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형렬, 복잡한 인물 양치성이 되다 지난 7월 27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아리랑> 프레스콜 현장. '양치성' 역의 배우 윤형렬이 열연하고 있다. 양치성은 송진사 댁에서 머슴살이하던 인물로, 동학군을 밀고하던 아버지가 사망한 뒤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비관하여 친일파로 돌아서는 인물이다.

▲ 배우 윤형렬, 복잡한 인물 양치성이 되다 지난 7월 27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아리랑> 프레스콜 현장. '양치성' 역의 배우 윤형렬이 열연하고 있다. 양치성은 송진사 댁에서 머슴살이하던 인물로, 동학군을 밀고하던 아버지가 사망한 뒤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비관하여 친일파로 돌아서는 인물이다. ⓒ 곽우신


뮤지컬 배우 윤형렬이 다시 무대에 섰다. 작년 <페스트> 이후, 약 9개월 만에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것. 오랜만에 선 무대에서 윤형렬은 그동안 뿜어내지 못한 감정을 원 없이 풀고 있다. 바로 <아리랑>이라는 작품에서 말이다.

<아리랑>은 조정래의 대하소설을 뮤지컬화 한 작품이다. 침략부터 해방기까지 방대한 이야기를 다뤘던 원작과 달리 뮤지컬은 1920년대 말까지로 시간을 한정했으며, 감골댁 가족사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윤형렬은 극 중 양치성 역할을 맡았다. 양치성은 양반인 송수익의 몸종으로, 열등감을 갖고 살다가, 아버지가 의병에 의해 살해된 것을 알고 친일파가 되는 인물이다.

양치성으로 무대에 오른 윤형렬의 분위기는 최근에 맡았던 <페스트>의 랑베르,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리스월드와 사뭇 다르다. 역할도 역할이지만, <페스트> 이후 피 같은 땀을 흘리며 준비했던 작품 <록키>가 관객들을 만나지 못한 여파도 빼놓을 수 없으리라. 덕분에 윤형렬은 더욱 단단해졌다. 10년 넘게 오른 무대지만, 소중함과 간절함을 절감하면서 감정을 담은 넘버의 농도는 더욱 짙어지고, 연기력에는 꽃이 피었다.

"그동안 대학원 논문도 쓰고, 나름 뜻깊은 시간을 보냈어요. 약 9개월 만에 첫 공연을 했는데 너무 떨리기도 하고, '내가 이걸 할 수 있나'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왠지 자존감도 낮아진 것 같고(웃음). 내가 10년 동안 오르던 무대인데, '이게 맞나?' 싶은 부분도 생기더라고요."

매일 오르는 무대도 긴장의 연속이건만, 오랜만에 오르는 무대의 긴장은 배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 게다가 그동안 쌓아둔 '윤형렬의 무대'를 향한 관객들의 기대가 있기 때문에 그의 '떨림'은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나 첫 무대에 오르는 순간 모든 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픈하고 탄력 붙으니 달라졌죠. '이런 거였지'라는 감정이 밀려오면서 감격스럽더라고요. 원래 제 자리를 찾은 감정이었죠. 첫 공연은 울컥 그 자체였어요. 작품이 갖는 색과 더불어 감정이 고조됐죠."

배우 윤형렬 인터뷰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내 카페에서 진행됐다.

'연기 꽃이 피었다'

배우 윤형렬, 복잡한 인물 양치성이 되다 지난 7월 27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아리랑> 프레스콜 현장. '양치성' 역의 배우 윤형렬이 열연하고 있다. 양치성은 송진사 댁에서 머슴살이하던 인물로, 동학군을 밀고하던 아버지가 사망한 뒤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비관하여 친일파로 돌아서는 인물이다.

ⓒ 곽우신


배우 윤형렬, 복잡한 인물 양치성이 되다 지난 7월 27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아리랑> 프레스콜 현장. '양치성' 역의 배우 윤형렬이 열연하고 있다. 양치성은 송진사 댁에서 머슴살이하던 인물로, 동학군을 밀고하던 아버지가 사망한 뒤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비관하여 친일파로 돌아서는 인물이다.

