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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이라는 단어는 보통 안전하고 편안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집 안에서도 불안에 떨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인천~김포고속도로) 건설공사로 뚫린 지하터널 위에 있는 인천 동구 삼두1차아파트 주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기울어가는 집이 불안하기만 하다.

인천~김포고속도로 지하터널 공사 후 건물 곳곳에 심한 균열이 발생한 인천 동구 삼두1차 아파트.
▲ 동구 삼두아파트 인천~김포고속도로 지하터널 공사 후 건물 곳곳에 심한 균열이 발생한 인천 동구 삼두1차 아파트.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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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김포고속도로 지하터널 공사 후 건물 곳곳에 심한 균열이 발생한 인천 동구 삼두1차 아파트. 지난 8월 1일 오후, 이와 관련한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는 삼두1차아파트 정문에서 조기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만났다. 오후 6시에 열린다는 집회에 앞서 아파트 이곳저곳을 함께 둘러보았다.

곳곳에 땅 꺼짐이 발생했고, 전압 수만 볼트(V)의 전류가 흐르는 지하 변전소 벽에는 선명한 금이 가 있다. 며칠 전에는 정화조탱크가 있는 지하실 벽이 깨져 보수공사를 했단다. 지반은 푹 꺼져 아파트 기둥이 다 보일 정도였다. 지상 주차장에는 계속해 늘어난 균열이 보였고, 중립 기어로 주차해놓은 자동차가 저절로 밀려 사고가 발생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이제 주차할 때는 항상 받침목을 대놔야 해요" 조기운 회장은 구석에 쌓여있는 각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파트단지 지상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1층 외곽에 있는 경비실 건물에는 주먹이 들어갈 만한 균열이 있었고, 잠깐 둘러본 아파트 12층부터 9층까지 이르는 부분에도 동일한 방향의 금이 있었다.

"이게 생긴 지 열흘도 안 된 거예요. 점점 (아파트가) 찢어지는 속도가 빨라지니까 '이러다가 진짜 큰일 나는 건 아닌가' 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조 회장의 말대로 아스팔트엔 갈라진 틈에 모래도 섞여 있지 않을 정도로 얼마 되지 않은 균열이 보였다.

시청·국회·청와대 앞에서도 집회 "주민 불안해 하는데, 누구도 나서질 않아"

아파트 12층 창틀에 묶어놓은 추가 1층에 와서는 벽 끝까지 걸쳐져 있다.(왼쪽) 상가 건물과 지면 사이에 손이 들어갈 정도의 균열이 깊이 3미터 정도 생겼다.
▲ 동구 삼두아파트 아파트 12층 창틀에 묶어놓은 추가 1층에 와서는 벽 끝까지 걸쳐져 있다.(왼쪽) 상가 건물과 지면 사이에 손이 들어갈 정도의 균열이 깊이 3미터 정도 생겼다.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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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건물과 지면 사이에 성인의 손이 들어갈 너비의 균열이 깊이 3m 정도 생겼다. 12층 창틀에 묶어놓은 추는 1층으로 내려와 수직선에서 옆으로 한참 밀려있었다. 아파트가 얼마나 기울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땅과 상가건물 사이에는 손이 들어갈 만큼의 틈이 생겼는데 그 깊이가 3m가 넘고, 그 속으로 넣어둔 쇠막대기 끝에는 짙은 펄이 묻어나왔다.

조 회장은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 인천시든, 정치인들이든, 포스코든 아무런 대책도 없어요. 이젠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고 있는 게 보일 정도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어르신들이랑 매일같이 집회를 합니다. 벌써 11개월째, 더워도 추워도 집회를 계속하고 있어요. 더 화나는 건 구분지상권 보상이라고 한 집 당 28만 7000원 준다는 거예요. 여기 어르신들도 많은데, 피해 보상해준다 하고 서명받아가고 그러니까, 진짜 억울하고 화도 나고 그래요."

한국도로공사 인천김포사업단은 구분 지상권 손실 보상으로 3.3㎡당 약 9800원을 제시했다. 아파트 면적 95.9㎡의 손실 보상금액은 세금 20%를 떼기 전 28만 7000원이다. 또, 인천김포고속도로(주)는 지하터널을 뚫기 위한 발파공사로 인해 불편을 겪은 주민들에게 피해보상금이라는 명목으로 가구당 30만 원을 제시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그동안 국회·국토교통부·자유한국당사·인천시청·동구청·포스코건설 본사 등 수많은 곳에서 집회를 했다. 지난 7월 31일엔 청와대 앞에서도 했다.

"어르신이 많아서 이렇게 매일 (집회)하는 게 걱정되기도 해요. 실제로 작년에 한 분이 (집회를 한 뒤) 돌아가시기도 했고요. 근데 모두 자발적으로 나오시니까 너무 더운 시간대는 좀 피해서 집회하고 있죠."
 
삼두1차아파트 주민들이 8월 1일 오후 아파트 정문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 삼두아파트 삼두1차아파트 주민들이 8월 1일 오후 아파트 정문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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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6시 아파트 정문에서 열린 집회엔 70여 명이 모였다. 조 회장의 말대로 대부분 노인이었다. 한 주민은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는 게 보이니까 겁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번에 유정복 (인천)시장도 왔다 가고 안전점검해준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고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시장이 힘을 써줘야 하는데 그냥 보고만 있다. 벌써 집 안에 금 가고, 그런 집들은 자기 돈으로 다 수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다른 주민은 "돈 아낀다고 다이너마이트 쓰니까 터질 때마다 지진 난 것처럼 집이 쿵쿵 울리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40분 정도 진행된 집회에선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발언과 구호 제창 등이 이어졌다. 구호엔 인천시와 동구, 지역구 국회의원·지방의원을 향한 분노가 담겼다. 주민들이 이렇게 불안해하며 싸우고 있는데,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집회를 진행하면서도 불만을 토했다. 집회장 여기저기서 "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럴 거면 잠이나 자라", "대기업이랑 다 한통속이다" 등의 말이 들려왔다. '빨리 이주 하고 정밀안전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엔 모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 관계자 "안전진단은 국토교통부·민간회사가 진행, 시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지하 변전소, 정화조가 있는 지하실 벽, 중립기어의 자동차가 움직여 발생한 사고 흔적, 받침목을 놓고 주차된 차.
▲ 삼두아파트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지하 변전소, 정화조가 있는 지하실 벽, 중립기어의 자동차가 움직여 발생한 사고 흔적, 받침목을 놓고 주차된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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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운 회장은 "시와 국토교통부가 보상 등의 내용이 있는 터널공사 합의문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얼마 전 유정복 시장이 방문해 정밀안전진단을 받을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답이 없는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아파트 주민들은 지난 5월부터 포스코건설과 정밀안전진단을 협상했다. 하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협상은 중단됐다. 쟁점은 원인 분석과 진단 기관의 사견(=추정됨 등)을 넣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다. 주민들은 안전진단과 함께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포스코건설은 안전진단만 하고 '피해는 주민들이 스스로 조사해 분쟁조정위원회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안전진단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주민들과 포스코건설의 의견 차가 있어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라며 "관내에 일어난 일인 만큼 시가 의무가 있는 것은 맞지만, 국가사업으로 지정돼 국토교통부와 민간자본 주식회사가 진행하는 일이라 시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삼두1차아파트엔 264가구, 1000여 명이 살고 있다. 주변 상가와 주택 등에 있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

주민들은 "삼풍백화점이나 세월호처럼 참사가 발생하고 나서 뒷수습하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안전한 곳으로 이주시키고 정밀안전진단을 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인천김포고속도로, #동구 삼두아파트,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인천시,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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