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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국정원 블랙리스트 피해자인 배우 문성근씨가 1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 블랙리스트 피해자인 배우 문성근씨가 1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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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기자가 '<조선일보> C아무개가 칼럼에서 당신을 씹었는데 어찌 생각하느냐?" 묻길래 이렇게 답했습니다. '매체 영향력도 없는데 굳이 언급해 줄 필요있나요?' 검색하지 않기, 걍 개무시하기."

23일 오전, 배우 문성근씨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적은 글이다. 역시나, 명불허전이다. <조선일보> 말이다. 22일자 최보식 선임기자의 칼럼 <해묵은 '블랙리스트' 꺼내 들며 탄압받은 正義의 사도처럼…>은 최근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는 'MB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보수언론이 내놓을 수 있는 '최상'의 답변이다.

그런데, 그 수준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당사자 중 한 명인 김미화씨는 "(최 기자의 칼럼을) 읽어봤는데 거론할 가치가 없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이 칼럼은 한 마디로,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은 침묵하는 형국에 논리를 가져다 대주다 못해 그 옆 친구들이 피해자에게 "너희 잘못도 크다"고 되지도 않는 훈수를 두는 격이다. 칼럼을 보자.

문성근, 김규리 비판한 <조선일보>의 어불성설과 치졸함

22일자 <조선일보> '최보식 칼럼'
 22일자 <조선일보> '최보식 칼럼'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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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속성을 알면 피아(彼我) 성향 분류의 리스트는 크게 새로운 게 아니다. 정치색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권력 한쪽에 줄을 대거나 맞서는 언론인·학자·문화예술인 등은 그 대상이 돼 왔다. 블랙리스트가 보수 정권의 '음습한 작품'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직 못 찾아냈을 뿐 진보 정권에서도 다 작성됐을 것이다."

"MB 정권의 국정원은 정말 치졸한 짓을 했다. 음지(陰地)에서 '합성 나체사진'이나 유포하라고 국민 세금을 줬던 게 아니다"라면서도 기어코 '피아' 구분에 나서고, '진보'와 '보수', '좌우'로 구분을 짓는다. '균형' 잡힌 시각이라서가 절대 아니다. 그렇게 해야만 보수 진영의 '죄'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좀 더 보자.

"연예인도 정치적 성향과 입장이 있고, 정치판에 못 들어갈 이유가 없다. 하지만 선택에는 자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잘나가던 정치 실세(實勢)라도 정권이 바뀌면 뒷전 신세로 밀리고, 더 운이 나쁘면 검찰에 불려간다. 마찬가지로 '정치 연예인'도 힘을 뽐내고 혜택을 누리는 시절만 지속될 수 없다. 정권이 바뀌어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출연 제약을 받는 영락(零落)의 세월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판에 몸을 담갔으면서 대중 연예인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만인의 사랑을 받겠다는 것은 자기 착각과 탐욕이다."

그러면서 이 칼럼은 최근 문성근씨가 'MB 블랙리스트'가 최대 피해자로 지목한 배우 김규리씨를 언급한다. 그는 "보수 정권에서 김규리씨가 집중적으로 배제와 불이익을 받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사실 그녀는 꾸준히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해왔다"며 "그 작품과 연기력이 대중에게 어필했는지는 모르겠다"고 적었다.

정권 차원의 권력 기관이 주시하면서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한 사건에 대해 "연기력" 운운하는 것 자체가 치졸하고 옹졸하다. 소셜테이너들이 부담감을 느끼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러한 가정과 추정은 가히 2차 피해 수준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이 당당하게 제보와 신고에 나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이러한 <조선일보> 식의 주장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누군가 최근 사례가 떠오르지 않는가.