▲ 노래에 연기를 더하다 깊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자신만의 매력을 더했던 윤형렬. 이번 <아리랑>에서는 연기력에서도 꽃을 피운 느낌이다. ⓒ 곽우신


윤형렬의 가창력은 이미 입증됐다. 앞서 출연한 <노트르담 드 파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모차르트> <마리 앙투아네트> 등 작품에서 그는 깊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 그가 <아리랑>을 통해서는 연기에 힘을 더했다. '연기 꽃이 피었다'라는 표현에 윤형렬은 "연출님을 잘 만났다"라고 웃어 보였다.

"고선웅 연출님은 연기했던 분이라 작품을 준비하면서도 연기적으로 지도를 해 깨달은 부분이 많아요. 같은 내용을 봐도 바라보는 관점은 각자 다를 수도 있잖아요. 근데 연출님의 디렉션은 보는 순간 '아!'하고 깨닫게 돼요. '이렇게 해봐!' 하면 '유레카!'하게 되는 거죠(웃음). 돈 주고도 못 배우는 시간이었어요. 연습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죠."

또, 그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대본에 대한 만족도 아끼지 않았다.

"대본이 굉장히 촘촘해요. 덕분에 장면 해석에 대해 헷갈리게 하는 부분이 없어 감정, 표현을 어떻게 할지 애매한 지점이 없었죠.

모든 배우의 대사에 군더더기가 없어요. 간혹 대사에 살을 붙이는 배우도 있는데, '아리랑'은 모두가 꾸밈없이 '할 말만' 해요. 무대에서 억지스럽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 보여주니 효과가 배가 되는 거죠. 배우들이 직구만 던지는 셈이죠."

연출뿐 아니라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의 영향도 많이 받고 있다. 윤형렬은 "10년 동안 작품이라면서 좋은 사람들 다 만난 거 같아요. (초연부터 양치성을 분하는) 김우형도 정말 많이 알려줬어요. 사투리를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는데 김우형의 사투리는 본토라, 한 번만 들어도 감이 딱 잡히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배우 윤형렬, 복잡한 인물 양치성이 되다 지난 7월 27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아리랑> 프레스콜 현장. '양치성' 역의 배우 윤형렬이 열연하고 있다. 양치성은 송진사 댁에서 머슴살이하던 인물로, 동학군을 밀고하던 아버지가 사망한 뒤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비관하여 친일파로 돌아서는 인물이다.

▲ 아의 아리아 프레스콜 현장에서 방수국 역의 배우 박지연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윤형렬. 양치성은 방수국을 사모하여, 그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하지만 사실 그 위기 중 상당수는 수국이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의지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 곽우신


앞서 <노트르담 드 파리>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호흡을 맞춘 윤공주와, <아리랑>에서 처음 만난 박지연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윤공주는 집중력이 대단해요. 작품에 녹아든 모습으로 상대방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죠. 한순간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더라고요. 덕분에 함께하면 분위기까지 고무되죠. 박지연은 여리고 가녀려서 더 와 닿는 감정이 있어요. 윤공주가 '억척스러운' 부분이 있어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함께 연기해도 외로울 때가 많은데 두 분 모두 제가 '혼자 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안 들게 해줘요. 진짜 살아있는 배우들인 거죠."

<아리랑>, 배우 한 명이 아니라 전체가 보이는 작품

<아리랑>은 등장하는 배우들은 많지만, 대본의 담백함과 배우들의 호연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게 한다. 방대한 이야기를 담은 원작 스토리를 재편했지만,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재탄생해도 이질적이지 않은 이유다.

"무대에서 꼭 배우 한 명만 보이는 게 아니라 전체가 보이는 힘이 있어요. <레미제라블> 이후로 작품을 보고 '저 배우들은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어요."

게다가 등장인물 각자가 지닌 사연으로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가 완성됐다. 빚 20원에 아들을 하와이로 역부로 팔려가게 할 수밖에 없었던 감골댁, 만주로 가 독립군을 이끌게 되는 송수익, 일본 앞잡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받는 수익과 옥비, 몸종에서 친일파가 될 수밖에 없었던 치성 등, 모두가 더없이 안타까울 뿐이다.

