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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인간 심판> 표지
 <동물들의 인간 심판> 표지
ⓒ 책공장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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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집에는 놀 만한 게 없었다. 엄마가 직접 나와 저녁 먹으라고 부르실 때까지 밖에서 놀았다. 친구들과 놀 건 정말 많았는데, 우리집에서 조금만 가면 얕은 산을 낀 공원이 있어 그곳에 자주 갔다.

그러곤 매미, 잠자리, 사마귀, 메뚜기, 개미 등의 곤충을 잡았고, 잡아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저 죽어가는 곤충이 있는 반면 잡아 괴롭히는 데 온 정성을 쏟는 곤충이 있었다.

그 행위는 우리들에겐 흔한 놀이였고, 어른들에겐 자연 학습이었다. 그때보다 훨씬 자연과 덜 친숙한 지금, 모르긴 몰라도 그런 경향은 더 심해졌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그건 그 무엇보다 학습적인 놀이이다.

물론 그 곤충의 입장에서 생각할 이유나 여지 따위는 없다. 그러나, 그 곤충은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그런 짓이 생태계 파괴에 일조하는 거라고 왜 그땐 몰랐을까.

<동물들의 인간 심판>(책공장더불어)은 동물을 향해 호모 사피엔스(인간)가 저지른 하찮고 작은 행동부터 엄청나고 크나큰 행동들, 그로 인해 일어났던 혹은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낱낱이 까발리는 풍자 우화다.

너무 많이 접해왔던 계몽서 느낌이라고? 천만에. 이 책은 전적으로 동물들의 시점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인간을 재판에 올려 법정을 여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그 죄는 동물들에 대한 비방·중상, 학대 그리고 대량학살이다.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죄

생태계에는 약육강식 법칙이 존재한다. 이른바 생존 게임, 먹잇감을 두고 경쟁도 하고 발톱을 세우고 독을 뿜으며 사냥을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중요한 핵심이 있다. 서로 존중하고 공정한 규칙에 따라 자신과 상대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도 약육강식 법칙이 엄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곳의 약육강식은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는 말 아래, 존중이고 규칙이고 존엄성이고 나발이고 같은 인간과 온갖 창조물을 헐뜯어 명예를 실추시키는 데 열중하는 걸 뜻한다.

인간은 인간을 욕할 때 하필이면 동물에 빗대는데, 그 자체로 이유없이 동물을 비방하고 중상하는 것이다. '개의 새끼'는 천하의 나쁜 놈을 뜻하고, '숫염소'는 성(性)에 관한 부정적이기 짝이 없는 단어다. '닭의 대가리'나 '금붕어'는 멍청하다는 말과 동의어이고, '뱀'은 교활하다는 뜻이고... 정녕 끝이 없다.

최근에 개봉해 많은 이슈를 뿌렸던 영화 <옥자>가 이 두 죄를 한 번에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동물에 개, 돼지, 소, 말, 고양이 정도가 있다. 이중 개와 고양이는 반려의 대상이 되고, 소는 젖을 주고 밭을 갈며, 말은 유흥의 대상이다. 하지만 돼지는? 내가 알기론 오로지 식용의 대상일 뿐이다. 그래서 돼지는 태어나서 인간의 식용 대상으로 키워질 뿐이다.

옥자가 전 세계 각지의 좋은 환경에서 자란 건 양질의 고기를 위해서다. 책에서 법정의 증인으로 나온 돼지 장브누아르의 증언은 정녕 끔찍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더러운' 돼지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곧 식용 돼지로의 과정이다.

그들은 비좁고 더럽기 만한 곳에서 아무런 희망 없이 그저 먹기만 할 뿐이다. 그러곤 곧 도살장으로 향해 죽어간다. 옥자가 달랐던 건 '더 맛있는 고기'를 위해 스트레스를 적게 받은 환경에서 자란 돼지였을 뿐, 그 끝이 도살장에서의 죽음, 그리고 식탁 위인 건 똑같다.

인간의 부유함은 곧 다른 동물의 가난

책 속에서 수많은 종류의 크고 작은 동물들이 증언하는 내용은 상상 이상의 끔찍함을 동반한다. 동시에 생각하기 힘든 역발상과 인간이 제대로 마주칠 수 없는 인간의 본 모습도 제공하는데, 그 모든 게 신랄하고 정확해 보인다.

동물들은 인간이 절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원한다고 말한다. 그건 '소유 게임'이라는 것인데, 인간들은 그걸 '경제'라고 부르며, 가능한 한 많은 물질을 얻는 걸 목적으로 몇 가지 점수를 정확히 매겨서 계층을 나눈다. 그 기준은 '돈'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더 가지려고 하는 다양한 게임은 모두에게 재앙입니다. 지구라는 공간은 제한적인데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문제는 70억 명의 인간이 먹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니라 '누가 더 가졌는지'를 결정하는 거대한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가 70억 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더 가지면 분명 우리(동물)는 당연히 덜 갖게 되니까요. 물도, 깨끗한 공기도, 식량도, 살 공간까지 줄어드는 겁니다. 한 마디로 인간의 부유함은 곧 우리의 가난을 의미합니다." (본문 192쪽)

우리는, 인간은 이 사실을 아주 잘 안다. 결국에는 인간 자신을 포함한 모두의 파멸만 기다리고 있다는 걸. 하지만 그 기저에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마인드가 똬리를 틀고 있다. 나만, 내 가족만, 내 나라만, 내 세대만, 종국에는 인간만 아니면 되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인간에게 내려질 판결이 궁금하다. 물론 법정인 만큼 희대의 범죄자 인간에게도 변호인이 있는 바, 적어도 동물에 대한 생각의 변화는 진보하고 있다는 것도 누구나 인정하는 것 같다. 그런 인간도 대다수가 아닌 소수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비록 늦었지만 깨달음의 꾸준한 나아감일까, 일시적이고 단편적이며 소수의 현인적 깨달음의 반복일까.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리고 어떤 판결이 나온다 해도 그것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일단은 자기 죄가 무엇인지도 모를 대다수의 인간들에게, '네 죄를 네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동물들의 인간 심판, 그 처벌의 모양새도 그 일환이겠다. 진짜 끔찍한 건 수많은 동물들이 법정에 나와 증언한 수많은 끔찍한 죄들을 다시 저지를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동물들의 인간 심판>, (호세 안토니오 하우레기,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지음, 김유경 옮김, 책공장더불어 펴냄, 2017년 7월)



동물들의 인간 심판

호세 안토니오 하우레기.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지음, 김유경 옮김, 책공장더불어(2017)


태그:#동물들의 인간 심판, #비방과 중상, #학대, #대량학살, #인간과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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