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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다저랬다 하다가 혼자 삐지는 사람을 일컬어 제주에서는 "이래착저래착 벨착"한다고 말한다. 벌써 몇 번짼지 모르겠다. 7년 8개월 일한 공장에서 무릎을 다쳐 수술한 알럼은 요즘 '이래착저래착' 한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러다가 마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벨착'하고는 말을 않는다.

알럼은 8년 전 부푼 꿈을 안고 처음 한국에 왔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4년 10개월을 유리 공장에서 일하고 재입국해서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공장에서 알럼보다 더 오래 일한 직원은 아무도 없다. 하루 12시간, 주 6일 근무하는 작업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한국인들은 고작 몇 달 일하다 그만두곤 했다.

오래 일한다고 월급이 더 오르는 것도 아니라 외국인들도 1년 이상 일하려 들지 않았다. 월급은 매해 정확하게 최저임금 오르는 만큼만 올랐다. 직원들의 잦은 이직으로 골머리를 앓는 공장에서 알럼은 사장의 인정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 무릎 연골 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은 알럼은 사장과 크게 틀어졌다.

알럼은 지난달부터 무릎에 부기와 함께 통증이 심해지면서 한방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기는 빠지지 않고, 앉고 일어설 때마다 전기가 통하는 것 같고 무릎에 뭔가 찬 것 같은 불편함 때문에 정형외과에서 MRI 촬영 등의 진료를 받았다. 그 결과 연골 파열이라는 것을 알았다. 의사는 근섬유가 손상되어 더 심해지기 전에 절개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알럼을 병원에 데리고 갔던 사장도 산재신청을 하지 않으면 병원비 일부를 보태주겠다면서 수술하라고 권했다.

알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연골파열 원인이 공장에서 8년 가까이 죽어라고 일한 결과라는 건 사장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유리 운반에 지게차를 이용하는 다른 공장과 달리 알럼은 매일같이 손수레를 이용해서 운반했다. 한 번에 100킬로 넘는 물건을 1200도가 넘는 가마 옆에서 끄는 작업은 제 아무리 건장한 장정이라 해도 숨을 헐떡거릴 수밖에 없게 한다.

유리를 녹이는 공장 안은 한 겨울에도 찜통이고, 여름엔 숨을 쉬기도 버거운 곳이다. 게다가 그 안에서 30킬로들이 포대에 들어 있는 재료를 도가니에 붓는 작업을 하루 종일 반복하다 보면 병이 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연골파열이 그곳에서 무거운 물건을 나르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한 결과라는 것쯤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사장은 눈 가리고 아웅 하려고 했다.

"백만 원 줄게. 어디 가서 회사에서 일하다 그렇게 됐다고 말하지 마."
"수술 받고 쉬는 동안은요? 일 못하고 집에 가야 된다고 하면요?"
"그러니까 백만 원 준다는 거 아냐. 직원 수술하는 데 돈 보태주는 회사 없어. 나니까 준다는 거야."

알럼은 지난 7년 8개월 동안, 일 년이 지날 때마다 최저임금 오르는 걸 월급 올려주는 걸로 알고 묵묵히 일했다. 하루 종일 땀범벅이 되고 파김치가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일했던 알럼이 산재신청을 하려고 하자 사장은 안 된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회사를 그만둘 때마다 사장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짠돌이!" 짠내 풀풀 나는 사장은 최저임금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입에 거품을 물고 쌍욕을 하는 사람이다.

무릎 수술을 받기 전에 알럼은 사장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수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산재 신청을 해 주지 않는다는 말에 이주노동자쉼터 도움을 얻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기로 했다. 수술은 의외로 간단했고, 회복도 빨랐다. 의사 선생님은 일주일 내로 걷는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하며 수술이 잘 됐음을 알려줬다.

산재로 치료받기를 원했던 알럼은 수술 후에 생각이 바뀌었다. 사장이 병상에 누워있는 알럼을 직접 찾아와서 병원비를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병원비는 의료보험이 되는 덕택에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번거롭게 산재 신청까지 할 게 없다는 사장의 말에 알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사장은 알럼이 퇴원하는 날 나타나지 않았다. 알럼은 급하게 친구 도움을 얻어 병원비를 지불했다. 사장은 약속했던 병원비를 줄 수 없다고 알려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술한 무릎이 다시 악화될 것을 우려한 알럼이 이직에 동의해 줄 것을 사장에게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사장과는 그렇게 다시 틀어졌다. 알럼은 다시 산재 신청을 하겠다고 이주노동자쉼터에 알렸다.