"극 중 가장 안타까운 인물이요? 양치성 아닐까요. 모든 인물이 안타깝긴 하지만 치성은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던 인물이니까요. 한국과 일본에 버림받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도 얻지 못하죠. 감골댁을 해치는 장면에서는 저 역시 '용서받지 못할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인들도 공연을 본 뒤 '잘하긴 한다. 근데 진짜 재수 없다'라고 하고요. 마지막에 제가 인질로 잡히는 장면에서는 객석에서 헛웃음이 나오긴 해요. '여기서 나만 혼자다'라는 생각이 들죠. 덕분에 커튼콜 때도 외로워요(웃음). 제 등장 전까지는 뜨거운 박수가 나오는데 제가 등장하면 관객분들이 한 박자 참았다가 박수를 쳐주시더라고요. 환호해 주시는 분위기도 아니고요. (웃음)"

배우 윤형렬, 복잡한 인물 양치성이 되다 지난 7월 27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아리랑> 프레스콜 현장. '양치성' 역의 배우 윤형렬이 열연하고 있다. 양치성은 송진사 댁에서 머슴살이하던 인물로, 동학군을 밀고하던 아버지가 사망한 뒤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비관하여 친일파로 돌아서는 인물이다.

▲ 다른 길 송수익(서범석)은 양치성과 정반대에서 대치하는 인물이다. 올곧은 양반 송수익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앞장서서 분투한다. 그리고 치성에게 '너는 조선의 아들'이라고 말하며 설득한다. 양치성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 곽우신


방대한 이야기가 무대화되는 과정은, 재편이 됐음에도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양치성이라는 인물에게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의 선택과 결정 과정에서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도 그렇다.

"아버지도 조선인에게 버림받고, 치성이 친일파가 되는 과정에서, 스토리가 있을 텐데 흑화만 돼 좀 아쉬워요. 송수익은 너무 착한 인물이고, 잘해주는데 양치성은 뭐가 억울할까,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하지만 역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아리랑>의 '애이불비(哀而不悲)' 정서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윤형렬은 <아리랑>에 대해 "한국인이 봐야 한다" "한국인의 DNA를 가진 모든 이가 공감할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잖아요. 초연 때 이 작품을 봤는데 '신 아리랑' 부르는 장면에서 울컥울컥하더라고요. 두 번째 볼 때는 첫 장면부터 눈물이 막 났어요. 세상 밝은 표정을 짓는 감골댁의 처한 상황 등을 다시 보니 말이죠. 그런 분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골댁이 하는 말 중에 '참으면 참아진다'라는 대사가 있어요. 우리 어른들이 살아왔던 삶을 잘 표현한 거 같아 너무 슬프더라고요. '상여 타고 장가간다'라는 부분도요. 너무 슬퍼서 엄청 울었어요.

양치성의 전사를 나타내는 곡 '궁지'에 '인자 보이제. 살라니까 보이제'라는 가사가 와 닿아요. 머슴살이를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닌데, 치성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려고 하니까 이제 뭔가 보이는 거죠."

"뮤지컬 무대가 서고 싶었어요"

배우 윤형렬, 복잡한 인물 양치성이 되다 지난 7월 27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아리랑> 프레스콜 현장. '양치성' 역의 배우 윤형렬이 열연하고 있다. 양치성은 송진사 댁에서 머슴살이하던 인물로, 동학군을 밀고하던 아버지가 사망한 뒤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비관하여 친일파로 돌아서는 인물이다.

▲ 배우 윤형렬, 복잡한 인물 양치성이 되다 지난 7월 27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아리랑> 프레스콜 현장. '양치성' 역의 배우 윤형렬이 열연하고 있다. 양치성은 송진사 댁에서 머슴살이하던 인물로, 동학군을 밀고하던 아버지가 사망한 뒤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비관하여 친일파로 돌아서는 인물이다. ⓒ 곽우신


<아리랑>으로 다시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 윤형렬. 무대에 오르지 않았던 기간 역시 콘서트 등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긴 했지만, 역시 그의 귀결점은 뮤지컬 무대였다.

"콘서트 말고 뮤지컬 무대가 하고 싶었어요(웃음). <아리랑>을 통해 덜어내는 연기를 배웠어요. 자신도 생겼고요. 감추기 위해 변화구를 던지는 게 아니라, 직구를 던져도 감동을 줄 수 있구나, 알게 됐죠. 작품은 같지만, 무대에 오를 때마다 감회는 매번 다르거든요. 매번 너무 설레고 기대돼요. 게다가 몇 개월 쉬고 나서 오르는 무대라 더 남달라졌어요. 그토록 서고 싶었던 무대였으니까요. 이제 제 존재의 이유 같아요."


윤형렬 양치성 곰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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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문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연극, 뮤지컬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전해드릴게요~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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