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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설명할 수 없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일면식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요. 말 그대로 '운명'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노 전 대통령의 육신이 별과 바람과 사람들의 마음으로 흩어졌는데, 그중 한 조각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 거죠."

2009년 5월 23일, TV에서 전직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본 중2 소년은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정치인이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친구도 별로 없을 정도로 내성적이었던 소년은 그때부터 태도를 바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계속 임원을 맡았고, 학교 일에 앞장서서 목소리를 냈다. 예를 들어 학생회장을 맡았던 고2 때는 교복 안에 입는 셔츠 색깔을 한 가지로 규제하는 보수적 학교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 존중'을 요구했고, 그 결과 다양한 색깔을 허용하는 변화를 끌어내기도 했다.

선거 유세에서 마이크도 잡은 예비 정치인

그 소년은 지금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 보좌진(20대 국회 개원 직후 기준)으로 국회에서 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서울 은평을) 의원의 정선호(21) 정책비서(아래부터 '보좌관'으로 호칭)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해 4월 20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강 의원을 돕기 시작했고, 당선 후 보좌관에 임용됐다. 지난 5월 19대 대선에서는 은평구 지역 유세차량에 올라 문재인 후보 지지연설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기록한 '26세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기록을 깨고, 장차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거침없이 밝히는 '예비 정치인'이다. 지난 5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청년이 꿈꾸는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지난 8월 8일 전화로 추가 취재하였다.

19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5월 7일 서울 은평구 유세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 발언을 하는 정선호 보좌관.
 19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5월 7일 서울 은평구 유세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 발언을 하는 정선호 보좌관.
ⓒ 정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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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이 된 건 우연한 계기였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은평구청장과의 대화' 행사에서 청소년 참여위원회 소속 청년 대표로 발언했는데, 그 자리에서 강병원 의원이 저를 보고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주셨죠."

그는 당시 은평구청장에게 중·고등학생들의 시민권을 은평구에서부터 향상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강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그에게 만나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강 의원은 그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선거운동을 도와달라고 제의했고, 그게 지금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정 보좌관은 현재 성공회대 2학년 휴학 중이다. 보좌관으로서 국정감사 자료를 준비하고 기자들을 접촉하고 의원의 인터뷰 일정을 조율하는 등 바쁘게 뛰고 있다.

대학생 장학금 등 피부에 와 닿는 문제 제기

국회에서 일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정선호 보좌관.
 국회에서 일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정선호 보좌관.
ⓒ 송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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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현장에 발을 들인 그에게 정치란 무엇일까. 그는 '정치란 일상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사실 우리 일상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는데 어디로 갈지 정하는 것부터, 피자 한 판을 여러 명이 어떻게 나눠 먹을까 등도 정치적인 행위인 거죠."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가까운 대학생의 일상부터 주목했다. 주간지 <시사인(IN)>의 대학기자상을 받은 대학문제공동취재단의 '20대 가난을 팝니다' 기사를 토대로 '가난을 팔아야만' 장학금을 얻을 수 있는 대학생의 문제를 정리해 국정감사 질문을 만들었다. 실제로 강병원 의원은 그가 작성한 질의서를 바탕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관련 사례 전수조사와 시정을 요구했다.

청년들이 정치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인재발굴위원회' 필요

정선호 정책비서가 보좌하는 강병원 의원은 2016 입법 및 정책개발 최우수의원상을 받기도 했다.
 정선호 정책비서가 보좌하는 강병원 의원은 2016 입법 및 정책개발 최우수의원상을 받기도 했다.
ⓒ 정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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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 정치가 일상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청년 세대가 적극적으로 정치권에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16년 총선을 통해 꾸려진 20대 국회의 평균 의원 나이는 55.5세다. 총선 예비후보 중 20~30대는 원내 4당(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을 통틀어 43명이었고 그중 국회의원 배지를 단 후보는 3명(신보라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김수민 국민의당 비례대표,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부산 연제구)뿐이다.

정 보좌관은 "민주당을 포함해서 모든 정당이 청년을 대하는 데 소홀했고, 심하게 말하자면 소모품으로 취급했다"고 아쉬워했다. 정당 차원에서 청년 정치인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미미하다. 그는 "청년 아카데미가 정치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과 정당 간의 다리는 될 수 있지만, 청년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수행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청년 정치인의 등용을 외부 영입에 의존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외부에서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노력도 필요하죠. 그러나 당의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면 10년, 30년을 책임질 인재를 키우고 지금부터 당의 대선 후보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민주당도 그렇게는 못 하고 있어요. 소명으로서의 정치인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은 테크닉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일찍부터 당에 몸담아 민주주의를 깊게 성찰하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갈등을 조정하는 방식 등을 배워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노력을 위해 당 차원에서 '인재영입위원회'가 아니라 '인재발굴위원회'를 만들어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 보좌관은 청년의 정치 진출을 위해 선거 기탁금을 낮추는 등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선거법은 국회의원 후보자가 선거관리위원회에 1500만 원의 기탁금을 내야 출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모아 둔 재산이 없는 청년에게 그런 목돈은 진입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

선거 자원봉사 등 다양한 기회 활용 바람직

정당이 적극적으로 청년 정치인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선호 보좌관.
 정당이 적극적으로 청년 정치인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선호 보좌관.
ⓒ 송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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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처럼 의원 보좌관을 출발점으로 정치 진출을 준비하려는 청년들에게 "자원봉사 등을 통해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정당에서 운영하는 '보좌진 교육'에 참여해서 인맥을 쌓다 보면 추천이 이뤄질 확률도 높다고 귀띔했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과 관련, 당분간 보좌관으로 경험을 쌓다가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마치고, 언젠가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내 인생의 책은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입니다. 그는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고 부인과 영화를 본 후 귀가하는 길에 암살당한 스웨덴 총리입니다. 책에서 그는 끊임없이 묻고 있어요. '너 이래도 정치할 수 있겠어?' '이런 어려움에서도 정치인의 소명을 잃어버리지 않을 자신 있니?' 책을 읽으면서 이런 질문에 끊임없이 답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죠."

최연소 의원 보좌관을 넘어, 투철한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인이 되겠다는 각오가 그의 눈에서 빛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청년, #정치인, #최연소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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