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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애하는 빅브라더>표지
 <친애하는 빅브라더>표지
ⓒ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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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유동하는 감시>다. <친애하는 빅브라더>는 이 책 전반에 걸친 내용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제목이다.

'빅브라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절대적인 권력자이다. <1984> 속에서 사람들은 빅브라더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다한다. 자발적이고도 열광적으로 말이다.

이 책은 제법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과 데이비드 라이언이 주고받은 이메일을 책으로 엮었다. 이메일로 주고받은 내용이다 보니 책은 두 사람의 대담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사회를 '유동하는 현대'라 지칭한다. 모든 것들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흐르는 시대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주 내용은 '감시'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감시는 '소비'와도 연결된다.

우선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선 '파놉티콘'이란 용어의 이해가 필요하다. 파놉티콘은 1791년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고안한 원형 감옥이다.

감옥의 중앙에는 높은 감시탑이 있고, 중앙 감시탑 바깥의 원둘레를 따라 죄수들의 방이 있다. 중앙 감시탑은 늘 어둡게 하고, 죄수들의 방은 밝게 해 중앙에서 감시하는 감시자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죄수들이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죄수들은 늘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해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 

과거의 감시는 파놉티콘 개념과 같이 감시자의 존재를 분명히 각인시켰지만, 현대의 감시는 감시자가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또 오늘날의 감시는 전자 세계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정보는 수집되고 기록된다. 카카오톡 메신저부터,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 서버에는 우리가 사용한 모든 흔적이 남고, 심지어 쇼핑 기록마저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감시라 전혀 느끼지 못한다. 또 이 정보들이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 우리의 세세한 일상이 노출되지만, 우리를 감시하는 조직의 실체를 알 수 없다. 이 정보들은 빅데이터와 결합하여 더욱더 많은 양의 방대한 감시를 일상화한다.

바우만에 따르면 과거의 감시는 공포를 심어주었지만 현대의 감시는 "결코 다시는 홀로 남겨지지 않게 되는(버려지지 않고, 방치되지 않고, 가입이 거부되지 않고, 배제되지 않는 등의) 희망을 재구성한다. 주목받는 사실에서 오는 즐거움이 폭로의 두려움을 억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를 중히 여기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비밀을 공개적으로 전시하고 그것을 만인과 공유하도록 만들며 모든 사람 또한 비밀을 공유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프라이버시의 공개를 당연시하게 된 것은 이 흐름에서 벗어난다면 배제되고 따돌림당하는 상황이 일반화되기 때문이다. 즉, 사회적 죽음을 선고당한다.

이는 바놉티콘으로 지칭된다. 파놉티콘이 시스템에 의한 감시라면, 바놉티콘은 시스템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시스템에 부정적인 이들을 낙인찍고 배제하는 것을 뜻한다. 배제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이기에 이에 순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할 때 누르는 약관 동의는 이와 같다. 동의하지 않으면 배제되고 사이트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스스로 감시에 순응한다.

한편, 바우만은 소비의 개념을 들어 SNS에 열광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판매 가능한 상품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SNS 속의 모든 이들은 소비자인 동시에 판매자다. 때문에 자신을 더욱 가치 있게 포장하고 소비하며, 판매하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또 현실 세계에서의 관계는 '친근함'을 서로 교환해야 하고 시간과 에너지 소비에 따른 피로감이 따르지만, 온라인 속에선 그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전자 네트워크 속의 관계는 현실 세계 만큼 친밀하고 가까울까? 바우만은 이에 대해 온라인 속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네트워크'이지 '공동체'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우리의 세세한 일상을 폭로하지만, 그것이 관계의 강화로 이루어지기보다 약한 결속 관계에 머문다는 것이다.

한편, 이 책에는 파놉티콘과 바놉티콘 외에 시놉티콘이란 용어가 등장하는데 시놉티콘은 감시자 없는 감시를 뜻한다. 쉽게 말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페이스북은 감시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 스스로가 서로를 감시하며 시스템의 감시자가 된다는 것이다.

