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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이 긴 추석연휴를 보내고 나니 어느새 가을이 깊어졌다. 몇 번의 비가 내리더니 아침·저녁 부쩍 쌀쌀해진 날씨, 늦가을이다. 감기에 걸리면 안 되는 때이기도 하다. 늦가을 전국이 만산홍엽(滿山紅葉)의 풍경으로 들썩이는데 나들이를 못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게 없어서다.

늦봄, 늦여름, 늦겨울과 달리 늦가을은 또 다른 계절의 별칭이다. 더할 나위 없는 운치와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고독과 쓸쓸함이 배어있기도 해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늦가을 풍경의 진수를 경험한 사람들은 '우리나라에는 사계절이 아니라 오계절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잠시 한눈 팔면 사라져버리는 짧디 짧은 계절. 우물쭈물하다 가을이 속절없이 떠날까봐, 떠나버린 가을을 아쉬워하며 후회할까봐 걱정된다면 늦가을 여행을 꼭 해볼 일이다.

72ha나 펼쳐진 소나무 숲, 남한산성 성곽길 

인조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면서 들어선 남문.
 인조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면서 들어선 남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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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숲 사이로 이어지는 남한산성 길.
 울창한 숲 사이로 이어지는 남한산성 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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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지도 않고 산세도 웅장하지 않은데 계절마다 찾아오는 이들에게 한 폭의 그림을 선사하는 산들이 있다. 구불구불한 능선을 따라 오래된 산성(山城)이 숨어있듯 자리하고 있다면 그 그림은 더욱 풍성하게 변한다.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500m 조금 넘는 높이의 남한산과 남한산성도 그런 곳 중 하나다.

도립공원이 될 정도로 규모가 큰 산성에는 남한산 등산로와 함께 동서남북 산성문을 잇는 약 12km의 성곽길이 있다. 오르락내리락,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성곽길과 옹성길, 등산로는 하루에 다 걷기 힘들 정도로 길다.

산성 일대에는 주민들이 정성으로 돌보고 지켜온 소나무 숲이 72ha나 펼쳐져 있다. 이 소나무 숲은 일제강점기 때 마을 주민 303명이 국유림을 불하받은 후 벌채를 금지하는 금림조합을 만들어 보호해왔기 때문에 지금껏 숲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경기지역에서 노송이 넓은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늦가을엔 은은한 솔향을 풍기는 이 소나무 숲이 좋아서 남한산성을 찾는 사람이 많다.

너른 소나무 군락이 있는 남한산성길.
 너른 소나무 군락이 있는 남한산성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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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훈의 소설을 각색해 만든 영화 <남한산성>을 관람한 후 찾아가면 더욱 좋겠다. 인조임금이 피신할 때 들어섰던 남문, 대신들과 47일 간 머물렀던 행궁(항복 후 청나라의 요구로 모두 소실된다), 남한산성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 청나라군이 주둔하며 대포를 쏘아댔던 벌봉, 인조 임금이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하기 위해 나섰던 서문은 남문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문이다. 이들 명소는 꼭 가시길 바란다.

산성까지 차도가 나 있어 수도권 전철 8호선 산성역(2번 출구) 앞 정류장에서 산성입구 남문까지 데려다주는 마을버스(9번, 9-1번)가 있다.  

다치고 버려진 나무들의 안식처, '나무 고아원'

저마다 사연을 품은 나무들이 사는 나무 고아원.
 저마다 사연을 품은 나무들이 사는 나무 고아원.
ⓒ 하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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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고아원에서 보살핌과 재활치료를 받는 나무.
 나무 고아원에서 보살핌과 재활치료를 받는 나무.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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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상류 미사리 강변에 자리한 '나무 고아원'(경기도 하남시 망월동 328-2)은 경기도 하남시에서 조성한 특별한 이름의 공원이다. 요즘은 고아원이란 말은 잘 쓰지 않는데 나무에다 고아란 이름을 붙인 데는 사연이 있다. 1999년 시내 가로수의 교체계획을 수립하면서 가로수 매각을 검토했으나 이 고장에서 자란 나무를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기른다는 취지로 20옮겨 심게 된 것이 나무 고아원의 시초가 됐다.

나무고아원은 이렇게 갈 곳 없는 나무들을 옮겨 심고 가꾸어 가로수나 공원, 녹지대 조경수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하는 곳이다. 대형 토목공사장인 도로개설지역, 아파트 건설사업장 등에서 상처를 받아 버려지거나 주택신축공사로 인해 베어지는 나무들을 옮겨 와 식재하고 있다. 2009년 공사현장에서 버려진 느티나무들이 3년에 걸쳐 재활치료를 받고 인근 한강가 가로수로 변신하기도 했단다.

