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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짜이를 내줘가며 가족사진을 보여줬던 돌카 사촌과 돌카 엄마, 나하고 한방을 쓰고 있는 남인도 청년 쌍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짜이를 내줘가며 가족사진을 보여줬던 돌카 사촌과 돌카 엄마, 나하고 한방을 쓰고 있는 남인도 청년 쌍케.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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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는 일손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매일 매일 부쩍부쩍 자라 꽃대가 올라오기 전에 솎아내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오늘도 돌카 엄마는 소에게 먹이를 주고 채소밭으로 나섰다. 밭에 도착하자마자 물꼬를 트고 잡초를 뽑아가며 장에 내다 팔 채소를 솎아낸다. 함께 따라나선 쌍케에게 나 또한 이런 채소 농사를 지었다고 했더니 놀라는 눈치다.

"어떤 채소를 재배했습니까?"
"치커리, 시금치, 케일, 무... 여기 것들과 비슷합니다."
"송, 당신도 그 채소를 팔았습니까?"
"그럼요. 직접 소비자에게 배달해줬습니다."

돌카네 채소밭은 3백여 평, 내가 일군 밭은 4백여평 정도였다. 돌카네처럼 시설 재배가 아닌 순전히 노지 재배를 했었다. 돌카 엄마는 3백여 평의 채소밭으로 두 자식을 먹이고 가르쳤다. 나는 돌카네처럼 최소한의 생활비로 살아가면서 4백여 평의 채소밭과 더불어 5백 평 정도의 콩 농사를 지었다. 메주를 만들고 된장을 담아 채소와 함께 꾸러미를 만들어 팔아 1년에 4백 만 원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라다크 보다는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 한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돈으로 두 아이를 가르치고 먹이기에는 턱도 없었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한국은 라다크보다 결코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쌍케는 라다크 농부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데 생활이 어렵다는 것이 이해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재활용품으로 빈집을 수리하고 몸에 걸치는 옷이며 신발에 이르기까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물려 입었기에 어느 정도 가능한 시골 생활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이 생활조차 유지하기 힘들었다.

늘 시간에 쫒기는 방송 작가 일을 접고 시골에 들어왔지만 결국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농부들이 농한기를 이용해 막일을 하듯 방송 일을 짬짬이 할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은 라다크에 비해 결코 잘 사는 나라가 아닌 것이다.

채소를 한 바구니 솎아 낼 무렵 사람 좋게 생긴 아줌마가 빙글빙글 웃으며 밭으로 걸어 들어왔다. 돌카의 사촌이라고 한다. 장난기 많은 돌카 사촌이 쌍케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며 폼을 잡는다.

밭일을 마치자 그녀는 짜이 한 잔 하고 가라며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안내한다. 쌍케와 그녀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시종일관 환하게 웃으며 끊임없이 힌디어를 주고받는다. 쌍케가 웃으며 영어로 말했다.

"송, 당신은 여기 현지인을 닮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살 생각이 없냐고 합니다."
"좋지요. 맘씨 좋은 아줌마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고 해요. "

쌍케가 그녀에게 힌디어로 내 말을 전하자 까르르 웃으며 좋다고 말한다. 유쾌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제법 규모 있는 돌카네 사촌 집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집 앞 마당에는 다른 집들처럼 너른 텃밭이 있었다. 이 마을 라다키들은 어지간한 식재료를 텃밭에서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돌카네 사촌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있었다. 짜이를 내놓고 나서 사진첩을 꺼내온다. 고만 고만한 그녀의 쌍둥이 딸과 아들이 사진첩 속에서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빳빳이 서 있다. 그녀의 결혼사진도 보여준다. 그녀는 나와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나 또한 한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는 손님이 찾아오면 사진첩을 꺼내 놓곤 했었다. 그녀는 오늘 밭에서 처음 만난 우리를 한 가족처럼 살갑게 대했던 것이다.

돌카 사촌 집을 나서면서 이 마을에 와서 내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이 마을에서 소와 양은 종종 볼 수 있었는데 닭이 보이지 않더군요. 인도 사람들은 소를 먹지 않지만 닭고기는 먹잖습니까? 이곳 마을 사람들은 닭을 기르지 않나요?"

