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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핵재처리실험저지를 위한 30km연대, 시민기자, 대전 시민들로 구성된 특별취재팀이 한국원자력연구소를 주제로 기획 <스쿨존 옆 핵연구, 이래서 문제다!>를 진행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엄마들이 뭉쳐 꿈을 현실로 이뤄냈다. 대전 유성구의회가 ‘유성 민간원자력환경안전감시기구 조례 수정안’을 의결한 거다. 원자력 안전 관련 주민발의 조례안이 제정된 건, 이게 최초다.
 엄마들이 뭉쳐 꿈을 현실로 이뤄냈다. 대전 유성구의회가 ‘유성 민간원자력환경안전감시기구 조례 수정안’을 의결한 거다. 원자력 안전 관련 주민발의 조례안이 제정된 건, 이게 최초다.
ⓒ 핵재처리실험저지 30km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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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

땅이 들썩였다. 대전 유성구에서 지진이 났다. 2016년 11월 27일이었다. 10년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지난 2006년 3월 19일 유성구에 2.0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시간을 거슬러 1970, 80년대도 그랬다. 진도 2.0 이상의 지진이 관측됐다. 대전 유성구의 지진은 꽤 역사가 깊다. 이렇게 흔들리는 땅 위에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있다.

질문이 있다. 지진이 빈번한 동네에 원자력연구원까지 끼고 산다면 어떻게 하겠나? 아이들이 뛰어노는 학교 운동장에서 방사능 경보음이 울렸다면 어찌하겠나? 이건 가정이 아니라 실화다.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 주변에 사는 엄마 아빠의 선택은 이랬다.

거리에 선 엄마, 피켓을 들다

엄마가 거리에 섰다. 대전 유성구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위험한 핵연료 실험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엄마가 거리에 섰다. 대전 유성구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위험한 핵연료 실험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 핵재처리실험저지 30km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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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해 거리에 섰다. 가족을 지키려 피켓을 들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용기를 낸 거다. 위험한 핵연료 연구 시설 옆에서 살려면 선택해야 했다. 침묵은 답이 아니었다.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 목소리를 냈다.

'핵연료 제3공장 신설'

이 한 문장에 엄마들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핵연료'란 단어에 걱정과 불안감이 밀려왔다. '제3공장'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가까웠다. 평상시 가족들이 이용하는 식당, 카페, 마트, 은행 등도 근처에 있었다. 그제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눈에 보였다.

지난 2013년 ㈜한국원자력연료(KNFC)는 핵연료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공장 증설을 추진했다. 국내 수요량 증가와 2016년 말부터 아랍에미리트(UAE)에 핵연료를 수출하기 위해서다.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의 몸집을 불리는 일이었다. 원자력연료를 담은 드럼이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지 안에 들어왔다.

'원자력연구원 1~2저장고-1만 4132.5드럼
한전원자력연료-6833드럼
방사성폐기물 관리공단 대전분소-4459.3드럼
하나로원자로-7183드럼'

당시 대전환경운동연합이 공개한,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있는 중·저준위폐기물과 고준위폐기물 저장량이다. 200리터 드럼을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 이렇다. 수치로 따지면, 전국 2위 수준이다.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선 핵연료 연구만 하는 게 아니었다.

엄마는 서명운동, 아빠는 법정투쟁

대전 시민들이 한국원자력연구원과 관련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대전 시민들이 한국원자력연구원과 관련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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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이 뭉쳤다. 지난 2013년 6월 '대전핵연료시설증설반대시민대책회의'가 결성됐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인근에 사는 유성구 주민들은 '유성핵안전주민모임'을 만들었다. 지식을 쌓고 정보를 교류했다. 알고 보니 '핵연료 제3공장 증설'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지엔 안전을 위협하는 시설이 많았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사실을 확인했다. '원자력'이란 말에 포장된 '핵'의 위험성을 알게 됐다. 두려웠다.

