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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년경찰>의 한 장면.
 영화 <청년경찰>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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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짱 볼 거야? 짭새 볼 거야?"

천만 관객을 넘긴 <택시운전사>와 일주일 간격을 두고 개봉한 <청년경찰> 중 어느 영화를 볼 것인지 오랜 지인들이 함께하는 밴드에 올라온 질문이었다. 그 말에 "세상이 어느 시절인데 요즘도 그런 말 쓰나"고 되묻자, "바른생활 선생님"이라는 댓글이 바로 올라왔다.

어느 시대든지 특정 집단이나 구성원에 대한 편견은 있었다. 그 대상이 사회적 지위가 있을 때는 어느 정도의 질시를 담은 편견이, 사회적 지위가 없을 때는 무시를 담은 편견이 드러날 뿐 상대방을 폄하하는 것은 다를 바 없다.

언젠가 유행했던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는 말을 떠올릴 필요도 없다. 누구나 쓰는 그깟 말 한마디를 바로잡으려는 사람은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비아냥거리는 소리 듣기 딱 좋다.

소리소문없이 어느새 누적 관객수 500만 명을 넘긴(8월 31일 기준 509만 1537명) 영화 <청년경찰>을 두고 말이 많은 모양이다. 영화를 보며 불편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동포들이다.

극 중 인물이 조선족 밀집 지역은 경찰이 손도 못 대는 치외법권적인 지역인 것처럼 말하는 부분 등은 영화 <차이나타운>을 답습하며 중국동포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천을 무대로 한 <차이나타운>이 서울 대림동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한국영화는 그간 조선족에 대한 편견을 우리 사회에 각인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황해>(2010)와 <신세계>(2013), <차이나타운>(2015)에 이어 <청년경찰>(2017)까지 해를 거듭하며 한국영화 속 조선족은 칼부림을 예사로 알고 인신매매와 장기밀매마저 마다하지 않는 범죄 집단으로 묘사됐다. 은밀하고 무정하며, 돈이면 무슨 일이든 하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비록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이 '중국동포에 대해 어떠한 편견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 해도, 그간 한국 영화가 보여준 편견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은 중국동포들이 불편한 심경을 토로하는 것을 두고 "영화가 흥행하니까 시비 거는 거 아니냐"고 오히려 타박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소수자는 늘 희화화하고, 범죄 집단으로 묘사되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대상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웃자고 만든 영화를 몇 장면만 보고 시시비비 가리자는 거냐. 세상 참 불편하게 산다"며 훈수를 두기도 한다. 그들은 이런 주장을 하며 "수원 박춘풍 사건처럼 흉악범죄가 많은 것도 사실이 아니냐"며 중국동포들에 대한 시선이 근거 없는 편견이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중국동포한마음회, 귀한중국동포권익증진위원회 등 국내 중국동포 단체 회원들이 지난 8월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앞에서 영화 '청년경찰'에서 중국동포와 거주지역인 대림동을 비하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며 상영중단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동포한마음회, 귀한중국동포권익증진위원회 등 국내 중국동포 단체 회원들이 지난 8월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앞에서 영화 '청년경찰'에서 중국동포와 거주지역인 대림동을 비하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며 상영중단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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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간 일제 단속, 외국인 조폭단체는 없었다

경찰청은 국내 체류 외국인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80만 명을 넘어섰던 2015년 상반기에 무려 100일 동안 외국인 강·폭력범죄 일제단속을 펼친 바 있다. 경찰은 당시 일부 잔인하고 집단적인 범죄로 인해 대림동 차이나타운 등 외국인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주민들의 불안감이 증가하고 있어 일제 단속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때 경찰은 일제단속 기간 동안 전국 23개 외국인 밀집지역에 국제범죄수사대 및 경찰관기동대를 야간 취약시간대에 주 2회 이상씩 집중적으로 투입하여 위력순찰 및 불심검문을 실시했다. 그 결과 경찰은 집중단속 기간 동안 외국인 강·폭력사범 총 298건 698명을 검거하고, 이 중 92명을 구속했다.

당시 경찰은 "단속 결과, 우려했던 국내 조직폭력배와 유사한 외국인 조직폭력단체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다만, 조직범죄로 오인할 수 있는 사례가 일부 확인되었다"고 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패거리폭력배(51건, 280명)의 경우 고향 선후배(38건, 74.5%)나 직장동료(10건, 19.6%)사이로 무리지어 다니다가 주취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싸움을 하거나..."

경찰이 말하는 외국인 패거리폭력배는 이런 뜻을 갖고 있다. '평소 공단 등에서 일하다가 본국 출신 선후배나 친구들끼리 외국인 밀집지역 등을 어울려 다니며 폭처법이 규정한 범죄를 범한 자들'이다. 이처럼 100일간의 집중 단속으로 인신매매와 장기밀매 등의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조직은 없다고 대한민국 경찰이 이미 밝힌 바 있지만, 우리 사회에 퍼진 편견은 단단하다.

