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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마을, 고리

우리나라에서 핵발전소가 가장 많은, 가장 밀집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지역. 부산이다. 판도라탐사대는 4월 23일, 부산을 방문하여 핵발전소를 답사했다. 오랫동안 주민들과 탈핵운동을 함께해온 에너지정의행동의 정수희 활동가와 함께 했다.

신고리핵발전소 5,6호기가 지어지면 사라질 신리마을에서. 판도라탐사대.
▲ 판도라탐사대 단체사진 신고리핵발전소 5,6호기가 지어지면 사라질 신리마을에서. 판도라탐사대.
ⓒ 청년초록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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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는 부자동네라고 불리던 마을이었다. 핵발전소가 들어서지 않았다면 해운대 못지않은 부산의 명소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고리 핵발전소가 들어설 당시, 주민들은 단순히 "전기공장이 들어서네" 싶었다고 했다. 핵발전소가 고리의 경제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핵발전소에 고용되는 것은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온 엘리트였다.

고리라는 마을은 이제 없는 마을이 되었다. 마을이 사라진 곳에는 수 기의 핵발전소가 그 자리를 메웠다. 고리원자력본부에 가면 사라진 마을인 '고리'를 추억하는 비석이 있다. 고향을 잃어버린 이들이 그리울 때마다 그 비석 근처로 모인다고 한다. 고리에 살던 주민들은 다른 동네로 이주해야만 했고 한정된 자원을 놓고 어업을 해야 하는 마을의 원주민들은 고리에서 온 사람들을 달가워하지 않아 빈번히 싸움을 벌여야만 했다.

고리원자력본부 앞에는 사라진 고향인 고리를 기리는 옛주민들의 비석이 있다.
▲ 고리원자력본부 앞 고리 비석 고리원자력본부 앞에는 사라진 고향인 고리를 기리는 옛주민들의 비석이 있다.
ⓒ 청년초록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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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하지 않은 사람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업으로 자연스레 생계를 유지하던 이들의 삶이 파괴됐다. 핵발전소에서 바다로 방사하는 화학약품 때문에 건강하던 미역엔 없던 병이 생겼다. 어렵사리 피해를 인정받자 보상을 받을 순 있었지만, 보상을 받은 어민들은 더 이상 기장 바다에서 어업을 할 수가 없었다. 기장의 많은 배들은 어업용이 아니라 손님을 태우고 바다를 구경하도록 해주는 관광용 배라고 한다. 그나마 핵발전소를 건설하던 당시에는 건설노동자들의 숙소를 제공하며 세를 놓아 생계를 해결했지만 핵발전소가 다 건설되자 노동자들은 떠났고 세입자 없는 셋방만 늘어선 마을이 생겨났다.

게다가 건강에도 심각한 이상이 생겼다. 균도씨의 아버지는 아들은 장애를 갖고 태어나고 어머니는 위암, 아내는 갑상선암, 자신은 췌장암에 걸려 수차례 수술을 받으며 자신의 액운을 한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균도씨의 아버지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발견한다. 경제적인 피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방사선에 의한 건강상의 피해도 상당했다. 고리 핵발전소 인근의 갑상선암 발병률은 다른 지역의 3배 이상이다. 어떤 주민은 자신과 어머니는 갑상선암에 걸렸고 딸은 항문 없이 태어났다. 이런 주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사라질 마을, 신리마을


고리핵발전소 인근을 답사한 이후에, 우리는 신리마을로 떠났다. 핵발전소 부지가 점점 넓어진다는 것은 주민들의 삶터가 점점 쪼그라드는 일. 신리마을은 신고리핵발전소 5,6호기가 건설되고 있는 마을이었다. 신리마을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가 사람들이 사는 집이 아주 적었다. 그러나 여전히 빨래를 널고 있는 주민들,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배 몇 척 등 삶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핵발전소로 인해 내몰리는 삶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를 마을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신리마을 풍경 하나. 바다와 어선들.
 신리마을 풍경 하나. 바다와 어선들.
ⓒ 청년초록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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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리마을 풍경 둘. 널려있는 해녀복.
 신리마을 풍경 둘. 널려있는 해녀복.
ⓒ 청년초록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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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내몰리는 이들의 삶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들은 어떻게 해야 삶을 지킬 수 있을까? 치열한 투쟁으로 삶을 지켜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단서를 얻고자 기장으로 향했다.

