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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1967년 12월 29일 국내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습니다. 지리산은 올해 국립공원 지정 5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 지리산 지리산은 1967년 12월 29일 국내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습니다. 지리산은 올해 국립공원 지정 5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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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물드는 지리산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세 아들 걸음걸이에 맞춰 산에 오르면 안 됩니다. 바람처럼 걷는 아이들과 보폭 맞추면 이내 지칩니다. 나이에 맞는 '내 걸음'을 찾아야 합니다. 지리산에서 큰애와 둘째로부터 눈총 많이 받았지만, 다행히 막내에게서는 따듯한 보살핌을 듬뿍 받았습니다.

뒤처지는 아빠를 위해 걸음을 늦추는 막내의 마음 씀씀이가 눈물겹도록 고마운 산행이었습니다. 덩달아 울긋불긋한 가을 산도 더없이 아름다웠습니다. 9일 아침, 아내가 제 몸을 흔듭니다. 아내는 몸이 불편해 가족 산행을 함께 떠나지 못합니다. 그 때문에 오늘은 세 아들만 끌고(?) 산에 갑니다.

아내가 정성스레 싸준 김치볶음밥을 배낭에 넣고 집을 나섭니다. 여수 하늘은 맑았는데 구례에 닿으니 안개가 잔뜩 끼었습니다. 안개 뚫고 구불구불 휘어진 도로 올라 성삼재에 닿으니 햇살이 조금 비칩니다. 세 아들 세워놓고 노고단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은 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신발 끈 단단히 조이고 배낭끈 힘껏 여민 뒤 산길을 걷습니다.
▲ 성삼재 신발 끈 단단히 조이고 배낭끈 힘껏 여민 뒤 산길을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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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삼재에서 반야봉까지 왕복 약 14킬로미터를 걸어야 합니다.
▲ 노고단대피소 오늘은 성삼재에서 반야봉까지 왕복 약 14킬로미터를 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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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삼재에서 반야봉까지 왕복 약 14Km를 걸어야 합니다. 신발 끈 단단히 조이고 배낭끈 힘껏 여민 뒤 산길을 걷습니다. 막내는 형들 앞뒤를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분위기를 끌어 올립니다. 사춘기 큰애와 둘째가 저와 멀찌감치 떨어져 다정히 얘기를 나눕니다.

재빨리 걸음을 옮겨 두 아들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녀석들은 스마트폰 게임에 나오는 인물 중 누가 더 강한지 심각하게 의견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경치 좋은 지리산에 오르며 기껏 나누는 대화가 스마트폰 게임 이야기입니다. 저는 두 아들에게 쓴소리 한마디 던지려다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변하는 나무와 숲 그리고 산을 보며 인생의 속도를 찾아야합니다.
▲ 단풍 변하는 나무와 숲 그리고 산을 보며 인생의 속도를 찾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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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봉은 지리산 노고단에서 동쪽으로 능선을 따라 5.5km쯤 거리에 있는데 돼지령과 피아골삼거리를 지나 노루목에서 왼쪽 산길을 오르면 나옵니다.
▲ 노루목 반야봉은 지리산 노고단에서 동쪽으로 능선을 따라 5.5km쯤 거리에 있는데 돼지령과 피아골삼거리를 지나 노루목에서 왼쪽 산길을 오르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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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봉, '지혜를 얻는 봉우리'라 해석해도 좋겠다

세상사 모두 자기만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지리산은 1967년 12월 29일 국내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습니다. 지리산은 올해 국립공원 지정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이 산은 경남 하동과 함양, 산청 그리고 전남 구례와 전북 남원 등 3개 도(道)와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총면적 48만3022㎢의 산악형 국립공원입니다.

둘레가 320여km나 되는 지리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봉우리가 있습니다. 지리산은 두류산 또는 방장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데 20여 개의 능선 사이로 맑은 계곡들이 여럿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리산은 그 넓이와 깊이만큼 다양한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리산은 여느 산과 다른 느낌을 지닌 독특한 산입니다. 반야봉은 지리산이 품고 있는 많은 봉우리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입니다. '반야'라는 이름은 불경에서 따온 듯합니다.

‘반야’라는 말은 ‘지혜를 얻다’ 정도로 풀이되니 반야봉은 ‘지혜를 얻는 봉우리’라고 해석해도 좋겠습니다.
▲ 반야봉 ‘반야’라는 말은 ‘지혜를 얻다’ 정도로 풀이되니 반야봉은 ‘지혜를 얻는 봉우리’라고 해석해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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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다리는 점점 굵어지고 힘도 늘어납니다. 반면, 제 다리는 점점 약해지고 힘도 떨어집니다.
▲ 산행 세 아들 다리는 점점 굵어지고 힘도 늘어납니다. 반면, 제 다리는 점점 약해지고 힘도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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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라는 말은 '지혜를 얻다' 정도로 풀이되니 반야봉은 '지혜를 얻는 봉우리'라고 해석해도 좋겠습니다. 반야봉은 지리산 노고단에서 동쪽으로 능선을 따라 5.5km쯤 거리에 있는데 돼지령과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 노루목에서 왼쪽 산길을 오르면 나옵니다.

