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금만 더 스틸컷 가자는 아버지와 그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 조금만 더 스틸컷 가자는 아버지와 그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 부산국제영화제


01.

이제 열네 살이 된 소년 가자(Hayat VAN ECK 역)는 아버지를 도와 난민들이 터키를 거쳐 유럽에 밀입국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수많은 난민들을 한꺼번에 트럭에 싣고 국경을 넘는 일과 같은 것이다. 문제는 그 일이 합법적이지 않다는 것을 넘어 비인간적이라는데 있다. 난민들이 스스로 원해서 큰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선택한 길이라고는 하지만, 그 끝에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혹독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가자의 아버지는 이 일을 아들에게 계승시키고자 한다. 세상에 믿을 것은 돈과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면서 말이다. 물론 가자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다. 오히려 그는 이 혹독한 세상에서 빠져나와 또래와 같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그런 삶.

02.

영화 <조금만 더>는 터키의 다재다능한 배우 오눌 사일락의 감독 데뷔작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는 시리아 난민 문제를 파고드는 이 작품은 단순히 그들의 삶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어 온 범죄와 폭력이 한 소년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이를 위해 감독은 영화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연출한다. 소년의 순수함이 허락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아직까지는 그의 꿈과 희망이 아직 침범당하지 않은 '조금만 더'와 모든 것이 폭력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마지막 남은 희망까지 산산이 조각나 버리게 되는 과정을 담은 '78일 더', 그리고 모든 순수함을 잃어버린 채 아버지의 모습보다 더 폭력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마주하게 되어버린 소년의 모습을 보여주는 마지막 '13일 더'까지. 물론 여기서 제시되는 영화 속 소제목들은 난민들의 간절함이 담긴 주제들이다.

03.

그렇다면 감독은 왜 소제목들에 난민들의 간절함을 담고 있으면서도 각각의 이야기들은 그들의 위에 군림하는 소년과 아버지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시리아를 탈출하여 새로운 곳에 정착하기 위해 어두운 지하 창고 속에서 배를 탈 날만 기다리는 난민들의 간절함과 주변의 폭력적인 상황과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나 평범한 삶을 살기를 원하던 가자의 바람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난민들의 상황이나 처지를 가자의 마음을 대변하기 위한 장치로만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영화의 첫 시작에서부터 카메라가 뒤따르게 되는 난민들의 탈출 과정과 창고 속에서의 고난과 같은 것들을 보고 있으면, 현실에서 가볍게 지나치고 말았던 그들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둘 사이에는 묘하게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폭력에 저항할 수 없이 유약하다는 것과 어쩌면 그 폭력까지도 참을 수 있게 만드는 막연하지만 작은 꿈이 있다는 것.

조금만 더 스틸컷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돈과 자신만 믿으라고 한다.

▲ 조금만 더 스틸컷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돈과 자신만 믿으라고 한다. ⓒ 부산국제영화제


04.

이 작품에서 크게 드러나는 폭력의 속성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폭력 그 자체로서의 악에 대한 것과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하는 과정에 대한 것과 그리고 조금 익숙해지기 시작한 폭력의 수준 다음에 도사리고 있는 예상치 못한 더 큰 폭력의 가학성에 대한 것. 실제로 주인공 가자는 자신에게 물리적으로 행사되지 않는 타인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에 대해 조금씩 익숙해지며 적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성폭행과 암매장과 같이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수준의 폭력 앞에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과의 대화를 통해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폭력은 무엇이었냐고 묻는 필자의 말에 오눌 사일락 감독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희도 폭력에 관해서 여러 가지 논의를 한 끝에 두 가지 정도를 표현하고 싶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첫째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이 폭력이 어떻게 점점 더 커지고 자라는지에 대해서 표현하고 싶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두 번째 문제와 관련해, 난민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는 그저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TV로만 보고 사망자 수만 확인하기 때문에 어떤 액션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폭력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지점을 이 영화의 끝에서 표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이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아버지보다 더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가자가 난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장난을 치기도 하고, 감시 카메라를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등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폭력을 가하는 모습들이 등장한다.

05.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난민들의 꿈이 이 모든 부조리함과 비인격적인 처우를 참아내게 한 것이라면, 변하기 전까지 가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공부에 대한 애착과 기대였다. 아버지의 온갖 부조리함 앞에서도 –자신이 흠모했던 난민 여성이 아버지의 강요 앞에 다른 남성에게 당하는 것도 참아냈던 그였다.– 자신의 순수함과 정의를 버리지 않고자 했던 그가, 학교에 합격했다는 말을 하자마자 자신에게 처음으로 가해진 물리적 폭력에도 탈출을 감행하던 그가 굴복하고 만 것은 결국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세상을 탈출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마수를 뻗어오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목격한 뒤였다. 세상에 나의 꿈 따위를 지켜줄 곳은 없다는 무력감이 그를 망가뜨리고 만 것이다.

06.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사리 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조금씩 폭력에 물들어가고 있기는 했어도, 처음의 그는 창고에 갇혀 지내는 아이들을 위해 종이비행기와 종이 개구리를 접어 넣어주곤 했다. 연정을 느낀 난민 여성을 위해서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담요도 직접 가져다주고 음식도 만들어 넣어주던 그였다. 하지만 이제는 어떨까? 지속되는 폭력적 상황 속에서 그는 이제 더 이상 비행기와 개구리를 접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일까? 그 해답은 이 영화의 시작과 중간에 등장하는 한 남자의 목소리에 담겨있다. 이 모든 일이 끝난 뒤에 그는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조금만 더 메인포스터

조금만 더 메인포스터 ⓒ 부산국제영화제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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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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