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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치적인 행동을 극도로 자제하던 사람이에요.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도 아무 행위 안 했어요. 아니 못 했어요. 개인 사업에 방해될까봐요. 자영업을 하는 이원구 또는 이모씨... 이 정도로 소개해 주시면 안 될까요?"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가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기를 바라며 이원구씨가 직접 만든 파우치가 쌓여있다.
▲ 이원구씨가 만든 파우치 100개 중 일부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가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기를 바라며 이원구씨가 직접 만든 파우치가 쌓여있다.
ⓒ 이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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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 사는 평범한 가장 이원구씨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둔 16일부터 선물을 돌리기 시작했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기념하는 파우치(화장품을 담을 수 있는 작은 가방)가 바로 그것이었다.

파우치에는 '이니'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별명과 19대 대통령 선거일인 '17.5.9'이 새겨져 있었다. 아주 꼼꼼한 재봉질 솜씨로.

"사실 저는 박근혜.최순실 사태 때까지도 아무 것도 안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계엄 선포된다는 소문을 듣고 촛불 집회에 간 우리 딸들이 걱정되었죠. 그래서 저도 처음 따라 갔어요. "

공구판매와 관련된 자영업을 하는 이원구씨는 두 딸과 아내와 함께 수원에 살며, 평촌으로 출퇴근한다. 고려사 조선사를 좋아해서 관련 책을 많이 읽는다는 그는 올해 지천명인 50세다.

파우치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별명 '이니'와 촛불 혁명으로 만들어진 선거일이 재봉질로 크게 새겨졌다.
▲ 파우치에 새겨진 '이니'와 '2017년 5월 9일' 파우치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별명 '이니'와 촛불 혁명으로 만들어진 선거일이 재봉질로 크게 새겨졌다.
ⓒ 강봉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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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세월호 가족들을 뵙고 충격 먹었어요. 정말 그럴 줄 몰랐어요. 곧 바로 후원회원 가입하고 그 뒤로 촛불 집회에 계속 갔어요."

- 촛불을 들며 무엇을 바라셨습니까?
"우리 딸들이 사는 세상은 제발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촛불을 들었어요. 부정선거가 염려되어서 감시단 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정작 '시민의 눈' 회원 가입은 못 했어요. 개인 사업에 방해가 될까봐요. 그냥 객원 회원으로 남은 셈이죠."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장 바랐던 건 적폐 청산을 통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 분이 진행하는 걸 보고, 힘을 보태주고 싶었어요. 정말 간절히. 그래서 생각해낸 아이템이 '이니 파우치'예요."

"파우치는 여성분들에게 꽤 실용적인 아이템이죠. 거기에 '이니' 와 '17.5.9' 를 새기고, 100일 동안 100개를 만들자 맘먹고,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으로 글씨를 새기고 파우치를 만들었어요."

이원구씨는 평소 아는 지인들에게 파우치를 돌리며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 선물받은 파우치안에 들어있는 과자 이원구씨는 평소 아는 지인들에게 파우치를 돌리며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 강봉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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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귀한 선물을 누가 받았을까요?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대부분 여성분들이죠. 지인들 모두에게 두루두루 돌렸어요. 취미로 배운 미싱이에요. 사람들이 이니가 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파우치를 만든 의미도 설명하고 전달해 주었어요. 대부분 아주 좋아라 했습니다."

"더 많이 만들면 희소성이 떨어질 수 있어, 딱 100개 만들고 끝냈어요. 첨에는 돌릴 곳이 없어서 장안구 시민의 눈 회원들에게 10개씩 주고 끝낼까 생각했었는데, 받으시는 분들이 주변에 선물한다고 더 만들어 달라고 해서, 광명시 시민의 눈 회원 분들에게 먼저 10개 드렸죠. 근데 반응이 뜨거워 30개나 더 드렸어요. 그 분들이 가장 많이 받아갔어요."

"청주에 사는 지인에게도 주었더니 모임 회원들에게 의미 설명하면서 선물하니 좋아라 했답니다. 전라도 광주의 지인을 만나서 조심스럽게 의미 설명하고 전달했죠. 아무래도 광주가 국민의당이 강세였던 곳이라 혹시 몰라 조심스럽게 전했는데 자기는 문재인 찍었다고 엄청 좋아하더라구요."

