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수!! 조갑수 불러와!"

형제 로펌 건물 옥상에서 한 여자가 외친다. 그녀가 위험을 감수하고 옥상 난간에서 이토록 절박하게 소리 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이듬(정려원 분)의 어머니는 20년 전 실종됐다. 성폭행 사건의 증거를 없애려던 조갑수(전광렬 분)에 의해 납치, 감금 당했기 때문이었다. 마 검사는 유명해지면 어머니를 만날 확률이 늘어날 거라는 생각에, 꼭 출세하겠다고 다짐했다. 범인이 형제 로펌 고문이사 조갑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 검사는 복수를 위해 칼을 갈기 시작한다.

KBS 2TV 월화 드라마 <마녀의 법정>은 현재 시청률 11.9%(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속도감 있는 전개로 사랑받고 있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복수극과는 다르다. 큰 틀에서는 복수를 위해 나아가는 마 검사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여성·아동 대상 범죄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꽃뱀 아니야?" 여자가 먼저 유혹했다는 오해

 마녀의법정

ⓒ KBS


마 검사는 조갑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증거 조작까지 서슴지 않는 등 무리하게 재판을 진행하다 결국 법복을 벗게 된다. 이제는 검사가 아닌 변호사가 된 마이듬. 그녀는 성폭행 사건을 맡아 피고인을 변호한다.

어깨를 훤히 드러내고 몸에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은 포토그래퍼 양유진(손담비 분). 그녀를 바라보는 파티쉐 이상현(이신성 분)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사진촬영을 마치고 양유진은 이상현에게 술을 마시자고 권한다. 양유진은 손금을 볼 줄 안다며 이상현의 손을 잡기도 하고, 술을 얼마 마시지 않고도 심하게 휘청거린다. 양유진의 모습을 보며 나는 성폭행 당했다는 그의 말을 믿기 힘들었다.

너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계산도 양유진이 했다는 대사를 듣고 의심은 더욱 커졌다. 마이듬 역시 이런 정황을 바탕으로 재판장에서 여진욱 검사(윤현민 분)를 상대로 우세한 상황을 만든다.

"아무한테나 막 하트를 남발하나 보죠?"

 마녀의법정

ⓒ KBS


하트로 가득한 이상현과의 메신저 대화, 노출이 심한 시스루 원피스. 마이듬은 이를 토대로 양유진에게 "먼저 유혹한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게다가 콘돔 구입 내역이 함께 찍힌 영수증도 있었다. 마이듬은 "이래도 동의한 것이 아니냐"고 재차 물었다. 여 검사가 옷차림으로 성폭력과 연관짓지 말라고 제지하지만 역부족이다. 심지어 평소 주량보다 훨씩 적은 술을 마시고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양유진의 말은 신빙성이 떨어져 보였다.

그래서 양유진이 '꽃뱀'으로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양유진은 피해자라고 하기엔 드세보인다'고 생각했다. 결과를 안 뒤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이상현이 파란색 계통의 칵테일만 시켰던 이유, 평소보다 적은 술을 마셨는 데도 양유진이 기억을 못했던 이유는 바로 데이트 약물 때문이었다. 녹아 들면 푸른빛이 도는 데이트 약물을 숨기기 위해 이상현은 푸른색의 칵테일만 시켰고, 그로 인해 양유진은 '심신상실'의 상태를 보였던 것.

결과를 보고 나는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비록 드라마였지만 나는 색안경을 낀 시선으로 성폭력 피해 여성에게 2차, 3차 피해를 주고 있었다. "네가 먼저 유혹한 거 아니냐", "노출이 심한 옷을 왜 입었냐", "정말 몰랐냐. 동의한 것 아니냐" 등.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하는 시선들

평소 나는 성폭행 사건에 무죄 판결이 나오더라도 신고한 여성이 '꽃뱀'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또 여성을 무고죄로 강력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성폭행 사건에서 무죄가 나오는 과정엔, 사건 특성상 명확한 증거를 수집하기 어렵다는 점과 정신적 충격을 받은 신고 여성들이 2차, 3차 피해를 겪으며 무너지는 상황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꽃뱀'이라거나 무고죄를 강화해야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똑같은 시선으로 피해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해자로 보기에는 드세다는 이유나, 옷차림이 섹시하다는 이유로. <마녀의 법정>이 보여주고 싶었던게 바로 이런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재판장에서 이상현을 변호하는 마이듬 변호사와 같은 입장이었던 것이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답지 못하다"며 "어째서 성폭행이 일어나도록 만들었냐"고 오히려 추궁하는 말들, 우리가 현실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계속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녀의법정

ⓒ KBS


지금 포털 사이트에 '꽃뱀'이라는 단어만 쳐도 수많은 기사들이 뜬다. 얼마 전, 크게 논란이 되었던 한샘 성폭행 사건(성폭행 당한 피해자를 도와주던 인사 관계자가 또 다시 성폭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크게 논란이 됐다-기자 주)의 경우에도 가해자가 올린 메신저 대화내용을 들면서 '피해자가 유혹한 것 아니냐', '꽃뱀인 것 같다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몇 번 친근하게 나누었다는 이유로, 숨어있지 않고 신고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평소에 친분이 있었다는 게 성폭행 사실을 부정하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노출이 심한 옷이 유혹의 의미나 성관계를 가져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같이 모텔에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만약 키스 등의 스킨십을 했다고 해도 성관계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거절하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거절하는 것이다.

<마녀의 법정>은 이를 말하고 있다. 우리의 잘못된 시선 탓에 피해자는 두 번, 세 번 상처를 입고, 진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가해자는 이를 이용해 속으로 웃고 있지는 않을지. <마녀의 법정>은 이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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