거리에 테이블을 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리기 위해서다. 핵연료 공장 증설에 반대하는 서명 용지를 챙겨 골목을 누볐다. 지나가는 이들을 붙잡고 서명을 받았다. 유성구에서만 7천여 명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적었다. 꿈같은 일이었다.

꿈이 현실이 됐다. 핵연료 증설 반대운동은 민간감시기구 설치를 위한 조례 제정 운동으로 번졌다. 또다시 서명운동을 이어가 3개월 동안 1만여 명이 동참했다. 그 결과 지난 2015년 말, 유성구의회는 '유성 민간원자력환경안전감시기구 조례 수정안'을 의결했다. 원자력 안전 관련 주민발의 조례안이 제정된, 최초의 사례였다.

아빠도 두 손을 치켜 올렸다. 지난해 1월 법원은 한전원자력연료(주)와 지역주민 간 합의 내용을 담은 '상생협약서' 공개를 놓고 벌인 소송에서 원고인 한명진 유성핵안전주민모임 운영위원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한국원자력연료는 핵연료 공장의 증설을 추진하면서 지역 거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자 2013년 6월부터 8월까지 주변지역(대전 유성구 구즉동, 관평동, 신성도, 전민동)의 주민자치위원회와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내용은 핵연료 공장을 증설하되 주변지역에 금전적인 지원 등을 한다는 약속을 담았다.

지난 2014년 6월, 한명진 운영위원은 한전원자력연료(주)에 상생협약서를 공개하라고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하지만 한전원자력연료(주)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 정한 비공개정보라며, 이를 거부했다. 이게 소송으로까지 확대돼 법정에서 정보공개 여부가 가려졌다. 오랜 법정 다툼 끝, 아빠가 승소했다.

위험한 핵연료 연구, 한국원자력연구원의 대답은?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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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다리가 풀리고 힘이 빠지는 일도 많았다. 조례 제정운동 때는 상임위 통과를 호언장담했던 구의원이 정작 의결 과정에선 나서서 부결 시킬 땐, 분노했다. 유성구의회 사회도시위원에서 안전감시위원회 예산비용을 전액 삭감할 때는 절망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서명용지를 들고 다니면 "집값 떨어진다"고 뒷말하는 이가 있었다. 피켓을 들면 "전기 쓰지 말라"고 비꼬는 이도 있었다. 기자회견을 열면 일부 주민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고, 주민설명회에 가면 원자력업계 종사자들은 무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마음에 크고 작은 생채기가 남았다. 

지키고 싶은 게 있으면 강해진다. 엄마 아빠들은 이랬다. 굽히지 않고 의지를 꺾지 않았다. 핵연료 제 3공장 증설에 반대하던 목소리가 커져 핵연료 연구까지 확대됐다. 이름도 '핵재처리실험저지 30km연대'로 바꿨다. 아이들도 엄마 아빠와 함께 거리에 서고 피켓을 들었다.

엄마와 아빠, 아이들은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다음은 그 내용 중 사용후핵연료와 파이로프로세싱(건식재처리)에 대해 정리한 내용이다. 방사능폐기물과 관련한 사항은 기사 '대전 도심 방사능폐기물, 관련 기관 입장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 소유의 사용후핵연료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지적이 있다.
"한수원과의 소유권 문제나 사용승낙서 등의 준비가 소홀했다. 그러나 정부 주무부처인 산업통산자원부 장관도 참여한 원자력위원회(현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해 수립한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따라 연구를 수행했다."

- 사용후핵연료 실험을 하려면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보고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안다.
"한국 정부의 승인 하에 미국과의 협의를 통한 한미 공동결정을 체결해 사용후핵연료 시험내용과 사용량에 대한 허가를 받았다. 매년 IAEA와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에 신고하고 사찰받는 과정을 거치는 등의 사용후핵연료 사용에 대한 공적 규정과 절차는 준수했다."