나무고아원과 그 옆 강변 산책길 모두 흙길을 밟을 수 있어 좋다.
 나무고아원과 그 옆 강변 산책길 모두 흙길을 밟을 수 있어 좋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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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30만㎡의 너른 부지에 단풍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각종 과실나무 등 40여 종 1만3000여 그루의 나무가 살고 있다. 아픈 나무들을 보살피고 치료해 다시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고마운 곳이다. 외과수술을 받아 인공수피를 붙인 나무가 흔할 정도로 나무들마다 상처와 아픔이 있다.

늦가을엔 아름다운 낙엽과 풍요로운 열매들이 열리는 나무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늦가을이 품고 있는 또 다른 정서이기도 한 고독과 쓸쓸함을 나무에게서 깊이 느낄 수 있다. 이곳은 입장료나 운영시간이 따로 없는 개방된 공원으로 나무 고아원 옆 강변산책로도 운치 있다. 인공적인 산책로가 아닌 푹신한 흙을 밟으며 걸을 수 있다.

* 문의 : 하남시청 공원녹지과 푸른도시팀 (031-790-6413)

9개 숲길이 이어진 인천대공원 

늦가을 단풍터널이 펼쳐지는 인천대공원 가로수길.
 늦가을 단풍터널이 펼쳐지는 인천대공원 가로수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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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타고 공원 숲길 곳곳을 산책할 수 있는 인천대공원.
 자전거타고 공원 숲길 곳곳을 산책할 수 있는 인천대공원.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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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서울대공원(정확히는 경기도 과천시)이 있다면 인천엔 인천대공원(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산164)이 있다. 인천 유일의 자연 녹지 대단위공원으로 293만㎡(89만 평)이나 된다. 대공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드넓은 공간에 큰 호수와 다양한 나무들이 가로수와 숲을 이뤄 살고 있다.

'솔향 숲' '햇빛 숲' '편백바람 숲' 등 무려 9개나 되는 이름을 가진 숲이 조성돼 있다. 인천대공원을 품고 서있는 관모산(162m)을 따라 이어진 9가지 숲길(6.7km)을 쉬엄쉬엄 둘러보다보면 두어 시간 정도 걸린다.

관모산이란 특이한 이름은 산의 모습이 갓 모양(갓, 冠)과 같아서란다. 이외에 조각공원, 수목원, 어린이 동물원도 있다. 2001년 개장한 인천대공원 동물원엔 세계 멸종위기종인 사막여우를 비롯해 38종 269마리 동물이 있다. 공원이 처음에 생겼을 당시엔 입장료를 받았단다.

관모산 숲 일대에 걸쳐 있는 인천대공원.
 관모산 숲 일대에 걸쳐 있는 인천대공원.
ⓒ 인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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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공원 안 가로수 길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공원 구석구석을 산책할 수 있다. 인천대공원의 가로수 길은 양 옆에 높게 자란 느티나무, 전나무, 메타세쿼이아 나무 등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늦가을엔 멋진 단풍 터널을 이뤄 전국의 사진가들이 촬영하기 위해 모여들기도 한다. 가을은 물론 사계절 내내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길 자체가 보물이다. 공원 옆으로 코스모스 피어있는 풋풋한 장수천 길이 이어져 있어 자전거 산책하기 더욱 좋다.

인천대공원은 관모산(162m) 일대에 걸쳐 있으며 상아산과 거마산을 끼고 있는 데다 모두 등산로가 이어져 있어 늦가을 풍경이 어느 공원보다 풍성하다. 공원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관모산지대는 보존지역으로 공원시설물보다는 숲이 먼저인 곳이다. 인천 2호선 전철 인천대공원역을 이용하면 3번 출구 앞으로 인천대공원의 입구가 보인다.

플라타너스 나무 낙엽이 융단처럼 깔린 길, 서울 화랑로 

유난히 낙엽이 큰 플라타너스 나뭇잎 융단이 깔린 화랑로.
 유난히 낙엽이 큰 플라타너스 나뭇잎 융단이 깔린 화랑로.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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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로를 지나던 경춘선 철길, 산책로가 되었다.
 화랑로를 지나던 경춘선 철길, 산책로가 되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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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과 단풍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흔히 산을 연상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서울 화랑로는 도심 속 보기드문 가로수길이다. 6호선 전철 화랑대역에서 옛 간이역 화랑대역, 태릉(泰陵)을 지나 삼육대학교로 이어지는 화랑로는 그 길이만도 약 9km나 된다. 서울에서도 가장 긴 가로수길이다.