 패거리폭력배 주요 검거사례 

- '15.1.20. 페이스북에 "폰 네아(변태 새끼)"라고 욕설을 한 것을 빌미로 흉기를 들고 상호 집단폭력을 행사한 스리랑카인 6명 검거 <인천청>

- '15.4.21. 여자친구가 전 남자친구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사실에 앙심을 품고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태국 국적 후배들과 전 남자친구를 찾아가 공동폭행하고"죽여버린다"며 식칼 칼날로 목을 치는 등 3주 상해를 가한 태국인 불법체류자 3명 검거(전원 구속) <경남청>


외국인 밀집지역은 치외법권지역이라는 편견

다부진 체격의 남자들이 팔굽혀펴기와 역도용 장갑을 끼고 쉐도우 복싱을 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짧게 깎은 머리와 어깨 근육을 푸는 모습이 마치 조폭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그들 중 몇몇이 은색 팔찌를 두 개씩 손에 들고 찰랑거리고 있지 않았다면 '깍두기'라고 하는 조직원들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현대판 추노'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난 수요일(8월 30일) 오전 OO출입국 후문에서 출동대기 중이던 법무부 공무원들이다. 긴장을 풀기 위한 요령이겠지만, 출동 대기 중이던 단속 단원들 모습은 일반적 사무직 공무원들과 사뭇 달라도 너무 달랐다. 미등록 외국인, 흔한 말로 불법체류자 단속을 나가기에 앞서 하루 일과를 다짐하듯 몸을 푸는 그들을 보면서 단속 중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날, 그들은 불법체류자가 있다는 어느 공장, 골목, 집안으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구로구 대림동을 비롯한 외국인과 중국동포 밀집 지역은 그들의 주 무대 중 한 곳이다. 영장없이도 어디든 들이닥친다. 차이나타운이라고 결코 치외법권 지역이 아니다. 대한민국 출입국 단속반이 못가는 곳은 없다.

또한, 앞서 외국인 밀집지역 100일간 집중 단속을 언급했던 것처럼 경찰은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대한민국에서의 범죄행위는 반드시 처벌받는다"고 천명하고 있다. 외국인이 관계된 사건이라도 끝까지 추적·검거한다는 것이 경찰의 원칙이다. 법이 외국인 밀집지역에 손을 뻗지 못한다는 건 편견이다.

중국동포한마음회, 귀한중국동포권익증진위원회 등 국내 중국동포 단체 회원들이 지난 8월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앞에서 영화 <청년경찰>에서 중국동포와 거주지역인 대림동을 비하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며 상영중단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대림동에서 외국인자율방범대원으로 활동하는 중국동포 여성이 피켓을 들고 중국동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영화상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중국동포한마음회, 귀한중국동포권익증진위원회 등 국내 중국동포 단체 회원들이 지난 8월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앞에서 영화 <청년경찰>에서 중국동포와 거주지역인 대림동을 비하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며 상영중단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대림동에서 외국인자율방범대원으로 활동하는 중국동포 여성이 피켓을 들고 중국동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영화상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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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도, 외국인도 아닌 경계인 '조선족'

영화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조선족'이라는 말에는 부정적이며 깔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좀 더 노골적으로 인종 혐오적인 의미를 담아 사용할 때도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시민단체들은 '중국동포'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한편, 오랜 기간 조선족 연구를 해 왔던 서울대 신혜란 교수는 중국동포는 한국인 중심의 표현이라며, 조선족을 깔보는 사람들 때문에 조선족을 조선족이라 부르지 못했던 과거가 있었음을 시킨다. 그래서 신 교수는 조선족이라는 용어를 쓴다. 반면, '조선족을 깔보는 사람들'은 다문화사회라고 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 색깔을 좀 더 분명히 하며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깔봄 당하는 조선족들이 영등포구 대림동에 자리 잡기 시작한 건 1992년 한·중 수교 이후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들어온 조선족들이 정착하면서 밀집 지역을 형성했다. 과거 1960~1970년대 '공돌이, 공순이'들이 살다 빠져나간 이 지역은 노후주택이 많았다. 주거비가 싼 빈 쪽방은 조선족들의 첫 정착지가 되어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그렇게 사람이 모여들면서 일자리 정보가 교환되고, 자연스레 상권이 형성되며 조선족 차이나타운으로 발전했다.

대림동을 비롯한 조선족 밀집 지역인 구로구는 올해 6월말 기준으로 전체 외국인이 1만 9190명으로 이는 구로구 인구(41만 4673)의 4.6%가 넘는다. 그중 중국동포는 1만 8446명(4.4%)이다. 그들은 구로구만이 아니라 이미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큰 축이 되고 있다.

신 교수는 "조선족은 우리의 미래일 수도 있다"며 그들이 지닌 잠재력, 가능성을 주목한다. 그는 조선족들이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가 유독 강하다고 말한다. 과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떠나고, 독일에 광부로 간호사로 떠났던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런데도 조선족들은 한국 땅에서 업신여김을 받고 있다. 그들은 엄연히 한글로 이름을 쓸 수 있는데도 외국인 등록증에 로마자로 이름을 적어야 한다. 조선족은 재외동포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닌 부류에 속해 있다. 경찰의 집중단속이 내국인 상권에서 100일간 지속되었다면 민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대상이 외국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선족들은 그동안 불법체류와 범죄자, 어차피 중국인이라는 낙인 속에 살아왔다. 조선족 밀집지역에도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다. 다문화사회라고 하는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도 아니요, 한국인도 아닌 애매한 존재들인 그들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과 일터가 있는 생활터전을, 영화에서 보듯 범죄 소굴로 함부로 말해서 안 되는 이유다.

한국 영화가 조선족들을 은밀한 범죄자에서 활개 치는 범죄 집단으로 그리는 동안 우리사회는 다문화사회로 나아갔다. 그러나 인식마저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사람과 생각, 정책이 이동하는 세계화와 함께했는지는 의문이다. 영화만 놓고 보면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태그:#청년경찰, #조선족, #중국동포, #편견, #조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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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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