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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가 주변 사람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누누이 지적하듯이, 이는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각기 다르게 결정되는 것이지, 어느 누구의 잘잘못이 아니다. 흔히 하는 말로, 'case-by-case'인 셈이다. 그리고 과연 우리가 정말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속속들이 전부 다 알 수 있을까?

여기 한 사람의 엄마가 있다. 다른 모든 평범한 엄마들처럼,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세상에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다"고 가르쳤다. 어릴 때부터 아이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대학에서는 아동발달과 아동심리를 전공했고, 직장에서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가르치는 일을 오래 했다. 그래서 자신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1999년 4월 20일 이후 그녀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열세 명의 사망자와 스물네 명의 부상자를 낸 미국 콜럼바인 학살 사건의 가해학생 두 명 중에 한 명이 바로 자기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수 클리볼드, 2016)는 화목한 중산층 가정의 엄마가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 된 아들(딜런 클리볼드)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애쓴 16년간의 처절한 기록이다.

"딜런 클리볼드는 내 아들이다. 그날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을 바칠 것이다. 그날 죽은 사람 한 명의 목숨과 내 목숨을 바꾸자고 하더라도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무슨 말을 하더라도 학살을 속죄할 수는 없다. 그 끔찍한 날 뒤로 16년이 흘렀다. 그 열여섯 해를, 나는 아직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데에 바쳤다." - 수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원제 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 표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원제 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 표지.
ⓒ Ebury Publishing,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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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우리는 아이가 범죄를 저지르면, 뭔가 부모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부모가 자식을 가장 잘 안다고 여기며,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식의 결함을 미리 알아채고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가해자의 엄마' 수 클리볼드 역시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어요?"였고, 본인도 스스로에게 밤낮으로 이 질문을 던졌다.

저자는 10년 넘게 수많은 전문가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세상에 공유한다. 물론 이런 시간들 자체가 엄마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겨웠다. 같은 학교 아이들을 학살한 자기 아들의 삶 전체(그런 삶을 만드는 데 기여한 자신의 인생)를 처음부터 끝까지 반추해 보는 지난한 작업이었으며,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신이 놓쳤던 부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는 서서히 눈이 뜨이며 마주하게 된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가해자의 엄마는 아들을 향한 사랑과 피해자들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이를 하루하루 계속해나간다. 미칠 것 같은 공황발작이 수시로 찾아오고, 때론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데에만 네 시간이 넘게 걸릴 정도로 우울증이 심각한 상황(우울증의 가장 흔한 증상 중 하나가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힘든 것이다)에서도 수 클리볼드는 자식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뭔가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가족과 일 그리고 자기가 이제까지 평생 믿고 살아온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해 이 문제에 천착한다.

그래서 17살에 총기 학살범이 된 딜런과 그의 엄마 이야기를, 사건이 발생하고 17년이 지난 다음에 우리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굉장히 섬세하면서도 솔직하게 자신의 삶과 딜런의 탄생부터 자살까지의 과정을 통찰력 있게 기록하고 있으며, 감정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관련 전공자답게 실제 있었던 일과 전문적인 내용을 적절히 조합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수 클리볼드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균형감각'이다. 이런 부류의 글은 자칫 잘못하면 그저 한풀이에 그치거나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변명으로 점철되기 쉬운데, 저자는 값싼 용서를 구하기보다는 스스로 깊은 참회의 길을 걸어간다.

또 한편으로는 객관성이라는 허울 뒤에 숨어서 가식적인 사죄를 통한 면피를 시도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도 있었을 텐데, 수 클리볼드는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표현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설사 그것이 일부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위험성이 있을지라도, 원제 <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처럼 "비극의 여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한 엄마의 응보"가 보여주는 진짜 모습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책 곳곳에 언뜻 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내밀한 감정선들이 드러나는 부분들도 있다. 바로 '엄마'이기에 할 수 있는 솔직한 얘기들인데, 이마저도 측은지심을 가지고 근원적인 인간성의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납득이 되는 내용들이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찬찬히 읽다 보면, 저자가 자신의 아픔을 동력으로 삼아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노력을 꾸준히 한 흔적을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가히 '인류애'가 느껴지는 부분들인데, 오랫동안 지역사회와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책임 추궁을 당했던 이가 어쩌면 이토록 완고하게 '희망'을 지켜올 수 있었는지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수 클리볼드는 이제 '우울증 조기 발견 및 자살 예방에 관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하니(저자는 가해자의 엄마로서, 특별히 '자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와 과정을 책 본문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아주 설득력 있게 서술하고 있다), 극심한 슬픔 속에서도 아들에 대한 사랑을 더 확장하고 정말 더 나은 방향으로 도약한 삶이 아닌가 싶다. 분명히, 이 책에는 한 인간의 희생 정신이 저변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사실 아름다움보다는 '불편함'을 더 많이 느낄 수밖에 없는 책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 공감하고, 특히 아이들이 피해자일 경우 가해자는 거의 '괴물' 취급을 당하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범죄를 저지른) 자식을 가장 잘 아는 건 부모라고 생각하며, 괴물을 키운 엄마는 일반적으로 비판의 대상이다. 제대로 된 부모라면 사건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판타지'에 기반해서, '아들을 잘못 키운 엄마'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인간이 원래 그렇게 단순하지 않듯이 이런 문제도 절대 단순할 수가 없다. 가해자라고 해서 항상 거짓말과 변명만 하는 건 아니며, 피해자라고 무조건 진실만 말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괴물로 단정 짓고 범인을 '타자화' 하는 동안, 나의 바로 옆에서 그와 유사한 범죄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결국 외부로 폭발하면 '살인'이 되고, 내부로 추락하면 '자살'이 된다. 살인과 자살은 생각처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학살범 딜런 클리볼드는 왕따도 아니었고, 말썽꾸러기도 아니었으며, 사이코패스는 더더욱 아니었다. 뭔가 취약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것 자체가 완전히 일반인과 구별될 만큼 어떤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이 정도 취약성은 우리 주변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누구에게라도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랬기 때문에 수 클리볼드는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어요?"의 대답을 찾기 위해 무려 16년 동안이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헤맸고, 현재의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불편한 진실'을 목도하게 된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취약한 이들의 자살방지를 위해 우리가 진짜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정말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게 뭔지를 끊임없이 탐구한다(물론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이 책도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자살률 세계 1위인 우리 사회에서도 참 의미가 있고, 중요한 시사점이 많은 책이다. 감히 말하건대, 교육 문제가 전 세계에서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무척이나 심각한 한국의 부모들이 꼭 한번은 읽어봤으면 한다. 자녀와 함께 읽은 다음에 같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보면, 분명히 뭔가 얻는 게 있을 것이다.

"부모가 그 무엇보다도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 세상에서 나만큼 더 잘 아는 부모가 없을 진실이 있다. 바로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거다. 나는 딜런을 무한히 사랑했지만 그래도 딜런을 지키지 못했고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살해된 열세 명도, 그 밖에 상처 입고 고통받는 사람들도 구하지 못했다 ... 내 이야기를 최대한 충실하게 들려주면, 나는 발가벗겨진 기분일지라도, 다른 부모들이 아이들 얼굴 너머에 있는 것을 보고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줄 수 있도록 도와줄 빛을 비출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수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반비(2016)


태그:#나는가해자의엄마입니다, #수클리볼드, #살인, #자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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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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