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할 수 없는데 이건 꼭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면 뭔가 더 이해하고 싶고, 내가 이해한 것을 사람들에게 이해를 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아요." (문근영)

영화 <유리정원>(10월 25일 개봉)은 엽록체로 인공혈액을 만드는 연구에 골몰하는 과학도, 재연(문근영 분)의 이야기다. 12살 이후 왼쪽 다리가 성장하지 않은 그는 지금 당장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도 인공혈액 연구는 후대를 위해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그를 외면한다. 처음으로 재연의 발걸음을 맞추어준 정 교수(서태화 분)도 고개를 돌린다. 자신의 연구물을 훔친 동료와 밤을 보내는 정 교수. 그는 나무꾼 아버지가 남긴 숲속의 유리정원으로 돌아가 자신이 직접 실험대상이 되어 인공혈액 연구를 계속한다.

"영화에서 재연과 정 교수의 감정들이 구축되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툭툭 끊어지면서도 이어져요. 그게 정 교수와 재연의 관계라고 봐요." (서태화)

재연이 떠난 빈방으로 이사를 온 사람은 소설가 지훈(김태훈 분)이다. 창작 소재 고갈로 괴로워하던 그는 우연히 재연이 남긴 글귀를 발견한다. '나는 나무에서 태어났다'라는 글귀에서 영감을 얻고 재연을 찾아간 그는 재연의 일기장을 훔치고 그의 삶을 소설화한다. 소설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재연은 지훈에게 말한다. 계속 그 소설을 써달라고.

"초반에는 재연이 과학도로 살아가고 있는 리얼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판타지는 후반부에 들어가려고 생각했고요. 판타지 전, 인물에 공감할 수 있게 접근했죠." (감독 신수원)

지난 10월 28일, 종로 씨네큐브에서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신수원 감독, 문근영 서태화 배우

신수원 감독, 문근영 서태화 배우 ⓒ 김광섭


재연의 아픔, 이해해주었으면…

문근영은 캐릭터에 대해 고민하면서 재연이 어렸을 때부터 상처를 받고 견디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고심한 지점은 왜 재연은 상처를 발산하지 않고 혼자 품고 있는가이다.  

"재연이가 가장 결정적인 상처를 받는 그 때에도 왜 상처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숲으로 돌아갔나, 안으로 갔나 하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문근영)

그는 유리공원은 재연의 내면세계에 가까울 수 있다고 말했다. 재연이 위로 받는 곳은 재연, 그 자신의 마음일 것이라는 것이다.

"재연이 가장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는 곳이 유리정원이잖아요? 다리도 마음껏 쓸 수 있고 하고 싶은 연구도 마음껏 할 수 있고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요." (문근영)

재연은 누군가가 먼저 자신을 이해하고 치유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내가 보호받고 안전하려면 더 튼튼한 공간이어야 할 것 같은데, 왜 아름답고 예쁜 유리정원, 금방 깨지기 쉬운 유리정원, 남에게도 쉽게 드러나 잘 보이는 투명한 공간이었을까 생각했어요.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내 다친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사람과 좀 더 나누고 싶고 정원으로부터 나를 꺼내줬으면 하는 양가적 마음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문근영)

 문근영 배우

문근영 배우 ⓒ 김광섭


힘들었던 장면, '하이힐 신'

문근영이 심적으로 힘들었던 신은 믿고 의지했던 정 교수가 재인의 연구물을 훔친 동료와 정사를 나누는 소리를 들으며 동료의 하이힐을 싣고 마당을 배회하는 장면이다.

"걸으면서도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영화를 봤는데, 감독님이 왜 걸으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아요. 상처를 받았을 때, 더 좋아질 것이라는 마음을 갖지 않기 위해서 자신에게 가르쳐주는 느낌,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문근영)

"분노를 발산하는 사람이 있지만 재연은 안으로 삭여서 분노를 누르면서 가는 인물일 거로 생각했어요. 정사 장면이 나오는 곳은 정 교수와의 추억이 있는 공간이잖아요? 마음속에서 떠나보내려고 갔는데 그 상황이 벌어지고, 자기 마음을 추스르면서 결국은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모든 것을 잊는다고 해야 하나? 그 느낌으로 연출하고 싶었죠.

중요한 것은 나무가 내려다보는 앵글을 잡기 위해서 나무가 있는 한옥집을 찾았어요. 무언가 본격적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재연을 지켜보는 존재가 나무죠. 그리고 바로 이사를 가는 장면으로 연결하고 싶었습니다." (신수원)

 영화 <유리정원>

영화 <유리정원> ⓒ 리틀빅픽처스


영화 <유리정원>, 총 4부로 구성

신수원 감독은 <유리정원>을 4부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1부는 재연이 숲으로 떠나는 순간까지, 2부는 지훈의 얼굴에 마비가 오고, 지훈이 창고 안에서 죽은 정 교수를 발견하는 부분까지다.

3부는 정 교수의 팔이 떨어지면서 재연이 실패한 실험을 직시하는 순간까지, 4부는 지훈이 유리정원에서 자신의 소설 속 판타지가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재연은 유리정원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까지다. 

뒷이야

"상처를 많이 줬다고 하는데 사실은 정 교수도 할 말이 많은 사람입니다. 정 교수도 재연의 순수함 때문에 좋아하기 시작했지만 연구실 랩을 이끌 책임감도 있고 여러 스트레스도 많아요. 사실 재연 캐릭터 안에 약간 자폐적 성향도 있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정 교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정 교수는 재연과의 관계보다 좀 더 큰 그림을 그리지 않았나. 굉장히 변명처럼 들리는데요(웃음)." (서태화)

"재연이 와인잔으로 자기 분노를 터트리잖아요? 재연이라는 인물이 와일드하게 때리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와인잔 장면 전에 따귀 때리는 장면을 넣었어요. 너무 뻔하고 재연하고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 설정을 와인잔으로 바꾸었어요." (신수원)

"영화가 끝나고 캐릭터와 닮았다고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사실, 잘 이해가 안 갔거든요. 같이 촬영하고 고민했던 분하고 이야기해보니 닮았다고, 너와 되게 비슷해서 어쩌면 덜 힘들었다 생각할 수 있었겠다고 이야기해주더라고요. 내가 어쩌면 재연과 비슷한 점이 있어서 마음이 끌렸고 더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는 마음도 들었나? 그래서 그동안 재연 때문에 힘들어야 할 감정들이 내게는 비슷한 감정이라서 덜 힘들게 느꼈나 생각을 이제야 해 봅니다." (문근영)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1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유리정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