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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반복되는 뉴스를 보기가 겁난다.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위력이 어떻게 다르고, ICBM이 어떻고, 미사일 탄두 중량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가 뉴스 때마다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베를린에서 평화체제와 남북 공동 번역을 위한 경제공동체 구축을 제시했지만 북은 호응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그런데 북의 6차 핵실험 이후 강경모드로 전환하며 사드 조속 배치까지 합의해 버렸다.

이런 뉴스를 들으며 핵무기 개발에 집착하는 김정은이나 북에 선제 타격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트럼프나 북을 핑계로 군비증강에 열을 올리는 아베나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을 환영하는 대한민국이나 전쟁광들이 설치기는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핵과 미사일과 같은 군비 경쟁은 전쟁광들에게는 호기 중의 호기다. 그들에게는 군사 위기가 커질수록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화폐 단위가 커진다. 국민의 생명과 평화는 그들의 관심거리가 아니다.

지금 청와대는 '북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강력한 응징이 필요하다'는 전쟁광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나 독자적 핵 무장론을 주장하는 매파들의 득세는 예견되었던 일이고, 남북 긴장을 유익의 도구로 삼는 이들은 언제나 있어 왔다.

이처럼 전쟁광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계사를 바꾼 정복자와 독재자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통치와 광기>는 그런 물음에 조금이나마 혜안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희대의 정복자인 알렉산드로스, 칭기즈칸과 독재자인 히틀러와 스탈린, 사담 후세인, 다섯 인물을 다루고 있다.

정복자를 영웅이라고 말하지 말라

<통치와 광기> 류광철 지음, 말글빛냄 출판
▲ 책 표지 <통치와 광기> 류광철 지음, 말글빛냄 출판
ⓒ 말글빛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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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외교관 출신인 저자 류광철은 주 이라크 대리 대사로 재직하며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에 미친 영향이 어떠했는지를 직접 목격했다. 언제 그칠지 모르는 독재자의 해악을 경험했던 저자는 다섯 인물의 성장 과정과 통치 과정을 살피면서 전쟁광들은 대체 왜 생겼고, 그들이 어떻게 세상에 등장할 수 있었는지를 살핀다.

전쟁의 중심에 있었던 다섯의 영향력은 자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고통과 시련을 안겨주었다. 혹자는 그들이 왕이 되었든, 희대의 정복자가 되었든, 폭군이나 미치광이가 되었든 상관없이 역사를 이끌었고, 역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말로는 그들에게 '영웅'이라는 칭호를 붙인다. 저자 역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5인의 통치자가 유명한 폭군이거나 폭군과 다름없는 행동을 간헐적으로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행위를 옹호한다.

"정복전쟁에 나선 영웅은 때때로 폭군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폭군들의 끊임없는 살인과 고문은 분명 생존의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였다." -10p.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주의해야 할 것은 전쟁에서의 폭력, 살인을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는 것이다. 또한, 다섯 인물을 영웅시하거나 그들이야말로 역사를 이끌었던 존재들이라고 치켜세워도 안 된다.

물론 그들이 좋든 나쁘든 역사의 중심에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전쟁과 정복, 착취와 살인을 삶의 존재 이유로 삼았던 이들을 영웅시하는 것이 타당한지 물어야 한다. 희대의 정복자를 배출한 민족 입장에서는 그들이 영웅일 수 있지만, 그들에게 점령당했던 다른 민족과 국가들에게는 뼈에 사무치는 원흉일 뿐이다.

가령, 몽골(원나라)의 병마를 사육하기 위해 100여 년간 목마장이 설치되었던 제주에서는 지금도 가장 심한 욕이 "몽골 놈의 자식"일 정도다. 저자 역시 몽골군이 저지른 만행이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하고 잔인했음을 지적한다.

"그들은 살인기계였으며 자비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전쟁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전장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몽골군은 전쟁을 가장 즐겼던 군대임에 틀림없다. 칭기즈칸은 그 살인기계의 정점에 있었던 사람이다." -38p.

정복자들에게는 은원관계가 분명하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다. 그렇게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한 이들에게 영웅 칭호를 부여하는 것은 문명사회가 할 일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효율적이고 강한 군대를 이끌었다는 명목으로 자기계발서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희대의 정복자들에게 학살은 일종의 게임이었고, 살육은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따져야 한다. 그게 문명사회의 상식이다.

이제는 누군가를 민족 영웅이라고 자랑하던 나라들도 역시 그들을 그저 역사 속 한 인물로 놔두고 영웅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이 민족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전쟁광을 영웅시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평화로 가는 길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을 읽을 때 평화를 위해 국민의 지지를 거절한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난 2일 2018 러시아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7연승을 달성한 독일 축구 대표팀이다. 그들은 민족주의를 넘어선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수들과 감독은 나치 구호를 외친 관중석을 외면하고 "그들은 독일의 수치"라고 입을 모았다. 독일 대표팀이 극우 인종주의에 기댄 극렬한 응원을 외면할 수 있었던 것은 2차 대전 이후 나치의 전쟁 범죄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단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일은 독재자에 환호했던 뼈아픈 과거를 잊지 않으려고 교육을 통해 극우 민족주의가 발붙이지 못하게 했다.

"독일 국민은 히틀러의 연설을 흥분 속에서 기다렸으며 연설을 마치면 열광했다. 마치 로마시대 황제를 연상케 했다. 그가 말하는 것은 바로 진리요 법이 되었다. 라디오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는 정부의 공식성명과 같았다. 히틀러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나치의 모든 조치를 비판 없이 수용했다. 그가 독일의 영광을 되찾아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국민은 나치스에 자발적으로 협력했으며 나치스는 이에 힘입어 계속 가속 폐달을 밟아나갔다." -226p.

독일 국가 대표팀은 진정 조국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거 민주주의, 의회 민주주의의 맹점을 경험했던 독일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부러워만 할 일이 아니다. 독재자의 진면목을 모른 채 그의 선동에 넘어갔지만 촛불 혁명으로 독재자를 몰아낸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북의 도발을 앞에 두었다는 이유로 일사불란한 국민의 맹종을 요구하는 것은 군국주의와 다를 바 없다. 시민의 목소리를 원치 않았던 독재자들의 말로를 보여주는 <통치와 광기>는 민주주의는 좀 시끄러워도 된다는 점을 말한다. 평화를 위한 목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야 할 때다.


통치와 광기 - 세계사를 바꾼 정복자와 독재자들

류광철 지음, 말글빛냄(2017)


태그:#통치와 광기, #사담 후세인, #히틀러, #스탈린, #칭기즈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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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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