"쓸데없이 나선" 사람들

기장 간담회는 기장해수담수화반대대책위원회와 함께 진행되었다. 활동가들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에 탐사대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리에게 탈핵이란 어떤 것이냐고. 대화를 한다고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지만 탐사 내내 정작 내 생각은 직접 말씀드린 적이 없어 조금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는 솔직하게 핵발전소라는 괴물이 존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데올로기가 분명 이 사회에 널리 퍼져있고 그 이데올로기에 맞서 싸우는 것이 탈핵운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내 생각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이 분들의 생각과 이어질 수 있을까 답을 찾을 수 있길 기대하며 이 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기장해수담수화반대대책위원회 주민 분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기장해수담수화반대대책위원회 주민 분
ⓒ 청년초록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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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운동을 시작할 땐 다들 "왜 쓸데없이 나서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벽에다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고도 한다. 말은 그렇게 해도 다들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기장 해수 담수화 계획이 발표되고 난 후였다. 방사선을 잔뜩 받은 핵발전소 인근의 해수를 수돗물과 생수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계획이 발표되자 그동안 무관심했던 어머니들끼리 조직적으로 등교거부운동을 하고 시청을 습격했다. 등교거부를 하지 않을 때에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시위하다가 집에 와서 아침을 차리고 다시 나와 투쟁했다. 몸만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준전문가 수준으로 알아야 했다. 아는 게 없으면 따지고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가는 곳마다 싸움이 붙었다. 시청 직원들 중 이 두 분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물론 잘 싸우고 잘 안다고 일이 척척 진행됐던 것은 아니었다. 지역유지들은 유착관계가 있어서 해수 담수화에 찬성했으며 수없이 많은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모여서 눈물을 흘리는 서로를 달래야 할 정도로 힘들었으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기장 해수 담수화에 대한 주민투표까지 했고 결국 선택적 물 공급이라는, 사실상 담수화 저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들은 앞으로도 싸울 것이라고 한다. 이번엔 기장 해수 담수화 저지가 아닌 핵발전 저지를 위해. 기장 주민들이 해수 담수화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만큼 해수를 담수화하지 않아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들은 해수 담수화 저지를 위해 싸우며 이 사실을 깨달았고 따라서 탈핵을 위해 싸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공론화라는 명분 아래,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목소리는 검토하지 않은 채,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선택적 물 공급'이라며, 위험성도 알리지 않은 채 취약계층 40만 명에게 기장해수담수화로 생산한 물을 공급하고 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1박 2일 동안 들었던 많은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도시에 사는 청년들에게 탈핵운동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월성에 살지도, 울산에 살지도, 기장에 살지도 않는다. 나는 핵발전으로 인해 건강상의 피해를 입지도 않고 지진에 대한 공포에 떨지도 않으며 핵발전소 근처의 물을 마시거나 사용할리도 없다. 하지만 당연히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 그리고 나는 나의 편의를 위해서 누군가가 그런 피해를 입는 것을 당연히 반대한다. 그것이 원활한 전기 공급을 위해서든 경제성장을 위해서든 우리는 사회 구성원에게 그런 희생을 강요할 권리가 없고 그런 행위엔 정당성도 없다. 하지만 나는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를 쓰면서 살고 있다. 밀양, 청도, 당진 등등 고압 송전탑들의 덕을 보며 살고 있다. 지금 당장은 이것을 피할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도시에서의 탈핵운동이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다.

핵발전으로 인해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고통 받지 않도록 선택하고 결단해야 하는 것은 우리다. 이들이 겪는 고통 앞에 서서 "어쩔 수 없잖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다"라고 말해야 한다. 월성, 울산, 기장의 주민들이 고통 받기를 선택하지 않았듯이 우리는 이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풍요를 누리길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질 나쁜 풍요'를 거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핵발전과 그에 수반되는 희생들을 필요로 하는 체제와 그 체제를 "어쩔 수 없"다며 떠받치고 있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탈핵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을, 공존을, 평화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판도라탐사대 4월 탐사 ①] "당연히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 핵발전소 곁에 사는 사람들

덧붙이는 글 | 판도라탐사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이라는 ‘판도라’를 함께 들여보고, 핵산업에 맞서 대안을 찾는 프로젝트입니다. 2017년 4월부터 6월까지, 전국 방방곡곡의 탈핵운동지역을 돌아본 도시 청년들의 경험을 글과 만화로 엮었습니다.



태그:#탈핵, #생태주의, #청년초록네트워크, #판도라탐사대, #고리핵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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