영어와 힌디어를 번갈아 사용해가며 중간 통역을 맡은 쌍케가 그녀와 힌디어로 몇 마디 주고받고는 내게 전달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불교를 믿고 있답니다. 대부분이 닭뿐만 아니라 육식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칼라차크라 기간 동안은 아예 육식을 금지하고 있답니다."

칼라차크라 행사장 부근에 내걸어 놓은 동물보호 현수막.
 칼라차크라 행사장 부근에 내걸어 놓은 동물보호 현수막.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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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는 티베트 동물보호 단체의 자원봉사자.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는 티베트 동물보호 단체의 자원봉사자.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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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차크라 기간 동안에는 식당에서 조차 인도 사람들이 흔히 먹는 양고기도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날 오후 칼라차크라 행사장 부근에서 큼직한 현수막을 내걸고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는 티베트 동물 보호 단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동물 보호와 더불어 환경보호와 세계평화를 내세우고 있는 이 단체의 홍보물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 중에 가장 작은 개미에서부터 코끼리 또는 고래와 같은 동물에 이르기까지 평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

창 넒은 모자를 쓰고 홍보물을 나눠주는 아줌마와 잠깐 얘기를 나눴다. 그녀가 말했다.

"한국에서는 인도처럼 개를 풀어 놓고 기릅니까?"
"아니요. 대부분 묶어 놓거나 집안에서 키웁니다."
"집안에서 애지중지 키우는 개 뿐 만아니라 함부로 밟아 죽이는 개미 또한 지구상에서 함부로 할 수 없는 평등한 생명입니다. 인간은 인간의 편리에 의해 생명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녀의 말대로 대부분의 인간들은 인간과 친숙한 생명은 소중히 여기고 인간을 귀찮게 하거나 힘들게 하는 생명은 함부로 죽여도 상관없다 판단하고 있다. 그것은 순전히 인간의 이기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말이 맞다. 그녀의 말이 맞기에 뜨끔 했다. 고기를 먹은 지 한 달도 채 안 돼 오늘 아침 돌카네 사촌 집에서 닭고기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뜨거운 땡볕... 점점 속이 뒤틀린다

칼라차크라 행사장에서 오랜 시간 명상을 했다. 멀리서 남인도 청년 쌍케가 찍어준 사진이다.
 칼라차크라 행사장에서 오랜 시간 명상을 했다. 멀리서 남인도 청년 쌍케가 찍어준 사진이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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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칼라차크라 행사장에서 카랑카랑 기운이 넘치면서도 부드러운 달라이라마 존자의 법문이 있었다. 법문을 듣기 위해 빈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어느 서양인이 자기 자리라며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비켜 주세요. 여긴 우리 그룹이 맡아 놓은 자리입니다."

옆으로 조금 비켜 앉았더니 주변 전체가 자신의 일행들이 미리 점찍어 놓은 자리라고 한다. 화장실이라도 간 모양이다 싶어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하지만 저들이 점찍어 놓은 공간은 달라이라마 존자가 등장하고 법문을 이어나갈 때까지도 비어 있었다. 10만 명이 모여 있는 이 너른 공간에 자신들의 자리를 점찍어 놓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뜨거운 땡볕으로 밀려난 나는 점점 속이 뒤틀려가고 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몇몇이 자신들만 땡볕을 피해보겠다고 큰 우산으로 앞을 가리고 있었다. 자신들의 자리라고 미리 점찍어 놓고도 법문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 뒷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대체 뭔 심보로 자비심을 강조하고 있는 이 신성한 칼라차크라에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비심을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한국말로 동시통역을 하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그러니까... 그래서... 그리하여...'를 수없이 반복하며 법문의 핵심을 놓치고 있었다.

달라이라마 존자의 법문은 이런 나의 집착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여러 말씀 중에 몇 가지를 요약해 보면

"오감에 집착하면 불행이 생긴다. 집착하기 때문에 나라는 것이 존재하고 분별심이 생긴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분별하다보니 고통이 뒤따른다. 나는 본래 없다. 무아를 알게 되면 그 분별심을 없앨 수 있다. 모든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마음, 모든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 대자비심이다."

달라이라마 존자의 법문이 끝나자 티베트 승려들이 온몸을 악기 삼아 만트라(힌두교와 불교에서 신비하고 영적인 능력을 가진다고 생각되는 신성한 말이나·단어·음절)를 굵직한 목소리로 노래하듯 뿜어낸다. 달라이라마 존자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행사장을 빠져나가고 있지만 대부분은 제 자리에 남아 그 만트라송을 명상음악 삼아 마음을 모았다.

