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닷가의 쥐들> 메인포스터

<바닷가의 쥐들> 메인포스터 ⓒ 부산국제영화제


01.

영화 <바닷가의 쥐들>은 올해 열린 33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미국 드라마 부문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 작년에는 폴 다노, 다니엘 래드클리프 주연의 <스위스 아미 맨>(2016)이 수상한 부문이다. – 정체성이 확고하게 자리하지 못한 십대의 방황과 방종에 대한 이야기. 상업영화들이 보여주는 모습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지만, 메가폰을 잡은 엘리자 히트맨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정확한 문제인식과 간결한 메시지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깔끔하게 그려낸다. 이 같은 내용들은 영화 속에서 자주 이용되는 소재이지만, 어른의 그것과 구분되지 않는 모호함 혹은 그 경계의 설정에 실패하며 오로지 자극적인 모습으로 투영되곤 했었다. 이번 작품 <바닷가의 쥐들>은 그런 지점에서 조금 특별하다. 주인공 프랭키(해리스 딕킨슨 역)는 혼란스러운 십대를 보내고 있지만 아직 그 내면까지 잃어버리지는 않은 인물이다. 방종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지만, 아직 그 속에는 어떤 두려움을 가진 인물. 제 멋대로인 인생을 살고 있기는 하지만 죄의식에 대한 인식의 경계에서 벗어나 있지는 않다.

02.

감독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10대들의 삶과 어른들의 삶을 함께 뒤섞으면서도 명확히 구분시키려는 시도들을 보여준다. 물론 그 중심에는 주인공인 프랭키가 있다. 엘리자 히트맨 감독이 그의 삶을 어른의 경계에서 거리를 두게 만드는 장치는 크게 두 가지다. 아직 성 정체성이 확고하게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나게 되는 바텐더와의 관계를 통한 거리. - 여기에는 온라인으로 만나게 되는 온라인 채팅이 포함된다. - 그는 아직까지 자신이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아직 규정 짓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기에 온라인 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어른들과는 행동은 같을지언정 다른 지점에 있다. 태연히 인사를 건네고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그들과 달리 그 모습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프랭키에게는 여전히 어떤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부모의 존재. 죽어가는 아버지를 대하는 그의 모습과 그를 수렁에서 건져내려는 어머니의 손을 걷어내는 모습에서 역시 그가 아직 어른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앞에서 그는 가장 유약한 모습을 보이는데,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내막까지 영화 속에서 찾아볼 수는 없지만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그가 단순히 어른들의 행위를 따라 하며 잘못된 길을 향하고 있는 것과 그 경계를 넘어 누구도 참견할 수 없는 지점의 선을 그은 뒤의 그것은 완전히 다르므로 이 작품에서 이 부분에 대한 경계는 매우 중요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바닷가의 쥐들> 스틸컷 그의 방종과 일탈 가운데는 나쁜 친구들이 있다.

▲ <바닷가의 쥐들> 스틸컷 그의 방종과 일탈 가운데는 나쁜 친구들이 있다. ⓒ 부산국제영화제


03.

앞서 언급한대로 이 영화에서 프랭키의 삶을 설명하며,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고 가는 가장 큰 부분은 그의 성 정체성과 일탈이다. 하지만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일탈과 방종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그의 성 정체성에 대한 주제는 계속해서 다루어지고 있지만, 종국에 그의 행동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일탈, 범법행위와 관련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굳이 이 부분을 특정하지 않더라도 감독은 혼란스러운 10대의 모습을 설명하는 과정에 상당히 공을 들인다. 단순히 그들이 호기심으로 인해 범죄에 발을 담그게 된다는 시각이 아니라 그런 호기심으로 시작된 일탈이 또 다른 일탈을 부르고, 범죄의 씨앗이 되며 종국에는 큰 사건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러닝타임 대부분의 시간에 걸쳐 그려내는 것이다. 단순히 마약을 즐기던 조무래기들이 돈을 구하기 위해 집안 귀중품을 내다팔고, 타인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고, 마지막에는 살인에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이 영화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방법이 이용되었는지는 오히려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04.

처음에서 이야기 한 프랭키의 내면,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두려움과 양심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을 저지른 뒤에야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방종을 되돌아보게 된다. 잠시 만났던 여자친구가 자신을 떠나며 남긴 '너는 고칠 데가 많은 남자야'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이제까지 엄마가 도움을 주겠노라 곁에서 자신의 손을 붙잡아주려 했는지에 대해 말이다. 이 지점에서 주인공이 보여주는 혼란과 후회는 이 작품을 일종의 성장 영화로 나아가게 하는 요소가 되는데, 감독은 그 지점을 영화의 엔딩을 통해 암시만 할 뿐 그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굳이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그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에 대해 긍정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생기는 까닭은 영화 중간중간에 숨어 있는 프랭키의 또 다른 모습들 때문이다. 여동생의 노출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다거나 – 마치 동생만큼은 자신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듯이 – 약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어머니의 귀걸이를 전당포에 맡기고 바로 다음날 돌아와 기간을 확인한다거나 하는 장면들. 약을 갈취하기 위해 온라인 채팅을 통해 만난 남성이 친구들에게 폭행당할 상황에 처한 순간에는 그냥 약만 놓고 가라며 조언 아닌 조언을 하기도 한다.

<바닷가의 쥐들> 스틸컷 그의 마지막 표정이 인상적이다.

▲ <바닷가의 쥐들> 스틸컷 그의 마지막 표정이 인상적이다. ⓒ 부산국제영화제


05.

영화들 가운데는 가끔씩, 상당히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이야기를 하려고 들면 몇 마디 할 말이 없는 작품들이 있다. 이 작품 <바닷가의 쥐들>처럼 말이다. 그 내용이 허술하다거나 러닝타임 내내 집중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조악해서가 아니라, 군더더기 없이 너무도 깔끔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군데 채워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탄탄한 플롯과 표정 하나까지 섬세하게 잡아내는 연출을 선보이는 이 작품은 어쩌면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조용하면서도 응집된 힘을 보여주고 있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선댄스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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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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