"정읍에 사는 지인도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문재인 싫어하는데, 자기는 좋다고 하면서 받아다가 동네 사람들에게까지 돌렸답니다. 파우치 이쁘다고 다들 좋아했대요. 그런데 이니 글씨를 작게 썼으면 더 좋겠다고... 하하. 문재인 극도로 싫어하는 분에게도 선물했어요. 저의 간절한 염원을 설명하면서."

이원구씨는 취미로 배운 재봉질로 화장품을 담아쓰는 파우치를 만들었다.
▲ 꼼꼼한 재봉질로 만들어진 파우치 이원구씨는 취미로 배운 재봉질로 화장품을 담아쓰는 파우치를 만들었다.
ⓒ 강봉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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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파우치 만드는 비용은 원단 비용과 기타 비용 합쳐서 20만 원 안팎이었어요. 시간이 많이 들어서 힘들었지요. 광복절에 마지막 작업이 끝났는데, 제가 16일이 100일인 줄 알고 마지막 날 아주 개고생을 했어요. 근데 다 만들고 보니 하루 여유가 있었더라구요."

- 이 정성이면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 말씀하셔도 될 거 같은데요?
"대통령께 당부하고 싶은 말은 좌고우면(左顧右眄, 이것저것 눈치만 살핌)하지 말고, 기득권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적폐를 지속적으로 정리해 나가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우리 딸들에게 보여 달라는 거예요."

"파우치는 간절한 기도였어요. 시민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쓰레기가 되어버린 언론에 휘둘리지 않게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출근하면 포털에 들어가 기사 보고 댓들을 달아요. 그 전에는 안 했던 일이죠. 트위터와 페이스북 리트윗과 공유도 부지런히 하구요."

문재인 대통령 당선후 이원구씨가 돌린 수제 맥주
▲ 문라이트 비어 (MOON Light Beer) 문재인 대통령 당선후 이원구씨가 돌린 수제 맥주
ⓒ 강봉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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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지인들에게 직접 만든 수제맥주를 돌리며 기쁨을 나누었었다.

- 정말 재주도 많으시고 부지런하십니다. 뭔가 더 꿈꾸는 게 있을 거 같은데요.
"우리 수원시 장안 시민의 눈 회원들과 함께 장안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어요. 우리 동네 구, 시의원들도 일 잘하는지 챙겨보는 일을 함께 하고 싶어요. 그동안 나만을 위해서 살았던 거 같아요."

"깨어있는 시민들의 모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의 힘은 작잖아요. 조금씩 정치에 관심을 가져서 국회의원에게 잘한 거 칭찬하고 못한 거 질책하고 그래야죠. 그렇잖아도 우리 동네 국회의원인 이찬열 의원과도 소통하고 있는데 직접 만나 보고 그래야겠어요. 지난 겨울 촛불을 들며 절실히 느꼈던 거예요."

"역사 책을 계속 보고 있어요. 공민왕의 개혁이 실패한 이유, 고려가 망한 이유. 또 연산군을 몰아내고도 중종이라는 이상한 왕으로 기득권이 계속 살아남은 이유는 잠시 방심하면 기득권들이 다시 거세게 일어나 도전했기 때문이에요.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더라구요."

19대 대선에서 부정선거 불안감이 일었던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투표소와 투표함 보관소, 개표 현장까지 직접 현장에 나가 투표를 감시했다.
▲ 19대 대통령 선거, 장안구 개표가 진행되었던 수원시 종합 체육관 19대 대선에서 부정선거 불안감이 일었던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투표소와 투표함 보관소, 개표 현장까지 직접 현장에 나가 투표를 감시했다.
ⓒ 강봉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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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사진을 싣고 싶은데 허락 안 될까요?
"우리같은 개인 사업자들은 세무조사 한 번 나오면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정권이 바뀌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이명박근혜 정부를 지나면서 이런 류의 자기 검열이 더 심해졌어요. 사진은 곤란해요. 혹여나 잘못되면 먹고 사는 문제가 심난해질 거 같아 두렵거든요."

촛불 혁명 정부 출범 100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어낸 시민들의 생각도 다 이원구씨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태그:#이원구, #문재인 대통령 100일, #파우치, #시민의 눈, #장안구 시민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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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은 필연적으로 무섭거나 치욕적인 일들을 겪는다. 그 경험은 겹겹이 쌓여 그가 위대한 인간으로 자라는 것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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