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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북동부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구도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매우 현대적인 스트라스부르 트램(노면전차)에 올라탔다. 트램 내부는 이 도시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세련된 모습이다. 트램이 워낙 자주 운행되고 시설도 깨끗해서 스트라스부르 시민들은 이 트램을 애용하고 있었다. 철도 강국답게 이 노면전차는 길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나를 구시가로 안내해 주었다.

스트라스부르 도심을 연결해주는 편리하고 쾌적한 교통수단이다.
▲ 스트라스부르 트램. 스트라스부르 도심을 연결해주는 편리하고 쾌적한 교통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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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대성당 앞에는 시내의 중심을 이루는 한 광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광장의 이름은 구텐베르크 광장(Place Gutenberg). 구텐베르크 광장은 한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구텐베르크(Gutenberg)의 업적을 기리는 광장이다.

구텐베르크는 독일 마인츠(Mainz) 출신이지만 젊은 시절을 보냈던 이곳 스트라스부르에서 금속활자 기술을 발명했다. 그는 1450년경에 이곳에서 인쇄공장까지 만들어 인쇄술을 발전시켰으며 인쇄공장에서 구텐베르크 성서를 출판하기도 하였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성경을 인쇄하게 되면서 당시 치열한 종교개혁 중이던 유럽 전역에 보급되게 되었다. 그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발달된 인쇄술은 기록문화를 획기적으로 발달시킴으로써 근대과학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구텐베르크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금속 인쇄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발명가답게 그의 손에는 금속활자로 찍힌 종이 한 장이 자랑스럽게 들려 있다. 그의 동상 아랫부분에는 그가 금속활자를 발명할 당시의 상황을 찬양하는 조각이 새겨져 있다. 그가 들고 있는 종이에는 '그리고 빛이 있었다.(Et la lumiere fut)'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당시 금속활자의 발명은 많은 사람들에게 문자와 책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빛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하자 광장에는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면서 구텐베르크 광장은 경건한 광장의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스트라스부르 시민과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레저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약간 뜬금없다고 생각될 수 있는 작은 회전목마도 광장의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회전목마는 어린아이들이 모두 목마의 자리를 채우자 돌아가기 시작했다. 유럽에는 놀이 공간마다 회전목마가 꼭 있을 정도로 회전목마 사랑이 유별난데 스트라스부르도 예외는 아니었다.

구텐베르크 광장에는 양초가게와 같이 가정용품을 파는 노점들로 둘러싸여 있다.
▲ 양초가게. 구텐베르크 광장에는 양초가게와 같이 가정용품을 파는 노점들로 둘러싸여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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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 주변으로는 수많은 노점들이 둘러싸고 있다. 노점들은 허름하지 않고 모두 숲속의 오두막 같은 목재로 잘 조립되어 있어서 정겨운 운치마저 느끼게 한다. 노점들 중에는 양초가게와 같이 가정용품을 파는 곳도 있고 기념품을 파는 곳들도 많다. 집에서 직접 만든 얼그레이(Earl Grey) 차(茶) 등 수십 종류의 차를 파는 가게도 있다. 따스한 차를 즐기는 나도 향긋한 차향에 취해 종이팩 차를 종류별로 여러 개를 샀다.

은은한 차 향이 시민들과 여행객의 발걸음을 잡아당긴다.
▲ 차(茶) 가게. 은은한 차 향이 시민들과 여행객의 발걸음을 잡아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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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가게 중에서 가장 많은 곳은 역시 먹거리를 파는 노점들이다. 먹거리 노점 중에서는 매듭이 있는 하트 모양으로 구운 빵, 브레첼(Bretzel)이 가장 많이 팔린다. 나는 진한 갈색의 큰 브레첼 한 개를 샀다. 브레첼의 노란 속살은 너무나 부드러웠지만 빵 표면에 붙은 굵은 소금에서 짭짤한 맛이 났다. 브레첼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생각나게 하는 빵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브레첼과 도넛을 파는 이 가게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 빵 가게. 브레첼과 도넛을 파는 이 가게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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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모양의 이 빵은 소금기가 많아 맥주 생각이 절로 난다.
▲ 브레첼. 하트 모양의 이 빵은 소금기가 많아 맥주 생각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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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 가게에서는 사과가 가득 들어간 애플 도넛, '베녜 폼(Beignet pomme)'을 판다.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프랑스 빵을 먹어보았지만, 이 사과 도넛은 이곳에서 처음 만나게 된 빵이다. 먹음직스러운 사과가 가득 들어간 도넛이 계속 식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스트라스부르의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 나는 이 도넛도 먹어보기로 했다. 도넛 안에 들어간 사과의 맛은 생각보다도 더 달달했다. 사과가 들어간 빵을 먹으면서 사과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역시 밀가루로 만든 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달한 사과 과육이 밀가루 빵과 잘 어울린다.
▲ 애플 도넛. 달달한 사과 과육이 밀가루 빵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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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구경하다가 나는 옆 노점의 소시지 빵도 사서 먹어보았다. 원래 계획에 없던 일이었지만 소시지를 굽는 냄새가 저절로 지갑을 열게 만든다. 너무 많은 음식을 섭취하지 말라는 나의 방어기제는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돼지고기의 여러 부위를 알뜰하게 모아 만든 이 프랑스 소시지. 인스턴트 소시지가 아니라 농가에서 수제로 만들어 내다 파는 소시지답게 소시지의 맛이 아주 진하다. 진한 고기 맛 나는 소시지와 빵과의 궁합이 잘 어울리고 있었다.