산책로가 된 옛 경춘선 철길도 가로수길에 깔려 있어 특별한 기분으로 걷게 된다. 하늘을 향해 곧게 자란 1200여 그루나 되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가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데, 사진 속에 추억 속에 풍경을 담으며 산책하듯 걸으면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린다.

삼육대학교에 있는 호젓한 제명호수.
 삼육대학교에 있는 호젓한 제명호수.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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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버즘나무인 플라타너스 나무의 낙엽은 성인 남성 손바닥보다 커서 밟으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다. 늦가을의 감성과 정취를 더하는 나무다. 버즘나무는 나무껍질에 사람의 피부에 생기곤 하는 버즘 모양의 무늬가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버즘이 반가울 리 없는 사람들은 그래서 이 나무를 흔히 플라타너스 나무라고 부른다.

길섶에 경춘선 간이역이었던 화랑대역, 폐철길, 우거진 숲이 있는 태릉, 삼육대학교의 제명호수 등 운치 있는 가을 풍경을 품은 곳들이 있어 더욱 좋다. 서울시가 선정한 단풍과 낙엽의 거리로, 쌓인 낙엽을 일부러 빨리 치워 버리지 않아 이맘때면 더욱 풍성한 낙엽의 길이 된다.

냄새 걱정 없이 멋진 은행나무를 감상할 수 있는 서울 성균관 문묘

명륜당 앞 뜰에 사는 탄성이 터져 나오는 은행나무.
 명륜당 앞 뜰에 사는 탄성이 터져 나오는 은행나무.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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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알 냄새가 나지 않는 수나무가 모여사는 성균관 문묘.
 은행알 냄새가 나지 않는 수나무가 모여사는 성균관 문묘.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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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산 지 3억 년이 넘은 최고참 나무인 은행나무. 화석나무로 불릴 정도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지만 가을엔 고약한 은행 알 냄새로 기피하게 되는 나무이기도 하다.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는 암나무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 자신의 씨앗인 열매를 짐승들에게서 보호하고자 하는 자연의 조화다. 노란색도 아닌 진노랑 잎으로 온통 수놓은 늦가을 은행나무들을 보면 기운을 얻고 심신에 활기가 돋는다.

특유의 은행 열매 냄새가 나지 않아 편안하게 은행나무들을 감상하며 깊어 가는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대학교내에 있는 문묘(文廟)다. 문묘는 유교를 집대성한 공자(孔子)와 여러 성현들의 위패(位牌, 죽은 사람의 이름과 죽은 날짜를 적은 나무패로 죽은 사람의 혼을 대신한다)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조선초기인 태조 1398년(태조 7)에 완성됐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1년(선조 34)에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육시설인 명륜당과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대성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천 원 지폐를 보면 퇴계 이황 선생의 인물 그림 뒤로 명륜당(明倫堂) 글자가 보이는 한옥 건물이 이곳이다.

은행나무 외에 느티나무, 측백나무, 회화나무 등 명목나무들이 사는 성균관 문묘.
 은행나무 외에 느티나무, 측백나무, 회화나무 등 명목나무들이 사는 성균관 문묘.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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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사는 은행나무들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으며, 흥미롭게도 모두 수나무다.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우리조상들은 암수 은행나무를 가려서 심을 줄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심었던 나무는 암나무였는데 가을철 열매가 많이 열려 냄새가 고약해 유생들이 공부하는데 불편했을 뿐 아니라, 은행 알을 주우려는 주민들로 엄숙해야 할 학교가 소란스러워지자 선비와 학동들이 나무 앞에서 제사를 올려 수나무로 바꿨다는 이야기가 명륜당에 전해온다.

가을 햇살이 환하게 비쳐질 때면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이 은행나무는 늙어갈수록 더 멋있어 지는 대표적인 명목 나무다. 늙음은 쇠퇴가 아니라 완성임을 깨닫게 해주는 나무다. 성균관 문묘엔 은행나무 외에도 소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 측백나무, 단풍나무 등이 살고 있다. 모두 수백 살 먹은 고목(古木)이고, 크고 우람한 거목(巨木)이다. 서울 전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거리다.


태그:#늦가을여행, #남한산성, #나무고아원, #화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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