의 급여를 인상한다고 안내해 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겠다는 것이었다. 연 90만원이나 인상했다지만, 오른 시급은 8천원이 되지 않는 수준으로, 자회사 환경미화직 노동자들보다도 낮은 수준의 임금이었다.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서 200만원 정액 인상하겠다면서, 약자중의 약자인 비정규직은 90만원이면 된다는 이율배반적인 차별의식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작년과 올해, 우연히 캐나다에서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도서관에 가도 대학에 가도, 그저 거리를 걸어도 이상하게도 장애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캐나다에 특별히 장애인이 많은 것이 아니라, 한국에는 장애인들이 숨겨져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많은 차별들은 차별한다는 의식 없이 행하는 경우가 많다. "저들을 차별해야지"하고 차별하는 게 아니라, 상대적 강자들에게 사회적 약자들은 그냥 보이지 않는 존재일 뿐이다. 대학사회에 성골, 진골, 6두품도 아닌 5두품부터 1두품의 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 그들은 대학의 노동구조를 지탱하고 있다. 그런 보이지 않는 약자들을 향한 노골적인 차별이 '미래'와 '평화'를 말하는 경희대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혜와 동정이 아니다. 이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모습을 나타낼 수 있도록 자신의 노동조합이라는 몸으로 조직되어야만 한다. 또한, 경희대학교와 그 책임자 총장은 화려한 말잔치를 그치고, 가족을 가족으로, 인간을 인간으로, 노동자를 노동자로 차별없이 대우해야 할 것이다.


태그:#경희, #조인원, #노동, #노조, #경희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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