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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을 앞둔 아내는 퇴직후 시간에 대해 염려해왔다. 그리고 실험의 도전을 자전거 여행으로 정했다.
 정년을 앞둔 아내는 퇴직후 시간에 대해 염려해왔다. 그리고 실험의 도전을 자전거 여행으로 정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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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헤이리의 하늘은 매일 북쪽에서 내려온 겨울새들의 V자 편대비행 소리로 가득합니다. 이 겨울 들머리, 아내의 입술에 물집이 잡혔습니다.
 
아내는 지난 몇 개월 동안 회사일과 집안일 그리고 한가지 더 늘어난 일에 열중하느라 무리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자전거 타기입니다.
 
아내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 큰 기대와 염려를 종종 내비쳤습니다.
 
결혼 후 출산과 육아, 시어른과 친정어머니를 모시는 일 그리고 직장생활까지 번다한 의무를 감당하느라 보낸 지난 삼십 수 년의 시간에서 물러나면 속박의 굴레는 벗지만 굴레 벗은 시간을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에 대한 준비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성긴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행가인 남편과 함께 낯선 문명을 답사하고 그 이면의 이해를 넓히는 지구촌 나그네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가정을 지켜야 할 형편이니 나 혼자 히치하이크로, 불편한 잠자리로 지구촌을 탐험하지만 당신이 은퇴하면 내가 답사한 가장 아름다운 곳, 안전한 곳을 가장 편한 수단으로 모시고 다니겠소."

아내의 노동에 기대어 홀로 긴 시간 집을 나설 때마다 아내를 말로 세뇌했던 것이 자연스럽게 아내의 퇴직 후 계획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의 은퇴가 다가올수록 그 약속을 지키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는 아내의 퇴직 이후에도 부부가 함께 집을 떠나있을 만한 형편이 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현실적 염려이고, 둘째는 취향의 문제입니다. 탐사형 여행을 고수하고 있는 나와 유유자적과 명상 여행을 원하는 아내의 욕구사이에서 타협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아내와 함께하는 여행에서 아내는 늘 제 탐사 여행의 조수로서의 역할에 그쳤습니다. 아내뿐만 아니라 저를 위해서도 새로운 계획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2

자전거 타기 훈련과 남미도서 탐독으로 입술에 물집이 잡혔다.
 자전거 타기 훈련과 남미도서 탐독으로 입술에 물집이 잡혔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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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지난달 초에 불쑥 항공권부터 샀습니다. 퇴직 전 1년간의 무급휴가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회사의 발표가 있은 직후였습니다. 2018년 1월 14일, 인천을 출발해 LA와 달라스를 거쳐 페루의 리마로 IN한 다음 2월 18일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OUT하는 일정이었습니다. 페루와 볼리비아를 거처 칠레의 산티아고까지, 약 5천여 km의 여정 중 3천 km는 대중교통으로, 2천 km는 자전거로 이동하는 계획이었습니다.

아내는 그 후 수차례 해외원정에 올랐던, 하지만 지금은 퇴역한 자전거를 지인에게 물려받아 맹훈련을 해왔습니다.
 
파주의 자전거 도로와 아라뱃길의 자전거 국토종주길 등을 휴일마다 적게는 10km, 길게는 60여 km를 달렸습니다. 우중 라이딩을 실험하고 비박을 했을 때의 몸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1인용 텐트로 혼자 야영장에서 야영을 하는 1박 2일의 라이딩에도 도전했습니다.
 
지난 휴일에는 서울 녹사평에서 여의도 샛강길을 지난 인천 검안까지 4시간을 달렸습니다. 낯선 길과 익숙한 길이 이어진 라이딩이었습니다.
 
"안 가 본길은 호기심과 두려움과 설렘이고 가 본 길은 자신감을 높여주고 여유로움을 가져다주어요. 강과 꽃과 새, 자전거가 아니면 만날 일 없었던 자연과도 하나가 되는 기분이 좋아요."
   
터진 입술이 아물지는 않았지만 남미 원정 실전연습은 오늘도 쉬지 않은 아내의 말입니다. 아내는 오늘 남미 관련 책을 여러 권 뽑아들고 서울로 갔습니다. 내일 새벽 출근을 자동차없이 파주에서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미원정을 3개월 남겨둔 시점.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 새로운 에너지가 맞추어 생겨나나 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자전거여행, #남미,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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