반야봉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산입니다. 이 산에서 발원한 계곡물은 뱀사골과 심원계곡으로 흐릅니다. 반야봉은 5월과 6월이 되면 산 중턱에서부터 정상까지 붉게 타오르는 철쭉군락으로 일대 장관을 이룹니다. 또, 반야봉 낙조(落照)는 지리산 8경 중 하나로 꼽힙니다.

앞서 걷던 막내가 뒤를 돌아보며 아빠를 기다립니다. 제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튀어 나옵니다. “5분간 휴식” 세 아들이 발걸음을 옮기다 말고 제 자리에 멈춰섭니다.
▲ 기다림 앞서 걷던 막내가 뒤를 돌아보며 아빠를 기다립니다. 제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튀어 나옵니다. “5분간 휴식” 세 아들이 발걸음을 옮기다 말고 제 자리에 멈춰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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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이들 이끌고 산에 오를 생각 버려야합니다. 오롯이 저의 속도를 찾아야합니다.
▲ 여유 이제 아이들 이끌고 산에 오를 생각 버려야합니다. 오롯이 저의 속도를 찾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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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떠오른 생각, 아이들 끌고 산에 오를 생각 버리자

세 아들이 지혜 가득한 반야봉을 오릅니다. 가을빛으로 변해가고 있는 반야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습니다. 하지만 노루목에서 반야봉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만만치 않습니다. 경사가 심한 데다 가파른 바위지대도 지나야 합니다. 반야봉 정상을 코앞에 두고 체력이 바닥을 드러냅니다.

전날 무리한 일정 때문인지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앞서 걷던 막내가 뒤를 돌아보며 아빠를 기다립니다. 제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옵니다. "5분간 휴식" 세 아들이 발걸음을 옮기다 말고 제 자리에 멈춰섭니다. 멀찍이 서 있는 두 아들은 딴청을 피우는데 막내만은 걱정스레 아빠를 바라봅니다.

막내 눈빛에 힘을 얻은 제가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하지만 열 걸음 채 걷지도 못하고 또다시 외마디 비명(?)을 지릅니다. "5분만 쉬자" 그렇게 노루목에서 반야봉 오르는 가파른 산길에서 "5분간 휴식"을 수없이 외치며 정상에 닿았습니다. 반야봉 정상에 서니 번뜩 떠오른 생각이 있습니다.

세 아들 다리는 점점 굵어지고 힘도 늘어납니다. 반면, 제 다리는 점점 약해지고 힘도 떨어집니다. 이제 아이들 이끌고 산에 오를 생각 버려야 합니다. 오롯이 저의 속도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 아들은 제 주변을 맴돌며 자신들의 걸음걸이로 산행을 즐기게 됩니다. 각자 알맞은 속도가 있습니다.

남들 걷는 속도에 내 걸음 맞추면 넘어지거나 다칩니다. 내가 찾은 인생의 속도가 있어야 합니다.
▲ 가을 남들 걷는 속도에 내 걸음 맞추면 넘어지거나 다칩니다. 내가 찾은 인생의 속도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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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막내가 보여준 따듯한 배려가 눈물겹습니다. 세 아들과 수없이 산을 오르내렸지만 그날처럼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는 처음입니다.
▲ 생각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막내가 보여준 따듯한 배려가 눈물겹습니다. 세 아들과 수없이 산을 오르내렸지만 그날처럼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는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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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에 오르며 인생의 속도 찾으면 좋겠다

인생살이도 매한가지입니다. 남들 걷는 속도에 내 걸음 맞추면 넘어지거나 다칩니다. 내가 찾은 인생의 속도가 있어야 합니다. 때론 가볍고 느리게 걸을 때도 있어야 합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내 인생 속도를 찾으면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집니다. 물론, 그 속도를 찾기란 참 어렵습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막내가 보여준 따듯한 배려가 눈물겹습니다. 세 아들과 수없이 산을 오르내렸지만, 그날처럼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는 처음입니다. 앞으로 산에 오를 땐 제가 아이들을 이끌고 가려는 생각은 접어야 합니다. 세 아들과 어울려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을 걸어야 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저는 변하는 나무와 숲 그리고 산을 보며 인생의 속도를 찾았습니다. 반야봉은 지혜를 얻기에 충분한 산이었습니다. 세상살이 고민 깊은 분들에게 지리산 반야봉을 추천합니다. 산길에서 '내 걸음'을 찾으면 더없이 좋은 일입니다.


태그:#지리산, #반야봉, #단풍, #성삼재, #노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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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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