- 대전 한국원자력위원회에 보관중인 사용후핵연료 저장량이 임박했다는 지적이 있다.
"연구원은 원전 사용후핵연료의 조사후시험기술개발, 연소성능평가 및 결함원인 분석 등을 위하여 1987~2013년까지 21회에 걸쳐 1699봉(8다발)의 핵연료를 운반해 시험을 수행하고 보관 중에 있다.

주변지역 주민, 지자체, 국회의원들의 사용후핵연료의 보관 위험성에 대한 우려 제기에 따라 관련기관의 논의를 통해 핵연료 발생지 반환 계획을 수립해 추진 중에 있다. 구체적인 계획은 2017~2022년 핵연료반환 기술개발 완료, 2023~2024년 연료봉-시험절편-집합체 수으로 순차적 반환할 예정이다."

-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의 기체방사성폐기물 포집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기체방사성폐기물의 배출구가 동위원소생산시설과 동일하다는 지적인데, 분리해 측정할 수 있도록 파이로프로세싱 운전일정을 조정할 거다. 시설별로 상이한 기체방사성폐기물 발생하는 점을 활용해 세슘 미 요오드의 정확한 배출량 측정이 가능하다."

- 원자력연구원에서 10년간 배출한 크립톤이 4조 4천 베크렐(Bq), 세슘은 75만 4천 베크렐이나 된다.
"법적관리기준인 배출농도를 넘지 않는다. 또한, 연구원 내 모든 원자력시설의 방출량 자료를 토대로 연구원 부지 주변 주민선량평가를 수행하고 있는 바, 최근 5년간의 결과를 보면 최대값이 0.00179 mSv로 부지 기준치*0.25 mSv)의 0.15~0.72%에 해당해 원자력시설 운영으로 주변 주민에 대한 영향은 거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엄마, 아빠 환경대상 수상

"주민 활동의 성과로 유성구 조례 제정, 원자력 안전협약 체결, 원자력 안정성 시민 검증단 구성을 이끌어 냈다... (중략) 대도시 한복판에서 해온 여러 실험과 연구, 곧 핵재처리 실험(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 연구 개발 등이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탈핵으로 전환을 꾀하는 최근 국면에서 전국적, 전국민적 사안임을 알린 노고를 격려하고 응원하고자 한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핵재처리실험저지를 위한 30km연대'를 올해의 가톨릭 환경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다. 아이들을 위해 거리에 선 결과였다. 가족을 지키려 노력한 성과였다. 위험한 핵연료 실험을 알리기 위해 4년간 발품을 판 공로였다.

다시 거리에 서다

지난 7일~10일 대전 유성구 주민들이 상경집회에 나섰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 연구 예산의 전액 삭감을 요구하며 피켓을 들었다.
 지난 7일~10일 대전 유성구 주민들이 상경집회에 나섰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 연구 예산의 전액 삭감을 요구하며 피켓을 들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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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가 다시 거리에 섰다. 현수막을 챙기고 피켓을 들었다. 지난 7~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핵연료 건식재처리) 사업 관련 정부 예산의 전액삭감을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갔다.

같은 시각, 국회에선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아래 과방위)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요구한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고속로 관련 예산안을 심의했다. 결과는 561억 원의 예산이 통과됐다.

그래서다. 엄마, 아빠는 오늘도 위험한 핵연료 실험(관련기사: 집 옆에서 핵연구. ."엄마는 무섭고 두려워")을 알리기 위해 길 위에 섰다. 흔들리는 땅위에 세워진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인근에서 살아가기 위해 차디찬 겨울바람 속으로 뛰어들었다.

서명운동 동참하기
핵 재처리 실험에 반대하는 서명운동(☜클릭)에 동참해주세요.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핵발전소와 핵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안전점검이 실시될 수 있도록 참여를 바랍니다. 이 서명운동은 공론화 과정을 통해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올바른 방안 찾고자 핵재처리실험저지 30km 연대에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태그:#한국원자력연구원, #핵재처리실험저지, #파이로프로세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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