소시지의 본고향답게 유럽의 소시지는 맛이 아주 진하다.
▲ 소시지 빵. 소시지의 본고향답게 유럽의 소시지는 맛이 아주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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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는 한 청년이 여러 개의 항아리에 가득 담긴 양파 수프를 팔고 있었다. 주변에서 많이 자라고 빨리 숙성도 되는 양파를 이용해 만드는 이 수프는 근대 이후 프랑스의 서민들이 애용하던 음식이었다.

송아지 육수에 양파가 들어간 이 수프는 프랑스 서민들의 대표적 음식이다.
▲ 양파 수프. 송아지 육수에 양파가 들어간 이 수프는 프랑스 서민들의 대표적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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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프에는 송아지 육수와 버터의 맛도 담겨있지만 끈적끈적해진 양파의 맛이 깊게 전해진다. 쌀쌀함을 이기게 해주는 따뜻한 맛이다. 수프 안에는 바게트 빵이 녹아있는데 수프에 용해된 밀가루 빵이 입안에서 살살 녹아 없어진다. 수프의 깊은 맛을 보고 있으면 왜 이 수프가 프랑스의 대표 수프이고 긴 세월 동안 별 변함 없이 이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프랑스의 군밤장수는 아주 세련된 푸드 트럭 모습을 하고 있다.
▲ 군밤 장수. 프랑스의 군밤장수는 아주 세련된 푸드 트럭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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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입구 쪽에는 군밤을 파는 아저씨도 있다. 군밤이 들어있는 군밤 통이 마치 증기기관차같이 생긴 일종의 푸드 트럭인데 이곳저곳을 이동해 가며 방금 구운 따뜻한 군밤을 팔고 있었다. 푸드 트럭마저도 군밤 이미지에 맞게 참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구운 군밤의 생김새는 우리나라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니 이곳의 다른 먹거리와는 달리 괜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구텐베르크 광장 중앙을 가로질러가면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이어지는 '뤼 메르시(Rue Merciere)' 길이 나온다. 이 길에 들어설 무렵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에는 어둠을 밝히는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그 길 앞에 서서 웅장하게 우뚝 서 있는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을 한참 지켜보았다. 한밤의 조명이 들어온 대성당의 모습이 대낮과는 다르게 더욱 신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옆에 서 있던 한 프랑스 아저씨가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나에게 무언가 말을 걸었다. 나는 그의 영어 발음을 잘 못 알아듣고 다시 한번 그가 한 말을 물어보았다.

"당신의 스트라스부르 여행은 어땠나요?"

나는 그에게 스트라스부르에서의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고 대답을 했다. 나는 대답을 하면서도 내 답변이 너무 상투적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는 더 이상 질문도 없었다. 그저 선문답하듯이 나에게 즐거운 여행을 하는지 물어보았던 것이다. 아무 의도 없이 외국에서 온 여행자에게 여행의 소감을 물어본 것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내 표정을 보면서 내가 이 도시에 감화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저녁의 뤼 메르시 거리에는 거리의 조명등 아래 수많은 노천카페들이 여행자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노천카페에서 뒷모습이 정겨워 보이는 한 노부부가 다정하게 거리를 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거리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커피 한잔을 음미하는 모습이 그렇게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수많은 인생의 곡절을 함께 했을 노부부의 삶이 그들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을 바라보는 노천카페에서의 커피 한잔이 상념에 젖어 들게 한다.
▲ 노천카페.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을 바라보는 노천카페에서의 커피 한잔이 상념에 젖어 들게 한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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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자연스럽게 이 분위기 좋은 카페에 녹아 들어가기로 했다. 나는 그 노부부가 앉아있는 노천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한참 손님들을 접대 중인 종업원에게 카페오레 한 잔을 달라고 했다. 그는 웃으면서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노천카페 비어 있는 좌석에 앉아계시면 제가 주문을 받으러 갈게요."

나는 거리를 바라보는 노천카페 자리에 앉아 카페오레 한 잔을 음미했다. 밝게 빛나 찬란한 대성당을 바라보며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바쁘게 걸어 다니기만 한 오늘 여정을 마치고 이렇게 앉아 있으니 어색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너무 편했다. 이러한 찰나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차분히 쉬면서 이국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관조하는 행복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밀려 들어왔다.

유럽의 많은 성당을 봐 왔지만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같은 성당은 스트라스부르에서만 볼 수 있었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은 불이 꺼지지 않은 채 밤하늘에서 계속 빛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태그:#프랑스, #프랑스 여행, #스트라스부르, #알자스, #구텐베르크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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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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