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느 시골마을과 다를 바 없이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던 경북 성주군 소성리에 사드(THAD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배치됐다. 소성리를 위시한 성주 군민들은 사드 배치 반대를 목 놓아 외치며,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 사이 성주 군민들의 사드 배치 투쟁을 담은 박문칠 감독의 <파란나비효과>(2017)가 세상에 공개됐고, 이번에는 사드 배치 이후 평화로운 일상에 균열이 생긴 소성리 주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성리>(2017)가 사드 배치 부당성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지난 18일 오후 5시경, 부산국제영화제가 한참 진행 중인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소성리>를 연출한 박배일 감독을 만났다.

 <소성리>를 연출한 박배일 감독

<소성리>를 연출한 박배일 감독 ⓒ 박배일


평범한 시골 사람들의 일상이 무너지다

- 영화 <소성리>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미디어로 행동하라'라고 일 년에 한 번씩 각종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활동가나 창작자들이 현장에 들어가서 주민들이랑 만나고 창작물을 내서 발표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올해에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소성리에 갔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미디어로 행동하라' 팀과 함께 사드 배치 반대 투쟁 기록을 준비하다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작업에서 인터뷰를 깊게 진행해 영화로서 관객들과 소성리, 주민들을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성주·김천"과 함께 작업한 프로젝트는 각종 영화제 출품 예정이며, 공동체 상영으로도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 지난 6월에 개봉한 <파란나비효과>도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담은 바 있다.
"<파란나비효과>가 성주 곳곳에 있었던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담았다면, <소성리>는 사드 배치지 소성리에 집중하고자 했다. 박문칠 감독이 <파란나비효과>에서 보여준 것과 제가 이야기 하려는 결은 다르다. 공통된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박문칠 감독이 앞서 사드 배치의 부당성을 알리는 영화를 만들어주어서, 이번 영화에서는 조금 더 소성리가 담고 있는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소성리>를 진행하는 동안, 박문칠 감독과 영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현재 박문칠 감독은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담은 두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 <공포의 균형>(가제)를 준비 중이다.)

- 영화 초반부만 놓고 보면 현재 성주에서 벌어지는 풍경이 아닌 평범한 시골 마을의 일상 같다.
"평범한 시골 마을의 일상을 찍은 장면으로 봐주기를 원했다. 결국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사드가고 평화오라." 즉, '평화가 무엇인가'이다. <밀양아리랑>(2014)를 제작할 때부터 그랬는데, 사람들을 영화로 설득할 때, 정보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나 사람의 감각으로 설득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밀양 송전탑 투쟁을 다루는 언론들이 송전탑에 대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충분히 주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반면 <소성리> 같은 경우에는 앞서 개봉한 <파란나비효과>가 성주 사드 배치에 관한 정보를 일부 줬기 때문에 '평화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그것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해볼 수 있었다."

- 본격적으로 투쟁 이야기가 나온 이후에도 소성리 주민들의 일상과 풍경이 교차되어 등장한다
"일상과 사드 투쟁이 함께 이어지면서 사람들 마음이 어떻게 흔들리고 무너지는가. 이런 것들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 소성리 일상, 사드 투쟁 풍경 외에도 6.25 전쟁 당시 학살 관련 육성 증언들이 비중있게 등장한다.
"평화는 일상적인 것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이 나라는 일상에 전쟁이 포함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북한과 휴전을 하고 있는 있을 뿐, 평화협정을 맺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우리가 아직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데 6.25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은 계속 전쟁을 안고 살아간다. 즉, 사드가 6.25를 경험했던 주민들에게 전쟁의 상흔을 다시 불러일으킨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사드가 배치된 이후, 평화보다는 전쟁 이야기가 계속 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성리 주민들의 6.25 이야기는 전쟁을 품고 있는 개인 혹은 사회를 이야기 하면서 대한민국은 아직 전쟁 중이고 우리 앞에 전쟁이 있다. 사드로 인해 상흔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섹션 상영작 <소성리> 한 장면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섹션 상영작 <소성리> 한 장면 ⓒ 오지필름


-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단체들의 집회가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소성리라는 공간은 굉장히 평화로운 마을이다. 사드 배치 이전 경찰이 30년 만에 한 번 마을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노루가 차에 치어 죽은 사건이었다. (웃음) 그렇게 조용한 마을에 사드가 들어오면서 경찰이 들어오고, 서북청년단이 들어오고 동네가 아주 시끄러워졌다. 사드로 인해서 평온했던 일상들이 금이 가고, 굉장히 보수적인 지역인 성주 주민들이 빨갱이로 호명되고 있다. '레드 컴플렉스'가 어떻게 조장되고 있는가에 관해서도 살펴보고 싶었다.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의 반복을 누가 하고 있느냐, 마지막에 문재인 대통령의 사드 관련 발언이 등장하는 것은 문 대통령의 목소리로 대변되는 국가 권력의 잘못된 판단을 말하고 싶었다. 권력자들의 결정이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의 판단, 선택에 의해서 힘없는 시민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소성리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았으면"

- 무궁화를 배경으로 마무리한 엔딩이 인상적이다.
"일단 영화를 시작할 때 엔딩을 생각하고 진행하는 편이다. 촬영을 진행하다 이게 엔딩이구나 생각하면 제작 작업을 끝낸다. <소성리>는 원래 소성리 주민들과 함께 그분들의 일을 도와주는 일상을 찍어보자 하고 갔는데 어느 날 무궁화 이야기를 갑자기 하시는 것이다. 무궁화 앞에서 우리들을 찍어보라고. 그리고 '대한민국 만세. 사드 가고 평화오라' 구호 외치시고 (웃음) 그래서 찍다보니 할매들이 비키고 무궁화만 나오면 엔딩이겠구나 싶었다. 소성리에서 살고 계신 할머니들은 대한민국과 평화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분들이다. 그렇게 소박한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 사드 때문에 평화롭지 못한 일상을 맞아야하는가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 사드 반대 투쟁을 통해서 소성리 여성 주민들이 주체의식을 갖게 되는 과정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마을 여성 주민들의 이름 찾기도 그렇고.
"사드 투쟁 이후 이름 찾기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원래 소성리 부녀 회장님이 농민운동 하시는 분인데, 지금으로부터 20~30년 전 시작한 이름 찾기 프로젝트이다. (기자: 서울에 사는 저희 어머니도 동네 사람들에게 본명보다 '진경이 엄마'로 불리는데) 그러니까 굉장히 빨리 깨어있던 분들이시다. 소성리 이장님도 오랫동안 농민운동을 계속 해왔었고, 그런 역사들이 있으니까 소성리에 사드가 왔을 때 마을 주민들이 똘똘 뭉쳐서 사드 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가 입장에서 잘못 고른 거지." (웃음)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섹션 상영작 <소성리> 한 장면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섹션 상영작 <소성리> 한 장면 ⓒ 오지필름


- <소성리>의 향후 상영계획이 궁금하다.
"11월 30일 개막하는 서울독립영화제 장편경쟁 상영작으로 초청됐다. 개봉형태로 공개할 지는 잘 모르겠다. 공동체 상영은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 <소성리>를 보는 관객들에게 꼭 하고픈 한마디?
"어떻게 보면 부녀회장들이 20~30년 전에 시작했던 여성 주민들 이름 찾기 프로젝트처럼. 소성리라는 공간의 이름 찾기로 볼 수 있다. 이 공간은 사드가 배치된 곳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아왔고 사람이 여전히 살고 있다. 그런 공간이 소성리이며 우리들 옆에 포근히 자리 잡고 있는 그 공간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소성리 사드 성주 부산국제영화제 박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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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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