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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서 태어난 강아지가 타지로 팔려갔지만 주인을 찾아 몇 백 킬로미터를 돌아왔다는 감동적인 '백구 이야기'가 있다. 광고에도 등장했을 만큼 유명해졌고 진도의 백구 테마파크와 '돌아온 백구상' 동상도 있다. 그 이후로 십여 년이 넘게 흘렀지만 집 떠난 개가 주인을 찾아 먼 길을 돌아왔다는 기사는 많이 접하지 못했다.

집안과 집주변에서만 생활하는 개들이 유기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이제 쉽지 않다. 절대 돌아 올 수 없는 곳에 유기되거나 위험천만한 도로 위에도 유기되는 게 현실이다. 유기견이 된 순간부터 개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데 로드킬을 당하거나, 굶어 죽거나, 혹은 병으로 죽는 거다.

운이 좋아 유기동물보호소로 오게 되었다 해도 10일간의 입양 공고 내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되어 처분되는 게 정해진 수순이다. 사설 보호소로 오게 된다면 안락사라는 극단적인 수순은 피하지만 엄청난 개체 수의 개들과 뒤섞여 살아야 한다. 또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평생 견사 안에 살다 생을 마감해야 한다.

처음 간 유기동물보호소 봉사활동에서 몸의 고단보다 더 힘들었던 건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왜 이곳에 있어야 하지'라는 속상함과 안타까움이었다. 당장에 새로운 가족을 만나 가정으로 가도 손색이 없을 만큼 상태가 양호가 개들도 많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반갑다며 다가오는 개들도 많았다.

반짝이는 눈동자와 몸짓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도 한때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을 텐데 스스로 온건 아닐 테고 누군가에 의해서 보호소까지 오게 된 거다. 그게 한때는 가족이라며 예뻐해 주던 주인이었는지 혹은 구조대였는지 모르지만 다시 주인을 만날 거라는 기약 없는 기다림만 있을 뿐이다.

글,그림 햄햄 ㅣ출판사 이야기나무
▲ 주인님, 어디 계세요? 글,그림 햄햄 ㅣ출판사 이야기나무
ⓒ 심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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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제는 집 떠난 개가 주인을 찾아 먼 길을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희박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백구 이야기'처럼 주인을 찾아 나선 시바견의 여정을 담은 그림책은 있다. <주인님, 어디 계세요?>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읽을 수 있는 그림책으로, 봄의 햇살을 담은 듯한 따뜻한 그림체와 담담하게 써 내려간 감성 그림책이다. 따뜻한 그림과 달리 주인을 찾아나서는 시바견의 가슴 아픈 여정을 담고 있다.

길을 걸어요.
그림자가 길어졌어요.
걸음을 멈추면
그림자는 저를 기다려요.
주인님도 저를 기다릴까요?
- 본문 중

단시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이라 가볍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몇 번을 연거푸 읽어본 나로서는 읽을 때마다 다른 감정과 해석이 나오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처음 읽을 때는 오롯이 유기견의 시선으로 따라가 보았는데 애타게 주인을 찾는 유기견의 안타까운 현실이 가슴에 와닿았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유기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시바견을 따라가 보았는데 읽는 내내 아련한 행복감을 감추지 못했다.

세 번째 읽을 때는 앞서서 내린 결론과는 다른 결론으로 해석했는데 그 이후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했다. 네 번째 읽을 때는 또 어떤 감정과 해석을 끌어낼지 궁금하다. 이렇게 읽을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작가가 의도한 것이라면 성공이다.

<주인님, 어디 계세요?>의 '햄햄' 작가도 주인을 찾는 강아지의 감동적인 이야기만을 담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 거다. 유기동물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바라는 마음으로 길 위의 생명이 행복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으리라 생각된다.

자신이 힘든 시기에 함께 있어준 반려견에게 큰 위안을 받았다는 저자는 그 책임감의 무게를 알기에 쉽게 강아지를 가족으로 맞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언젠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때 반려견을 입양할 거라고 말한다. 당장의 유기견을 입양하진 못하지만 대신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유기견 문제를 알렸다.

주인을 찾아가는 책 속 시바견의 과정이 내가 알고 있는 '백구 이야기'가 아닌 어딘가에서 주인을 애타게 찾고 있을 유기동물의 마음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유기동물들은 열악한 보호소에서 매서운 바람과 추위에 맞서며 새 주인을 만날 그날을 꿈꾸며 오늘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이가 행복을 찾는 유기동물과 함께 하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반려인과 반려동물을 위한 반려동물 전문서점 <동반북스>의 지기입니다.



주인님, 어디 계세요?

햄햄 지음, 이야기나무(2017)


태그:#반려동물, #유기견, #유기동물, #주인님,어디계세요?, #햄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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