10만 명에 이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명상은 혼자와는 달리 집중력이 훨씬 더 강해지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최소한 명상에 잠겨 있는 시간만큼은 달라이라마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가며 모두가 자비심을 품고자 할 것이다. 그 자비로운 기운들이 만트라송과 함께 온몸으로 휘감아왔다.

사람의 몸을 소우주라고 한다면 그 몸통에서 나오는 만트라송은 우주의 소리라 할 수 있다. 그 어떤 알 수 없는 우주의 기운처럼 다가오는 만트라송, 음악에 몸을 떠맡겨 춤을 추듯 만트라 송에 의식을 자유롭게 실려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던 존재감이 가벼워졌다. 조금 전 동시통역을 해준 여성에게 고마워하지 못할망정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투덜댔던 어리석은 내 모습이 보였다. 화내고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존재감이 점점 우주의 작은 티끌이 되어 갔다. 그렇게 나는 저만치에 앉아 있던 남인도 청년 쌍케가 내 옆에 다가올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쌍케와 함께 행사장 밖으로 나오는 두 발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많은 군중들에 떠밀려 나갔다. 천천히 여유 있게 빠져나갈 수도 있는데 좀 더 빨리 나가겠다고 뒤에서 밀어 붙였던 것이다. 뒤를 돌아보며 "릴렉스, 릴렉스, 천천히, 천천히 나갑시다,"라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앞 사람과 적당한 간격을 두고 천천히 나가려 했는데 뒤에서 밀치는 바람에 앞으로 꼬꾸라질 뻔했다. 화가 났다.

밀리면 밀리는 대로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으면 되는데 사람들이 서두르고 있다는 분별심으로 분심을 내고 말았던 것이다. 자신들의 자리라는 집착과 분별심으로 내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던 서양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행사장을 빠져 나와 마음을 가라앉히며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반갑습니다. 여기서 다시 보게 되네요."

파드마 삼바바의 수행터, 리왈샤에서 만났던 러시안 미술학도였다. 그녀는 티베트 소년 승려의 초상화를 그렸다. 티베트 소년 승려는 그녀 주변을 맴돌았다. 소년 승려에게 짝사랑의 가슴앓이를 남겨 놓고 나보다 며칠 앞서 리왈샤를 떠나 앞서 라다크에 와 있었던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행사장에서 봤습니다. 당신이 아주 오랫동안 평화롭게 명상에 잠겨 있는 것을요."

그녀가 말한 평화라는 단어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게 평화라는 말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다름없었다. 만트라송에 의식을 떠맡겨 3시간 가까이 명상을 하면서 깃들었던 평화로운 마음자리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나오는 순간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달라이마라 존자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는 경전을 몇 가지나 공부했는지 매일 몇 시간이나 명상했는지 용맹정진은 몇 번이나 했는지 흔히 말들 하지요. 그렇지만 하루에 몇 번이나 십계를 어겼는지 세어 보는 것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열 가지 악업(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 이간질. 나쁜 말. 꾸며대는 말. 탐욕 성냄. 어리석은 소견)을 하지 않는다는 기본을 지켜 내는 마음의 힘이 없다면 높은 수행이나 방편이 어떤 결실을 거두리라는 희망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달라이라마의 깨달음으로 가는 길 중에서

달라이라마 법문은 정확히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열 가지의 악업에서 몇 가지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자리는 내가 살아오면서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악업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사냥과 낚시를 즐기며 수없이 살생을 했고 욕정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음한 마음을 품었고 필요에 따라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또한 나쁜 말을 서슴지 않게 내뱉었고 글을 통해 나를 근사하게 내세우기 위해 말을 꾸며댔다. 탐욕과 어리석은 소견 그리고 성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더 이상 이런 악행을 저지르지 않겠노라 다짐을 놓고 있지만 살아오면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악행들을 꽁꽁 숨겨 놓고 있을 뿐이다. 하여 그 악습이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튀어 나왔다.

교회나 사원에서 하루의 죄를 뉘우치고 다음날 죄를 짓는 자들을 비난하면서 나 또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달라이라마 존자의 말대로 이 악습은 자비심으로 씻어내야 한다. 머리로만 참회나 회개를 한다고 벗어날 수 있는 악업이 아닌 것이다.

