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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가 아니어도 우리말을 넉넉히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말을 쓰는 사람 누구나 새로운 말을 곱게 지을 수 있습니다. 아직 우리말 사전에 오르지 못한 낱말을 놓고서, 또는 사전에 실렸으나 아직 쓰임새를 넓게 다루지 않는 낱말을 놓고서, 뜻풀이하고 보기글을 새롭게 붙여 보려 합니다. 말 한 마디를 즐겁게 쓰면서 너른 이야기를 고루 나누는 새로운 말살림을 함께 북돋우면 좋겠습니다. (글쓴이 말)

ㄱ. 밀당

비가 오니 비가 그칩니다. 해가 뜨니 해가 집니다. 잠에서 깨어나니 잠을 잡니다. 삶을 바라보면 한 가지만 흐르는 일이란 없어요. 두 가지가 늘 사이좋게 맞물려요. 비만 오거나 비가 안 오기만 하다면 괴로워요. 해가 내내 뜨거나 내내 안 뜨면 고달프지요. 잠만 자거나 잠을 안 자도 힘들 테고요.

오르니 내립니다. 내리니 오르고요. 가니까 오고, 오니까 와요. 이처럼 한때에는 밀다가 한때에는 당깁니다.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재미납니다. 슬그머니 밀다가 살그마니 당기면서 웃음이 피어나요. 좋아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도 밀고 당기지만, 글이나 영화에서도 밀고 당기듯이 줄거리가 흘러요.

개구진 아이들은 한창 신나게 뛰놀다가 한동안 조용히 쉬어요. 사람이 살며 느끼거나 누리는 '밀고 당기기'를 '밀당'이라는 짧은 말마디로 간추립니다. '밀당'은 '밀당하다'로 써 볼 수 있겠지요. 거꾸로 '당밀·당밀하다'로 써 보아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누구는 밀당이나 당밀을 안 하고 '밀밀'이나 '당당'만 할는지 몰라요. 밀기만 해서는 힘들고, 당기기만 해서는 고단할 텐데요. 알맞게 밀고 당기면서 새롭게 이야기를 짓습니다.

[밀당 (밀당하다)]
1. 밀고 당기다
* 서로 밀당하면서 주고받기만 한다
* 밀당을 하듯이 글을 써 볼 수 있어
2. 밀고 당기듯이 움직이다. 누구를 좋아하는 듯이 굴다가도, 그 사람을 안 좋아하는 듯이 구는 모습을 가리킨다. 오락가락하도록 굴면서 맞은쪽 마음을 움직이려고 하는 몸짓이다
* 저 둘은 밀당을 하더니 가까워졌네
* 밀당은 그만하고 속마음을 털어놓지


우리는 어떤 꽃길을 걸을까요? 눈부신 꽃이 핀 길을? 나락이 노랗게 익는 길을? 어느 길이든 아름다운 꽃길을 걸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어떤 꽃길을 걸을까요? 눈부신 꽃이 핀 길을? 나락이 노랗게 익는 길을? 어느 길이든 아름다운 꽃길을 걸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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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꽃길

꽃으로 꾸민 길을 걸으면 마음이며 몸에 환한 기운이 돕니다. 그저 들꽃 몇 송이가 핀 꽃길이어도 즐겁게 웃음을 지을 만합니다. 꽃이 핀 골목을 거닐면서 골목마을이 참 곱다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골목 귀퉁이에 꽃을 심은 이웃 손길이 곱고, 조용한 골목 한켠에서 씩씩하게 고개를 내미는 꽃송이가 고와요.

꽃은 씨앗이면서 열매입니다. 꽃은 새로운 씨앗이나 열매를 맺으려고 피는 숨결입니다. 꽃은 이제껏 뿌리랑 줄기랑 잎으로 받아들인 빗물이며 바람이며 흙 기운이 알뜰히 모여서 태어나는 꿈입니다. 이러한 꽃을 눈으로 보고 코로 맡으며 손으로 느끼면 무척 산뜻할 테지요.

우리는 꽃길을 걷습니다. 꽃이 핀 길을 걸을 뿐 아니라, 앞으로 밝게 피어날 길을 걷습니다. 어제까지는 고단하거나 메마른 길을 걸었을는지 모르나, 오늘부터는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밝은 길을 걷습니다. 사랑스러운 길을 걸어요. 신나는 길을 걸어요. 숱한 들꽃과 멧꽃과 숲꽃과 골목꽃과 마을꽃이 어우러진 멋진 길을 걸어요.