사장은 "산재 신청을 하든 말든 알아서 해 봐라. 그런다고 그걸 인정해 줄 거라고 누가 말하더냐!"며 영원히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처럼 불같이 화를 냈다. 사장 성격이 다혈질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알럼은 그게 사장의 진심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숙련기능인력 점수제 비자(E-7-4)가 뭐길래

8월 1일부터 법무부의 숙련기능인력 점수제 비자 신설 시행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한국어교실
▲ 이주노동자 한국어교실 8월 1일부터 법무부의 숙련기능인력 점수제 비자 신설 시행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한국어교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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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하고 얼마 안 되어 산재 승인도 못 받고 근무처도 변경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던 알럼의 속내를 꿰뚫어보듯 사장이 연락해 왔다. 알럼은 사장을 못미더워하면서도 그를 만났다. 사장은 산재 신청을 포기하면 '외국인 숙련기능인력 점수제 비자(E-7-4)'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알럼은 E-7-4 비자가 어떤 비잔지 잘 알고 있었다. 주조, 금형, 용접 등 뿌리산업과 농림축산어업 등 업종의 숙련기능인력 확보를 위해 8월부터 법무부가 신설 시행하는 비자다.

주조, 용접, 농업, 어업 등의 경우 경제를 유지하는 중요한 산업분야임에도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이런 업종들은 고용허가제 등을 통한 비숙련 외국인력을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이들 외국인력이 어느 정도 숙련도를 갖추게 되면 비자만기로 본국으로 귀국해야 한다. 그래서 산업현장에서는 숙련인력 확보를 위해 비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었다.

알럼이 일하는 회사는 뿌리 산업에 속하는 유리·요업 업체로 해당업종이 된다는 게 사장의 설명이었다. 사장은 알럼이 뿌리산업 분야에 6년 이상 근무했기 때문에 국내 근무경력 배점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고, 자국에서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미래 기여 가치 점수에서도 최대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사장은 알럼이 기량검증이나 한국어능력 등에서도 점수를 얻을 수 있고, 읍면 지역 거주로 가점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비자 신청 요건이 되는 만큼 행정사를 통해서 적극 도와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게다가 무릎이 완전히 아물 때까지 일하지 않아도 된다며 빨리 회사로 돌아오라고 요구했다.

E-7-4비자를 발급받고 비자 요건을 유지할 경우 2년마다 심사를 거쳐 체류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알럼은 사장의 말에 혹했다. E-7 비자는 국내에 5년 이상 거주 시 영주권 비자(F-5)도 신청 가능하다. 알럼에게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알럼은 무릎에 조금 무리가 가더라도 비자를 얻을 수 있다면 잠시 일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산재 신청 취소를 위해 이주노동자쉼터에서 상담하던 알럼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사장이 알려주지 않은 한 가지 사실 때문이었다.

E-7-4비자는 나이 제한이 있었다. 만 39세 이하까지만 신청이 가능하다. 그런데 알럼은 마흔이 넘었다. 알럼은 사장이 자신의 나이를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알럼은 다시 산재신청을 하겠다고 나섰다. 정말 '이래착저래착'이다. 그러나 알럼의 이런 태도는 사장이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병원비를 내 주겠다', '비자를 받게 해 주겠다'는 등의 말로 알럼을 좌지우지하려는 사장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알럼의 실수는 "이래착저래착, 혼자 벨착"하는 사장의 말을 믿은 것이었다.

알럼은 산재신청을 하겠다고 했지만, 언제 다시 번복할지 모른다. 사장이 행정사를 통해 도와주겠다고 했을 땐, 무슨 방법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럼은 요즘 들어 E-7-4비자를 얻어보겠다고 이주노동자쉼터를 찾는 이주노동자들이 많다는 사실에 내심 놀라며, 이주노동자쉼터 한국어교실에 등록했다.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봐서 점수제 비자를 받는데 조금이라도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다. 알럼은 자신이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태그:#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숙련기능인력 점수제비자 , #법무부,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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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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