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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북핵 관련 기사를 읽다 보면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한다는 댓글을 종종 본다. "핵은 핵으로 맞서 공포 균형을 맞추는 수밖에 없다"느니 "핵무장해서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도 우리를 무시 못 하게 하자"느니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나는 단호한 비핵화론자는 아니라, 정말 필요하다면 한국도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 만큼은 진지한 성찰에 기반한 의사결정처럼 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댓글들은 대개 핵무장 시 한국이 짊어질 부담은 정작 잘 말하지 않는다.

또 무엇보다 글의 행간에서 죽음을 두려워 하되 자존감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되찾으려고 발버둥 치는 가냘픈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셸던 솔로몬, 제프 그린버그, 톰 피진스키가 쓴 <슬픈 불멸주의자>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슬픈 불멸주의자>(셸던 솔로몬, 제프 그린버그, 톰 피진스키 /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7 / 1만6000원).
 <슬픈 불멸주의자>(셸던 솔로몬, 제프 그린버그, 톰 피진스키 /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7 / 1만6000원).
ⓒ 흐름출판, 합성 하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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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불멸주의자>는 공포심과 자존감이 인간의 의사결정을 어떻게 왜곡할 수 있는지 탐구한 책이기 때문이다. 책은 우선 세 심리학자가 1987년 미국 애리조나 주의 지방법원 판사 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을 소개한다. 심리학자들은 판사들을 두 집단으로 나눴다.

그다음 실험집단에게는 본인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설문을 실시했고 통제집단은 하지 않았다. 판사들은 이제 가상의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려야 했다. 사건은 캐롤 앤 데니스라는 25세 여성이 성매매 호객 행위로 체포됐다는 내용이었다.

데니스는 주거가 일정치 않아 보석금을 내고 풀려날 예정이었고 판사들은 보석금 액수를 정해야 했다. 책에 따르면, 대수롭지 않고 판사들도 이미 경험해본 유형의 사건이었다. 통상 보석금 50달러 정도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통제집단은 평소처럼 평균 50달러를 부과한 반면 실험집단은 이보다 9배나 큰 455달러를 부과했다.

책은 이 실험 외에도 이후 30년간 죽음을 주제로 대상을 달리한 비슷한 연구가 500건 이상 있었지만, 결과가 늘 이상했다고 언급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기만 하면, 외국인과 자기 나라에 비판적인 내국인에게 더 가혹하게 굴었고, 과시적 소비욕구를 더 드러냈으며, 가족에게 더 집착했다고.

"본인의 죽음을 생각한 판사들은 정의의 잣대를 왜곡하거나 아예 쓰러뜨렸다. (...) (이러한 문제는) 점심 식사 메뉴, 해변에서 바를 자외선 차단제의 양, 지난 선거에서 투표한 후보, 쇼핑에 대한 태도,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 등 일상사에서 중대사에 이르는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친다." <슬픈 불멸주의자> 30~33쪽.

죽음은 어떻게 우리의 의사결정을 이처럼 터무니없이 왜곡할까.

인간은 죽음이 두려웠고 문화를 창조했다

<슬픈 불멸주의자> 1부는 그 이유를 죽음에 대한 공포심에서 찾는다. 책은 우선 인간이 고도로 발달한 대뇌 피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며 운을 뗀다. 머리가 좋은 인간은 자기 인식 능력이 뛰어나고, 공간과 시간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 탁월하다.

따라서 자신이 언젠가는 이 시대, 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죽을 것)이라는 존재론적 고민까지 봉착해버렸으며 죽음이 못마땅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머리 좋은 인간은 죽음 불안을 방어하는 전략도 갖고 있다고 책은 덧붙인다.

<슬픈 불멸주의자>(셸던 솔로몬, 제프 그린버그, 톰 피진스키 /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7 / 1만6000원). [신을 잘 믿으면 죽어도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기독교, 죽어도 죽어도 계속 윤회하다가 결국 극락에 간다는 불교, 죽어도 조상신이 돼 후손들을 돌본다는 한국 차례 풍습 등을 생각해보자. 죽음 이후를 안심시키는 상상력으로 가득하지 않는가. - 기자 주]
 <슬픈 불멸주의자>(셸던 솔로몬, 제프 그린버그, 톰 피진스키 /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7 / 1만6000원). [신을 잘 믿으면 죽어도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기독교, 죽어도 죽어도 계속 윤회하다가 결국 극락에 간다는 불교, 죽어도 조상신이 돼 후손들을 돌본다는 한국 차례 풍습 등을 생각해보자. 죽음 이후를 안심시키는 상상력으로 가득하지 않는가. - 기자 주]
ⓒ 흐름출판, 합성 하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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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불멸주의자> 3부는 불안을 방어하는 전략 두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도망치는 거다. 사람들은 죽음에 의식적으로 직면하면 생각을 억누르거나, 주의를 딴 곳으로 돌리거나, 먼 미래의 문제로 미룬다. 책은 이 전술을 "중심 방어"라고 정의한다.