우리한테 좋은 일이 생기고, 이웃하고 동무한테도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길입니다. 꿋꿋하게 흘린 땀방울이 꽃 한 송이를 피우는 살뜰한 거름이 되리라 생각해요. 씩씩하게 쏟은 땀방울은 빗물처럼 꽃송이를 깨워서 조촐한 꽃길을 이룹니다.

[꽃길]
1. 꽃이 핀 길. 꽃으로 꾸민 길
* 꽃길을 걸으니 마음이 환하다
* 할머니가 가꾼 꽃길이에요
2. 앞으로 밝게 이어지는 길.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기는 길. 어려움이 끝나고 기쁜 열매를 맺는 삶을 누리는 길
* 이제부터 꽃길을 걸으시기를 바라요
* 그동안 흘린 땀은 꽃길로 돌아온단다


저희 집 뒷밭에서 돋는 흰민들레. 해마다 흰꽃을 잔뜩 피우고 씨앗도 잔뜩 맺습니다. 이 씨앗도 곰곰이 따지면 오랜 '텃민들레'일 테니 '텃씨'를 베풀어 주겠지요.
 저희 집 뒷밭에서 돋는 흰민들레. 해마다 흰꽃을 잔뜩 피우고 씨앗도 잔뜩 맺습니다. 이 씨앗도 곰곰이 따지면 오랜 '텃민들레'일 테니 '텃씨'를 베풀어 주겠지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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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 텃씨, 텃사람, 텃말, 텃집, 텃꽃 ...

고장마다 날씨가 달라요. 땅하고 냇물하고 멧줄기도 모두 다르고요. 그래서 고장마다 오랜 옛날부터 심어서 가꾸고 갈무리한 씨앗이 있습니다. 이 씨앗은 천 해나 만 해를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되었다고 해요. 그 고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몸에 맞는 씨앗이면서, 그 고장 날씨나 철하고 어울리는 씨앗이랍니다.

누구나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땅에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씨앗을 심으며 살았기에, 예전에는 이 오랜 씨앗을 두고 다른 이름을 안 붙였어요. 오늘날에 이르러 다국적기업이나 농협에서 씨앗을 다스리다 보니, '토종(土種) 씨앗' 같은 이름을 따로 붙입니다.

그런데 '토종'이란 '흙/땅/터(土) + 씨앗/씨(種)' 얼거리예요. 한자말 '토종'은 바로 씨앗을 가리킵니다. '토종 씨앗'이나 '토종 종자(種子)'라고 하면 얄궂은 겹말이에요.

곰곰이 생각하면 어느 한 곳에 눌러앉는 새를 가리키는 '텃새' 같은 말이 있어요. '텃(터 + ㅅ) + 새'라는 얼개를 헤아려 '텃 + 씨'나 '텃 + 사람' 같은 새 낱말을 지을 만해요. 오랜 옛날부터 한 곳에 심어서 돌보거나 갈무리한 씨앗이기에 '텃씨'요, 오랜 옛날부터 한 곳에 보금자리를 이루어 살아온 사람이기에 '텃사람'입니다.

텃사람이 쓰는 말이라면 '텃말'이 될 테지요? 어느 고장에서 오래된 집이나 마을이라면 '텃집·텃마을'이 될 테고요.

[텃씨]
: 어느 한 고장이나 마을이나 나라에서 오랫동안 나는 씨앗
* 들깨 텃씨를 얻어서 텃밭에 뿌렸어요
* 텃씨는 씨앗을 받아서 이듬해에 심을 수 있지요
* 이 땅을 가꾸며 텃씨를 지켜 온 할아버지
[텃사람]
: 어느 한 고장이나 마을이나 나라에서 오랫동안 산 사람
* 텃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텃힘을 부리지는 않아
* 우리 마을 텃사람인 할머니를 만나서 텃말을 들었어요
[텃말]
: 어느 한 고장이나 마을이나 나라에서 오랫동안 쓰는 말
* 너는 제주 텃말을 쓰고, 나는 담양 텃말을 쓰지
* 할머니가 쓰는 텃말은 구수하고 감칠맛 나요
[텃집]
: 어느 한 고장이나 마을이나 나라에서 오랫동안 살림을 이어온 집 ('전통 가옥'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멋진 텃집은 자그마치 오백 해가 되었다는구나
* 아름다운 텃집이 모인 포근한 마을입니다
[텃꽃]
: 어느 한 고장이나 마을이나 나라에서 오랫동안 자란 꽃
* 흰민들레는 우리 텃꽃입니다
* 이 작은 제비꽃도 봄바람 타고 피는 텃꽃이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태그:#우리말 사전, #국어사전, #우리말 살려쓰기, #우리말, #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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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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