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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남구의 인권 조례가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종교단체의 압박으로 개정될 위기에 처했다.

인천 남구(구청장 박우섭)는 지난해 6월 '남구 인권 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아래 인권조례)'를 제정했다. 인천지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제정된 이 인권조례는 인권이 존중되는 지역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남구 구민의 인권 보장과 증진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조례의 2조 '정의'를 보면, 인권이란 '국가인권위원회법 2조 1호에 따른 인권'을 말한다. 조례는 주요 내용으로 ▲인권 증진 정책 ▲인권위원회 구성·운영 ▲인권센터 설치·운영 ▲인권 영향평가 실시·권고 등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인천 지역 개신교 일부 관계자로 구성된 단체가 이 인권조례를 두고 "동성애를 조장하는 조례"라며 폐지를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 법을 따른 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종교단체가 이렇게 주장하자, 유중형 남구의회 의원이 지난 6월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인권조례 2조의 '인권이란 국가인권위원회법 2조 1호에 따른 인권을 말한다'를 '인권이란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장하거나 국제 인권조약과 국제 관습법에서 인정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말한다'로 고치는 안을 내놓은 것이다.

남구의회는 이 개정안이 무리가 있다고 보고 심사를 보류했다. 의견이 분분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 "개정안, 반인권적 선례 될 것"

조례개정 움직임이 계속되자 21일, 가톨릭환경연대·남구평화복지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인천지부 등 인천지역 35개 시민사회단체는 조례개정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단체들은 "남구의회가 일부 종교단체의 일방적 주장에 굴복해 형식과 내용에 맞지 않는 개정안으로 인권조례 본래의 취지와 정신을 호도한다면, 인천 지자체 중 최초로 제정한 인권조례의 자랑스러운 업적보다 인권이 후퇴하는 반인권적 선례가 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또 "헌법정신에 따라 장애인·여성·노인·어린이를 비롯해 성적 소수자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존엄한 존재임을 인정받아야 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도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일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도 '차별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인권조례의 상위법인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제외한다면 향후 남구의 인권 상담과 구제활동을 포함한 각종 인권 옹호활동 전개 시 구체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을 스스로 포기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국가인권위가 최근 남구와 남구의회 사무국에 회신한 공문을 보면, 국가인권위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인간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기본적 인권에 해당하고, 국가와 지자체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 때문에 발생하는 인권 침해를 막아야할 의무가 있다"고 답했다.

또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 조항이 포함돼있다는 이유로 인권조례를 개정하거나 폐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이나 '법률에서 보장하거나'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 "조례 개정이나 폐지, 바람직하지 않아"

이에 대해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유중형 의원은 22일 <시사인천>과 한 전화통화에서 "개신교 목사님들이 많이 문제제기했는데 압박까지 보기는 그렇고, 수개월에 걸쳐 토론을 진행해 절충한 것이 개정안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이로 인해 아이들에게 동성애가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줘 조장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타당성이 있다. 개정안이 (심사) 보류 중인데, 9월 초에 행정자치부에서 답변이 오면 그 내용을 보고 개정안을 추진하든지 폐기하든지 결정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인천시는 전국 17개 광역단체 중 유일하게 인권조례가 없다. 지난해 9월 시의회 본회의에 '인천시 인권 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안'이 상정됐으나, 개신교 일부 단체의 반발과 압박 이후 표결에서 반대표가 더 많이 나와 부결됐다.

또한, 지난해 12월에 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 소속 박병만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인천시 청소년 노동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안'도 개신교 일부 단체의 반발과 압박 이후 심사가 보류됐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http://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인권 조례, #인천 남구, #인천 남구의회, #개신교, #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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