물론 죽음은 잠시 의식의 중심에서 쫓겨나도 의식의 가장자리, 무의식 차원을 맴돈다. <슬픈 불멸주의자>는 이를 지적하며 인간의 두 번째 전략을 소개한다. 바로 상상력을 발휘해 정교한 심리적 자원을 동원해 의식의 빈틈을 메우는 전술, 즉 "말단 방어"다. 말단 방어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 책 2부에 먼저 소개된다.

책 2부에 따르면, 인간은 실질적인 불사의 육신을 얻기는 어렵다. 진시황, 신선사상, 연금술, 인체 냉동보존술과 뇌의 로봇 신체 이식 연구까지. 동서고금 막론 극소수가 별별 방식들로 불사에 도전하지만 마땅한 성과도 아직 없고 대중적이지도 않다.

책은 우리 조상들과 우리 대다수는 상상력을 발휘해 문화를 창조하고 여기에 종속돼 '상징적인 불멸성'을 얻으며 자존감을 얻는 방식으로 대응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문화를 "자신이 죽어도 영속하는 가치 체계"라고 정의하는데, 그 원초적 형태로 종교를 꼽는다. 문제는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고 그것들 사이의 충돌로 인류 역사가 피로 물들었다는 진실이다.

"종교는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살아서 존재하는 삶'이라는 개념을 심어줬으며 이러한 존재들이 어떻게 소통하고 서로를 대해야 하는지 지침을 주었다." <슬픈 불멸주의자>, 132쪽.

우리는 슬픈 불멸주의자

실제로 서로 다른 신념 체계를 가진 사람들이 늘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아니다. <슬픈 불멸주의자> 2부 후반부와 3부에서 종교의 대체재 역할을 하는 현대 문화들을 다룬다. 죽음 공포가 종교뿐 아니라 예술, 언어, 경제, 과학의 발달을 이끌었고, 이러한 문화에 인간이 종속돼 불안을 약화시키는데 성공했으나 그만큼 "비싼 값을 치르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식도 하나의 인격이란 점을 잊은 채 자신은 죽어도 자신을 닮은 자식이 자신의 정체성과 신념을 대대손손 이어주길 집착한다는 거다. 이름을 남기려고 경쟁적으로 명성과 부에 집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이 세월을 관통하는 위대한 대의명분에 속한 양 과신하며 각자의 민족이나 국가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특정 인물을 그 화신처럼 숭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슬픈 불멸주의자>(셸던 솔로몬, 제프 그린버그, 톰 피진스키 /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7 / 1만6000원).
 <슬픈 불멸주의자>(셸던 솔로몬, 제프 그린버그, 톰 피진스키 /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7 / 1만6000원).
ⓒ 흐름출판, 합성 하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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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제시한 판사 사례처럼, 우리는 종종 사유하는 법을 잊고 원래 내려야 할 판결보다 '오버'한다. 결국 <슬픈 불멸주의자>를 덮었을 때 마주하는 교훈은 '우리는 눈부시지만 동시에 나약한 존재'라는 슬픈 진실이다. 우리는 익숙한 신념 체계와 조금만 어긋나는 상황에 직면하면 불안함을 못 견뎌하며 상황을 성급하게 종결지으려다 치명적인 오류에 빠진다.

그렇다면 이미 고민했어야 할 건, 우리가 실제로 내려야 할 결정보다 과한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다. 이 물음은 남한의 핵무장론자들뿐만 아니라, 자주라는 가치에 지나치게 매몰된 탓에 평화와 협력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북한의 핵개발론자들에게도 유효하다.

상대의 공포심과 자존감을 건드리면, 나의 신념을 수용하도록 태도를 바꾸기는커녕 기존 신념 체계에 더 단단하게 고착되도록 만들어 파국으로 치닫기 쉽다는 걸 명심하라. 지금까지 양날의 칼 위를 달리며 살아가는 우리 인류,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에 대한 이야기 <슬픈 불멸주의자>였다.



슬픈 불멸주의자 - 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셸던 솔로몬.제프 그린버그.톰 피진스키 지음, 이은경 옮김, 흐름출판(2016)


태그:#슬픈 불멸주의자, #북핵, #북한, #심리학, #블레이드 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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