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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우(know-how)'란 특허화 되지 않은 발명, 축적된 기술, 비법(秘法), 경험에 의한 전략, 기술적 비결 등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그런데 국어사전에서는 '남이 알지 못하는 자기만의 독특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풀이한다.

그렇다보니 '노하우'는 조금은 보통이 넘는 사람들의 독창적인 비법을 말할 때 쓰이는 용어로 인식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사실 특정한 분야에서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술상의 비법 혹은 비결도 포함한다고 본다.

농사 11년. 과연 나에게 농사에 관한 '노하우', 즉 기술적 비결 혹은 비법을 얼마나 터득하고 축적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소개할 만한 '노하우'를 찾을 수 없다.

나에게 농사는 자급자족을 1차적인 목표로 하는 일이었으며 건강을 챙기는 놀이였다. 농사를 창조적인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새로운 노하우를 축적하려는 노력 없이 시골 노인들의 관행농법을 따라하며 심은 만큼 거두는 것으로 만족했던 11년이었다. 더 변명을 하자면 수확한 농산물을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고 여기면서 자족했기에 농사의 '노하우'를 찾기에 게으르지 않았나 싶다.

모든 기다림의 과정에서 부지런함으로 승부를 보는 일이 '농사'

옥수수는 식량이라기보다 간식용이다.
그리고 옥수수는 치아와 잇몸이 부실한 사람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식품이다. 
옥수수는 조경용으로도 그만이다.
▲ 초여름 옥수수밭 옥수수는 식량이라기보다 간식용이다. 그리고 옥수수는 치아와 잇몸이 부실한 사람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식품이다. 옥수수는 조경용으로도 그만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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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생활이나 농부의 일상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농사의 '노하우'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그런데, 정작 성공했다는 농부들의 '노하우'를 살펴보면 독자적인 발명이거나 새로운 경험을 통해 획득한 비법이 아니라 농사로 1년 매출이 얼마나 되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우리 마을에서도 "농사 잘한다!"는 말은 농사 기술이 좋아 청정하고 안전성에서 우수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품목을 잘 선정하여 수익을 많이 올리는 속칭 '대박!'을 터뜨린 사람에 대한 평가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만약 수익을 올리는 기술이 곧 농사의 '노하우'라고 한다면 나는 자랑할 만한 농사의 '노하우'가 없다는 사실에 자책하거나 크게 부끄러워하지 않겠다.

온대 몬순 기후대인 우리나라 농사란 1년 단위로 반복되는 과정이다. 봄에 텃밭에 고추 상추 오이 가지 참깨 생강 옥수수 등을 심고, 6월에는 지난해 가을 심었던 양파 마늘 완두콩 등을 수확한다. 마늘과 양파를 캐낸 자리에는 참깨를 심고 각종 여름 채소를 수확하여 먹다보면 참깨를 벨 시기가 된다. 참깨를 털어 말리고 나면 김장 무와 배추를 심고 추석 무렵에는 마늘을 심는다.

고구마 캐고 단감과 대봉시를 만지작 거리다 보면 양파와 완두콩 심을 계절이 된다. 천천히 하우스 안을 정리하여 겨울에 먹을 채소를 심으면 농한기에 접어든다. 농한기는 텃밭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시간에서 벗어나 봄이 오기까지 잠시 여유를 갖게 된 시간을 말한다. 그리고 다시 봄이 되면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순환과정에 서게 된다.

알묘조장이 통하지 않는 것이 농사다. 사냥처럼 순간의 기회를 잡기 위한 일도 아니다. 농사란 제때에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옮겨 심고 그것이 잘 자라도록 지켜보면서 성장을 방해하는 풀을 매주고 가뭄에는 물을 주며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기를 기다렸다가 열매가 익으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수확하는 일이다.

