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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은 2003년 8월에 제정·공포되어 2004년 8월부터 본격 시행되었다. 시행 13년째인 올해 들어 외국인 고용허가제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시민단체들은 고용허가제를 과거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비난받던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보다 더 악하다고 말한다. 반면, 고용주들은 이주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별도로 해서 부담을 줄여달라고 한다. 시민단체들은 고용허가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고용주들은 고용허가제 쿼터를 늘려달라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 고용 현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기자말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해요. 휴일은 한 달에 두 번, 본인이 선택해서 쉴 수 있어요. 9월부터 3월까지는 버섯이 잘 자라는 동절기라 밤 10시까지 일해요. 동절기에는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시급 6470원씩 계산해서 줘요. 잔업 쳐 주는 거죠."

버섯 농장 사장이 말한 근무시간은 휴게시간을 빼면 하절기 10시간, 동절기는 14시간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귀띔을 해 준 이주노동자에 의하면 하절기 12시간, 동절기 15시간을 일한다고 했다. 월급은 처음 3개월은 140만 원, 석 달 지나면 145만 원이었다. 동절기에는 세 시간의 시급을 더 받는다.

"외국인들은 나가겠다고 하면 그냥 보내 줘요. 그래도 동절기엔 사람이 다 채워져요."

사장은 지난 하절기에 4명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절기엔 7명까지 고용하는데, 앞으로 두 명 더 쓸 거라고 했다. 그러나 실상은 하절기에도 네팔 1명, 중국 1명, 캄보디아 3명이 일하고 있었다. 사장은 중국인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야근이나 잔업, 휴일 근무 등의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우기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직원 수를 속인 것 말고는 사장은 꺼리는 게 없었다. 그렇게 장시간 일을 시키고도 최저임금도 안 되는 급여를 지급한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우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주노동자 기숙사로 남녀가 같은 공간을 쓰고 있다.
▲ 컨테이너 숙소 이주노동자 기숙사로 남녀가 같은 공간을 쓰고 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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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은 급여 이야기를 끝내고 숙소로 안내했다. 기숙사라고 하는 곳은 검은색 차광막으로 덮은 비닐하우스 안에 놓인 컨테이너였다. 20피트짜리 컨테이너마다 안쪽에 칸막이를 설치해서 만든 두 개의 방은 두 명이 사용하기도 하고, 한 명이 사용하기도 했다.

한 명이 사용하는 방엔 버섯을 담을 종이 박스가 천정까지 높게 겹겹이 쌓여 있었다. 20피트는 채 2.4미터가 되지 않는 높이에, 평수로는 4.1평쯤 된다. 결국 2평짜리 방을 두 사람이 사용하는 꼴이니, 1인당 1평이 이주노동자 숙소인 셈이다.

농장 사무실로 쓰이는 컨테이너는 천정 위로 30센티 정도의 판넬을 설치해서 단열하고 있는 반면, 이주노동자 숙소는 아무런 단열 장치를 하지 않고 있었다. 여름 같은 날엔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쪄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사장 본인도 그런 방에서 한 번 살아보라고 하고 싶었다.

컨테이너 숙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나는 컨테이너 숙소를 볼 때마다 태국인 피싯이 떠오른다. 10년도 더 된 일이다. 8월 어느 날 점심 즈음이었다. 피싯이 한 손은 머리에, 한 손은 입술 주위에 대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다친 부위를 화장지로 누르고 있는 그 모습은 해맑은 장난꾸러기 같았다.

사고는 지난밤에 있었다. 피싯은 숙소인 컨테이너에서 더위로 잠을 자기 어려워지자, 동료들과 함께 컨테이너 위에 올라갔다. 한 여름이긴 했지만, 새벽녘에 선선한 바람이 불자 그곳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잠 들었다기보다 졸았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겠다. 컨테이너 모서리에 걸터앉았던 그는 졸다가 그만 머리를 아래로 하고 떨어졌다. 2미터 남짓한 높이였지만, 무방비로 머리를 땅에 쳐 박히자 피는 낭자하게 흘렀고 통증은 심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어떻게 조치를 취할지 몰라, 마냥 화장지로 흐르는 피를 누르다가 쉼터를 찾아왔다.

피싯을 병원에 데리고 가자, 의사는 상처가 벌써 곪기 시작해서 꿰매는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무려 여덟 바늘이나 머리를 꿰맸는데, 머리라 한 2주나 있어야 실밥을 뽑을 수 있다고 했다.

피싯이 일하던 회사는 20여명이나 되는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게다가 한국인들도 30여명이나 되는 제법 규모 있는 회사였다. 그런데도 사고 난 피싯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 동료도 없고, 회사 직원도 없었다. 피싯이 당한 일은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격리되고 소외된 현실인지를 말해 주었다. 피싯에게 있어 그저 최선의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 쉼터를 찾아간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과 그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말해 준다. 상식적으로 추락 사고로 머리를 다쳤다면, 곧바로 병원으로 가서 지혈을 하고, x-ray를 찍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게 맞다. 그런데 피싯처럼 큰 상처를 입고도 대충 응급조치를 취하고 말거나, 그러한 상처를 키우고 키우다가 병원을 찾는 일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흔한 일이다.

위험하게 머리를 다치고도 멀뚱멀뚱 하늘만 쳐다보며, 화장지로 지혈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오늘이라고 없지 않을 것이다.

이제 더위는 한풀 꺾였다. 하지만 언제인가 싶게 추위가 찾아들 것이다. 교도소 수용공간보다 좁은 그곳에서 이주노동자들은 한 겨울을 나야 한다. 원치 않는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원치 않는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은 낙상 사고나 화재와 같은 사고만을 뜻하지 않는다. 인사 사고도 포함한다. 기숙사는 네팔과 중국, 캄보디아 남녀가 같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인데도 식당은 물론이고, 화장실과 샤워장까지 남녀 구분 없이 같이 쓰고 있었다. 변기 하나와 샤워기 하나 뿐인 곳을 성인 남녀가 같이 써야 하는데도 기숙사라고 하는 건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최저임금이니, 근로기준법이니, 인권이니 하는 말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아직도 꿈같은 이야기다. 외국인 고용허가제 폐지 목소리가 왜 높은지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 고용 현실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태그:#이주노동자, #기숙사, #컨테이너, #근로기준법,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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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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