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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두물머리, 연인이 남한강변에 앉아 밀어를 속삭이고 있다. 젊음만의 특권은 아니겠지만, 중년의 삶에는 연인들의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 두물머리 해질녘 두물머리, 연인이 남한강변에 앉아 밀어를 속삭이고 있다. 젊음만의 특권은 아니겠지만, 중년의 삶에는 연인들의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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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의 삶의 단위란 '일생'으로 묶어지겠지만, 그 일생은 '하루'라는 시간의 중첩이다. 하루하루는 너무 빠르므로 일주일 혹은 한 달을 한 묶음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삶은 일주일을 기점으로 돌고 또 돈다.

나에게 있어서 일주일의 삶은 특정한 날 하루, 특정한 시간에 집약되고 대부분의 삶은 그 일을 향해있다. 그 일을 마치고 나면 파도처럼 밀려오는 헛헛함과 공허함을 느낀다. 그것이 파도 같다는 것은 반복되는 패턴이라는 점에서 닮았기 때문이다.

쉼과 일, 일과 쉼, 그것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일몰후 두물머리에서 바라본 양평대교, 휴식을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차량들 속에서 삶의 끈끈함을 느낀다.
▲ 일몰후 일몰후 두물머리에서 바라본 양평대교, 휴식을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차량들 속에서 삶의 끈끈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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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의 일과를 마치고 가장 공허한 시간, 나는 홀로 그 시간을 맞이한다. 지난 9월 3일에는 무작정 집을 나섰다. 일반적인 이들과 생활패턴이 다른 까닭에 쉼을 마치고 돌아오는 이들을 마주 보며 나는 쉼을 향해 떠났다.

경강국도를 타고 두물머리로 향하는 나의 길은 시원하게 뚫려 있었고, 쉼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차량의 행렬은 더뎠다. 지금은 시원하게 드라이브를 만끽하고 있지만, 곧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행렬에 합류할 것이다.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이 인생 아닌가? 두물머리는 옛날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린 대신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 되어 있었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겠지만, 서울 근교에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산책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더군다나 한강으로 흘러들어오는 양대 줄기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이니 참으로 소중한 곳이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들에서 위안 얻어 살아간다
일몰후의 풍광은 시시각각 변한다. 색의 변화가 초 단위로 달라진다는 것은 신비한 일이다.
▲ 매직아워 일몰후의 풍광은 시시각각 변한다. 색의 변화가 초 단위로 달라진다는 것은 신비한 일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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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시절 '4대강 살리기'로 홍역을 앓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당시의 '4대강 살리기'는 토건세력과 MB의 개발론의 저열한 합작품이었으며, '4대강 죽이기'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들로 인해 위안을 받고 살아간다. 그것은 MB정권의 공로가 아니라, 살아남은 것들의 치열함 덕분이다.

해가 지고 난 뒤의 하늘은 신비롭다. 그렇게 밋밋하던 하늘도 해가 진 뒤에는 셔터를 한 번 누를 때마다 변화무쌍하게 변한다. 1초도 안 되는 시간일 수도 있고, 넉넉잡아도 1초의 시간이다. 이 시간을 '매직아워'라고 하는 것이리라. 붙잡아 둘 수 없는 너무도 신비한 시간.

함께 대화를 나눌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위로가 되고, 그로인해 살아갈 힘을 얻는다.
▲ 대화 함께 대화를 나눌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위로가 되고, 그로인해 살아갈 힘을 얻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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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과 친구들이 강변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정겹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붙잡아 주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다.

젊은 연인들을 보면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 싶고, 중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평온한 풍경을 연출할 수 있을까' 싶고,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늙어갈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어둠이 두물머리를 온전히 감쌀 때까지 그곳에 머물다 돌아왔다. 물새소리와 풀벌레 소리와 은은한 달빛과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시원한 바람은 헛헛하고 공허하던 마음을 채워주었다.

그랬다. 공허함과 헛헛함을 지우려면 뭔가 채워야 한다. 그 '뭔가'가 아름다운 것들이길 바랄 뿐이다.

삶을 도둑질 당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 '오늘에만 열중하기'

꽃은 하나의 신비요, 기적이다. 피고지는 모든 과정이 철학이다.
▲ 능소화 꽃은 하나의 신비요, 기적이다. 피고지는 모든 과정이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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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초입에서 만났던 능소화. 옛날에는 양반들의 집에나 키우던 꽃이기에 '양반꽃'이라고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지천이다. 아쉬운 것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은은한 빛을 내는 토종이 아닌 이보다는 좀 더 붉은 빛을 발하는 수입종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능소화라는 같은 이름을 갖고 있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보아오던 토종이 좋다. 과거에 붙들려 사는 까닭일 수도 있겠다. 능소화는 귀 모양을 닮았다. 아마, 능소화가 좋아지는 이유는 입만 살아 나불거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는 나이를 살아가는 내게 '말하기보다 듣기를 즐겨하라'는 사인을 몸이 주는 것이리라.

도심의 일출, 이렇게 아름다운 일출이 있는 날이면 나는 바다가 그리워진다.
▲ 일출 도심의 일출, 이렇게 아름다운 일출이 있는 날이면 나는 바다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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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곤한 잠을 잤다. 또 하루가 시작되었고, 나는 습관처럼 하늘을 보았다. 별이 초롱거리더니만 10여 분 지나고 나니 일출의 붉은 빛이 아름답다. 해가 질 때와 해가 뜰 때, 그러니까 처음과 마지막 순간 매직아워는 선물처럼 다가온다.

짧지만 아주 강력한 순간이다. 처음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마지막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빛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다가도, 왜 우리의 삶이 꼭 빛나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다. 모든 것은 빛난다고도 하지만, 빛나지 않는다고 의미 없는 삶일까?

어제의 일몰과 오늘의 일출, 그 어간 사이는 길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길지 않은 시간 사이에서 쉼의 시간을 가졌으며, 다시 오늘을 맞이할 힘을 얻었다. 그리고 어쩌면 일주일 단위로 내게 주어지는 어쩌면 다람쥐 쳇바퀴와도 같은 오늘을 선물로 받았다. 그 오늘이 어제의 오늘이나 일주일 전의 오늘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고 살아간다. 그래서 어쩌면 특별한 날이기도 하다.

내 삶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그중에서 나는 내가 땀 흘림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 오늘은 그것에만 열중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내 삶을 도둑질 당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으므로.


태그:#두물머리, #일몰,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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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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