그 모든 기다림의 과정에서 부지런함으로 승부를 보는 일이 농사인 셈이다. 그렇다고 부지런한 사람이 농사에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홍수 가뭄 태풍 등 자연의 재앙에 당하고 작게는 산짐승들의 피해도 입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시장 수요를 예측하여 품목을 잘 선택했음에도 정부의 농산물 가격 안정이라는 날벼락에 당하는 경우도 흔한 일이다. 그래서 농사는 농부가 아무리 부지런 해도 하늘의 뜻이 절반이요, 권력과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의 가격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탄식이 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땀 흘려 일하고 자연이 하락하는 대로 감사하며 살겠다는 의지

뽕나무 열매인 오디는 손으로 따는 열매가 아니다. 망에 쏟아진 것을 주워담으면 되는 일이다. 금년에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의 재미를 안겨주었다.
▲ 뽕나무 뽕나무 열매인 오디는 손으로 따는 열매가 아니다. 망에 쏟아진 것을 주워담으면 되는 일이다. 금년에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의 재미를 안겨주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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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의 나의 농사를 간단히 개괄해보면, 여름 가뭄 때문에 강낭콩 메주콩은 수확을 포기했고 호박농사도 망쳤다. 고추는 하우스에 널어놨다가 침수되는 바람에 버렸다. 토마토는 일찍이 병이 와서 뽑아야 했다. 그래도 마늘 양파는 풍작이었기에 찾아온 지인들에게 나눔이 가능했고 완두콩 역시 우리가 먹을 정도는 되었다.

옥수수 모종 100주는 손실 없이 자라 지금도 창고 그늘에 말리고 있는데 내년 봄까지 옥수수차로 먹기에 충분한 양이다. 아로니아 생강 토란도 나의 건강식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가뭄에도 잘 견디고 생육기간도 짧은 참깨 농사가 잘 되어 잘 여문 참깨를 7되 반이나 털었는데 다행이다.

그리고 오디를 20kg 이상 수확한 사실도 자랑하고 싶다. 재래종 뽕나무 한 그루를 구해 심은 지 10년 만에 가장 많은 수확을 했는데 나무 밑에 망을 쳐놓고 긁어 담았던 재미는 짧게 설명이 불가능하다. 선별하여 1kg씩 비닐팩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해두고 지금도 아침이면 바나나와 함께 주스로 먹고 있으니 돈으로 살 수 없는 보약을 먹는 셈이라고 하겠다.

요 며칠간 단감과 대봉을 수확했다. 비록 벌레가 절반 먹고 또 새들이 그 중의 절반을 먹었다. 크기도 작고 상품성은 떨어지지만 남은 양이 각각 한 접씩은 되니 한동안 두 식구가 먹기에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11월이다. 지난 1일은 남평장날이었다. 아내는 자색양파와 희색양파 한단씩을 사다 심었다. 그리고 아내는 내일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를 보더니 오후에는 완두콩 씨앗을 넣었다. 겨울을 나고 내년 6월에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숙지원의 금년 농사는 사실상 끝난 셈이다.

이제 기다리지 않아도 눈 내리는 겨울은 올 것이다. 농부에게 겨울은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시간이요 또 보이지 않는 길을 만들기 위해 힘을 비축하며 기다리는 시간이다. 나는 농사로 얻는 고구마 같은 농작물만이 자연의 선물이 아니라, 농한기의 기다림의 시간도 자연이 농부들에게 허락한 선물이라고 여긴다.

특별한 기술상의 '노하우'도 없고, 시세를 보는 '노하우'도 없는 내가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은 농사였다고 자평하는 까닭은 어려운 여건에서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일에 게으름 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농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변화가 느리고 혁신의 범주가 좁은 산업이다. 오늘의 농부가 알아차린 농사의 '노하우'도 이미 100년 전 조상들의 깨우침일 수 있다. 실제로 농작물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사용하는 연장과 기계는 진보하지만 농사를 주관하는 농부의 역할과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농사에서 소득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산술적인 계산에 혹하지 않고, 농부에게 '노하우'는 '경험을 통한 깨달음'이 곧 비결이요 비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땅에 대한 신심과 농작물에 대한 정성을 담는다면 농사는 정신적인 안정과 여유 그리고 마음의 풍요를 누리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하여 시장에 의지하여 요행을 기대하는 '노하우'보다는 땀 흘려 일하고 자연이 하락하는 대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농사는 몸과 마음의 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다. 자연 속의 삶을 동경하고 자연에 귀의할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농사,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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