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스틸컷 나미야 잡화점의 모습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스틸컷 나미야 잡화점의 모습 ⓒ 부산국제영화제


01.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국내에서도 60만 부 이상이 팔렸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읽어보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이름 한 번쯤은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일본 소설이라는 말이 떠도는 이유이기도 하다. 뚜렷한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좀도둑 삼인조가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집에 숨어들게 되면서 일어난 기묘한 하룻밤 동안의 일에 대한 이야기. 타이틀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말 그대로 그런 소설의 내용을 스크린에 옮겨놓은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히로키 류이치 감독은 일본의 에로 영화 산업을 통해 입문했지만, <800미터 주자>를 시작으로 <노란 코끼리>(2013), <가부키초 러브호텔>(2014) 등의 작품으로 최근에는 일본 영화 특유의 미묘한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작의 인기 덕분인지 많은 관객들이 기대하고 있는 이 작품은 예정대로라면 오는 2018년 2월 국내에서 개봉될 예정이지만,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미리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02.

영화는 전체적으로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옮겨오는데 신경 쓰지만 모든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원작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는 아예 제외된 인물도 있고, 내용이 약간 각색된 인물도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개연성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 발생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에 큰 영향을 주는 정도는 아니다. –다만, 보호소와 관련한 내용은 마지막까지 이해에 어려움을 느낄 법도 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생선 가게 음악가 가쓰로(하야시 켄토 역)와 길 잃은 강아지라는 필명의 하루미(오노 마치코 역). 약간의 조정은 있지만 그래도 감독은 원작의 내용 가운데 나미야 잡화점이 갖고 있는 특별함에 대한 본질과 좀도둑 삼인조가 과거의 인물들로부터 온 편지와 교류하는 부분은 훼손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이 영화의 중심에 있는 것은 그 대상이 누구든, 그 시기가 언제든, 그런 조건들과 무관하게 이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공간이 누군가와의 대화가 필요한 사람들이 함께 온기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스틸컷 유지 할아버지는 자신 때문에 누군가가 더 힘들어지지 않았을까 걱정한다.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스틸컷 유지 할아버지는 자신 때문에 누군가가 더 힘들어지지 않았을까 걱정한다. ⓒ 부산국제영화제


03.

앞서 설명한 부분 때문에 이 영화에서 과거와 현재를 확실히 구분하는 것과 같은 행위는 크게 의미가 없다. 물론 감독의 의도에 따라 유지 할아버지(니시다 토시유키 역)가 등장하는 과거와 좀도둑 삼인조가 등장하는 현재가 구분되어 진행되고 있지만, 영화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생각헀던 것처럼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보다 이 영화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편지라는 매체가 과연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만큼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물음이다. 이 영화의 첫 시작점을 삼인조가 경찰을 피해 나미야 잡화점으로 숨어들어온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영화 속 모든 내용의 시작은 지금까지 고민 상담을 해 주었던 일들이 그 사람들의 인생을 본인의 그 짧은 한마디로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래서 그 사람들이 미래에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할 것처럼 느껴지니까.

04.

물론 첫 시작부터 그렇게 심오했던 것은 아니다. 때때로 무거운 고민들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주고받은 이야기들은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은데 멀미를 심하게 한다는 소년의 질문에 우주비행사도 선원도 누구나 처음에는 다 멀미를 한다는 식의 장난에 가까운 말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정성을 다해 답장을 쓰기는 했지만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 이후다. 과거의 유지 할아버지와 미래의 삼인조가 공통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명제는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나름의 해답을 내놓는데 어떤 자격이라는 게 필요한 것일까? 하는 것. 특히 스스로도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미래의 세 사람에게 자신의 꿈과 진로를 고민하는 가쓰로나 집안 사정으로 인한 잘못된 선택을 고민하는 하루미의 걱정을 해결하는 일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특히 코인 로커에 버려지고, 부모로부터 학대당하고, 엄마가 모르는 남자에게 몸을 팔아 돈을 벌었던 세 사람의 배경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다. 과거의 유지 할아버지에게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누군가의 삶에 조언을 하는 것이 생각처럼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았던 게 아닐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스틸컷 그녀는 미래로부터 받은 편지 한 통으로 인생이 바뀌게 된다.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스틸컷 그녀는 미래로부터 받은 편지 한 통으로 인생이 바뀌게 된다. ⓒ 부산국제영화제


05.

영화는 혹은 원작 소설은, 이에 대한 해답으로 사랑과 관심, 책임이라는 대답을 내어놓는다. 누군가의 고민을 듣고 그에 상응하는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자격을 갖춘 이들이 존재하지만, 반드시 자격에 의해 가늠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가수가 되고자 했던 꿈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누군가의 삶을 위해 희생할 줄 알았던 한 청년의 마음. 비록 자신의 어머니는 당신의 꿈 대신 현실의 혹독함 앞에 무너지고 말았지만, 누군가는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앞에서 자신을 꼭 붙잡아주는 이의 온기. 이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한 것이 작은 편지였다고. 세상의 모든 잡다한 물건들이 잡화점 안에서 제 주인을 만나기만을 기다리듯이 우리 모두의 그런 잡다한 마음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닿아 기적을 만들 수 있다고 이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말하는 것 같다.

06.

드라마를 장르로 하는 많은 일본 영화들이 그런 것처럼 이 영화 역시 감정의 기복이 큰 작품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특유의 잔잔함을 바탕으로 그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나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져 온다. 이 영화의 면면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하루미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도망치던 삼인조의 진짜 이유. 마을의 개구쟁이들도 지키려 했던 잡화점 편지함에 관한 암묵의 규칙. 잡화점으로 숨어들어 온 뒤 고헤이가 처음 발견한 과거로부터 온 편지. 그리고 과거의 유지 할아버지에게 도착한 마지막 백지 편지지까지. 이 영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선한 호기심'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서로를 알아본 '선한 호기심'들의 연결고리.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메인포스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메인포스터 ⓒ 부산국제영화제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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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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