예나 지금이나 '블랙리스트' 관련 망언 중인 홍준표 대표

'천하대란 어떻게 풀 것인가' 주제로 강연하는 홍준표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반도미래재단 주최로 열린 2017 대선주자 초청 특별대담에 참석해 '천하대란 어떻게 풀 것인가'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천하대란 어떻게 풀 것인가' 주제로 강연하는 홍준표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반도미래재단 주최로 열린 2017 대선주자 초청 특별대담에 참석해 '천하대란 어떻게 풀 것인가'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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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를 말씀하셨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5년 동안 문화계를 지배하던 황태자가 두 사람 있었죠. 그 사람들이 전부 군기 잡아서 그 당시 이회창 전 총재 도와주던 연예인들 방송 출연 5년을 못 했습니다. 자기들이 집권을 할 때는 우리를 도와주던 연예인들은 씨를 말려버렸어요.

그럼 그거를 가지고 처음에 항변을 '너희가 먼저 그렇게 하지 않았냐, 우리도 그렇게 한번 해봤다, 해봤는데 이게 무슨 죄냐' 이런 식으로 항변을 해야지 난 김기춘 전 비서실장처럼 머리 그리 좋은 사람이 왜 수갑 차고 들어가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 이 말이에요."

지난 3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미래재단 초청 특별 대담'에 참석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우파 정부가 자기들에 반대하는 좌파 단체 리스트 만든 게 무슨 죄냐"고 주장하는 한편 구속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우회적으로 옹호하고 나선 바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당시 한창 문제가 되던 박근혜 정권 블랙리스트 사건의 본질을 흐릴 뿐만 아니라 블랙리스트 자체가 지닌 민주주의 정신 훼손과 헌법정신 파괴 행위에 대한 홍 지사의 몰이해를 드러내는 망언일 뿐이다. 홍 지사의 이러한 몰인식은 지난 2월 <주간조선>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난다.

"블랙리스트 한 가지만 얘기하자. 특검과 언론이 블랙리스트를 마치 민주화운동 시절 보안사가 리스트를 만들어 미행한 것과 다름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 이 정부는 기본적으로 보수 정부다. 보수 정부에 협력하는 사람들한테 정책자금을 배분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범죄로 몰아갈 수 있나. 노무현 정권 당시의 일을 벌써 잊었나. 그때 연예계에서만 M씨 등 친노 두 사람이 황제처럼 설치면서 이회창 도와주던 연예인들 방송 출연 금지까지 시키지 않았나."

실체가 전혀 확인되지 않은, 오히려 '설'을 가지고 '진보'와 '보수' 프레임으로 나누는 홍준표 대표와 같은 보수정치인들의 행태는 <조선일보>의 그것과 똑같이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홍 대표는 '반성'도 '성찰'도 모른다.

지난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홍 대표는 "추석 연휴에 귀향 활동을 통해서 방송장악이나 안보에 대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며 "노조의 행패는 마치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을 연상시키는 작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 자행된 블랙리스트의 실체와 실행 사례들은 '사실'로 밝혀지는 중이다. 그런데도 10%대 지지율에 그친 거대 야당 자유한국당이나 갈수록 그 위상이 추락 중인 <조선일보>는 '철 지난' 노래만 부르고 있는 중이다. '블랙리스트'를 놓고 '좌우' 운운하는 그 행태 말이다. 

지난 22일 관련 재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블랙·화이트리스트'를 보고 받았다는 정황이 드러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MB 블랙리스트' 관련 사건에 대한 제보와 검찰의 참고인 조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 수사의 과녁이 MB로 향해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지금이다.

이 와중에, 철 지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조선일보>나 그와 철학을 같이하는 홍준표 대표와 같은 보수정치인과 그 지지자들이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다. 시대를,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는 언론인, 정치인들은 항상 퇴출이란 운명을 면치 못하지 않았는가. 부디, 최보식 기자의 칼럼처럼 철 지난 '자기 착각'과 '탐욕'은 이제 딱 끊으시기를 당부드린다.


태그:#블랙리스트, #문성근,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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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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