시놉티콘 하에서 배제된 이들은 바놉티콘에 의해 쓸모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배제된다. 이러한 시놉티콘과 바놉티콘적 일상이 과거의 파놉티콘적 감시체계를 무너뜨리고 자발적 복종에 익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감시는 쇼핑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인터넷 서점에서 내게 맞는 맞춤형 책을 추천해준다든지, 구매했던 물건에 대한 맞춤형 광고가 노출되는 마케팅 방식들은 모두 내 개인 정보 수집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또 사람들이 선호하는 상품의 순위나 평가 역시 이러한 정보 수집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므로, 우리는 항시 감시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보들이 수집되어 어떤 식으로, 누가 이것을 사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 오늘날의 권력은 과거와 같이 권력 체계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이용당하는지 모르게 은밀하게 사용되는 것이다. 한편으론 무척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유의 종말>이란 책 속에서 제러미 리프킨은 앞으로 우리의 모든 것들이 소비될 것이라 예견했다. 쇼핑의 예는 개인의 모든 체험, 경험들 역시 상품화되어 소비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모든 것은 소비되고 인간성마저 상품화된다.

전자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의 인격은 그에 걸맞은 인격으로 변하고 있다. 그에 따라 현실세계가 아니라 가상세계에 더욱 집착하거나 온라인 속 인간관계에 더욱 집착하는 경향도 짙어지고 있다. 전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감시체계는 더더욱 개인을 상품화하고, 전자 네트워크 세계에 종속되도록 만들고 있다. 바우만과 라이언의 대담은 이러한 감시사회의 위험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도 이러한 감시는 더욱 강화된다.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목 하에 행해지는 감시들은 더욱 감시체계를 굳건히 하지만,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혹은 테러리스트를 걸러내기 위해 강화되는 감시체계는 바놉티콘적으로 순응하고 복종한다.

그러나 이 감시체계가 개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혹은 누가 이 정보를 사용하는지는 불분명하다. 보이지 않는 권력, 빅브라더로 상징되는 권력은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함으로써 개개인의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고 파멸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바우만은 '희망을 희망하자'고 하지만, 사실 그 희망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이 감시체계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을까? 감시는 인터넷뿐 아니라 CCTV, 내비게이션, 전화를 통해서도 일반화된다. 더욱이 우리가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모든 위치 정보를 기록하고 수집한다.

애플의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무렵, 사용자 위치 정보에 대한 무단 수집은 논란이 되었지만, 현재는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위치 정보를 공개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감시체계가 만연해졌지만, 감시를 감시라 여기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 이 두 사람의 통찰력 있는 분석이다.

이 책의 핵심은 간단명료하다. 파놉티콘 적 감시체계는 무너지고 개개인의 감시를 바탕으로 또 소속에서 이탈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파생된 감시가 우리 사회 전체를 지배 하고 있고, 이 권력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경고이다.

한편으론 이런 정보 사용의 독점적 권한을 지닌 것은 구글이나 애플 등의 IT 기업이고, 이 권력이 '소비'와 연결될 것은 자명한 일이므로, 조지 오웰의 <1984>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처럼 사람들이 오직 소비의 도구로 전락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오늘날의 마케팅은 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판다. 우리는 더더욱 소비를 강요당하고 모든 감시는 소비와도 연결된다. 결국 자본의 흐름에 종속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가의 지배체계가 더욱 굳건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감시에 대한 두 학자의 대담은 놀랄 만한 통찰과 연구를 바탕으로 진행되었지만, 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다만, 모든 사회 문제는 개개인이 문제를 문제라 인식할 때에만 어떤 실마리가 생긴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 벗어날 방법은 낙관적이지 않아 보인다. 이미 너무나 지나치게 이 시스템 속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감시자가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원형감옥 속에서 누군가가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형국이랄까? 책 표지 속 문구가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자유를 배제당한 새장 속의 새처럼 말이다.

"빅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친애하는 빅 브라더 - 지그문트 바우만, 감시사회를 말하다

지그문트 바우만 & 데이비드 라이언 지음, 한길석 옮김, 오월의봄(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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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가 입니다. 블로그 "사소한 공상의 세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은경의 그림책 편지'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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