"숙소로 돌아가십니까?"

행사장으로 들어설 때 몇 마디 대화를 나눴던 동물보호 단체 관계자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말을 건넸다. 살아오면서 수없는 살생의 기억들이 되살아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에게 간단하게 목례를 건네고 걸음을 재촉해 도망치듯 칼라차크라 거리를 빠져나왔다. 모든 동물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동물들에게 자비심을 품을 수 있다. 자비심 없는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이다.

숙소로 돌아와 보니 돌카가 칼라차크라 행사장에서 만났다는 한 서양 여성과 함께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에릭카. 자그마한 키에 빙글빙글 웃는 얼굴이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그녀는 스물일곱,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 여행을 다니고 있다 한다.

그녀는 쌍케처럼 칼라차크라 행사장에서 소개하는 무료 민박집을 찾아 나섰고 그곳이 돌카네 집이었던 것이다. 쌍케와 나는 함께 손님방 신세를 지고 있었지만 에릭카는 여성이었기에 혼숙을 할 수는 없었다. 하여 돌카가 엄마와 함께 거실 겸 주방에서 지내기로 하고 에릭카에게 자신의 방을 내주기로 했다.

"불편하지 않겠어요?"
"전혀요, 손님이 오면 좋지요."

모녀의 환한 웃음

아르헨티나의 여성 에릭카와 돌카 엄마 그리고 남인도 청년 쌍케. 돌카 엄마는 쌍케와 내게 그랬듯이 에릭카 역시 한 가족처럼 살갑게 대했다.
 아르헨티나의 여성 에릭카와 돌카 엄마 그리고 남인도 청년 쌍케. 돌카 엄마는 쌍케와 내게 그랬듯이 에릭카 역시 한 가족처럼 살갑게 대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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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 여느 때처럼 외양간에 소먹이를 주러 가는 돌카 엄마를 따라나섰다. 그녀와 에릭카는 언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모녀지간처럼 무엇이 그리 좋은지 함박 웃으며 손을 잡고 걸었다.

오늘 아침 쌍케와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짜이를 내줘가며 한 가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족사진을 보여줬던 돌카의 사촌이 그랬듯이 그녀는 만나지 몇 시간에 불과한 에릭카를 한 가족처럼 살갑게 대했다.

돌카 엄마와 에릭카, 두 사람이 다정하게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수행자가 아닌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칼라차크라는 높은 경지의 깨달음으로 이끄는 법회라기보다는 사람과 사람을 따뜻하게 연결해 해주는 인연의 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도 손님이 오기로 했어요."

저녁 준비를 하고 있던 돌카가 농장에서 돌아온 우리에게 내일은 아주 멀리서 손님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남인도에 살고 있는 티베트 가족이라고 한다. 에릭카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돌카에게 말했다.

"제가 와서 방이 꽉 차는데 그 분들은 어떻게 하죠?"
"걱정 마세요, 에릭카. 조금 전 농장에 가봤지요?"

돌카가 그 가족에게 농장이 딸려 있는 옛집을 통째로 내주기로 했다며 기분 좋게 웃는다. 달라이라마 존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자비심을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방까지 내줘가며 또 다른 손님맞이에 들떠 있는 돌카와 돌카 엄마의 환한 얼굴을 보면서 자비는 베푼다는 말조차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비는 이미 이들 모녀의 환한 웃음에 깃들여 있었다. 그 환한 웃음은 자비가 명상이나 기도에 갇혀 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칼라 차크라의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아무런 조건 없이 손님을 반기는 돌카 모녀에게도 있었다. 자신들에게 베풀 기회를 줘서 고맙다는 이들 모녀의 환한 얼굴은 내게 또 다른 깨달음의 장, 칼라차크라 였다.

돌카 엄마는 아르헨티나 젊은 여성, 에릭카를 친딸처럼 대했다. 두 사람은 집 밖 현관에 이부자리를 깔고 함께 자기도 했다.
 돌카 엄마는 아르헨티나 젊은 여성, 에릭카를 친딸처럼 대했다. 두 사람은 집 밖 현관에 이부자리를 깔고 함께 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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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라다크, #칼라차크라, #깨달음의 길, #자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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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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