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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내가 텃밭에서 한 옥수수랑 블루베리예요"
"맛있겠어요. 전 검은콩물을 만들어 왔으니 같이 먹어요"

매주 토요일 오전 9시면 내가 오랫동안 일했던 노인복지관과 주민센터에서 공부를 배우던 평균연령 75세의 어르신들이 모여든다. 일종의 실버문화예술 사랑방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주말이라도 평소에 똑같이 일어나서 출근하듯이 하는데 이날은 콩물을 만든다고 좀 더 일찍 부지런을 떨었다. 가끔은 8시 30분에 먼저 와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 마당에 물을 주시고 풀을 뽑고 기다리는 어르신들도 있다.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시간의 힘은 영향이 커서 서로의 마음에 푸르고 깊은 진득한 정을 심어준다. 내가 다른 곳으로 가게되어 더 이상 내가 하는 수업에 함께 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처음에는 다른 곳에서 배우다가 영 성에 차지 않기도 하고 내가 보고 싶다면서 주말이라도 시간을 내어주기를 희망하였다.

새로운 기관에서 적응이 잘 안되어 무척 힘들던 차라 시간을 내는게 쉽지 않았지만 찾아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이 분들과는 내가 이 지역을 떠나지 않는 한, 또는 어르신들의 건강이 괜찮은 한, 생이 다하는 날까지 아마 함께 동행할 것 같다.

이 분들을 지식적으로 가르친다고 하지만 기실은 내가 배우고 사랑을 받는 게 더 많다. 노인의 노라는 한문글자가 부수를 헤쳐보면 땅의 길을 가는 방향을 가르키는 뜻이 된다. 세상의 모든 노인은 인생의 선배이자 스승이며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보통 일반인이 20세면 하는 사회생활의 시작을 나는 40세가 다 되어 시작하였기에 아직도 나는 모르는게 많다. 가령 내가 운전하는 승용차가 아닌 다른 사람, 특히 윗사람이 운전하는 승용차에서 그 옆자리에 앉는거와 뒷자리에 앉는 차이를 몰라서 실례를 범했다는 것을 뒤에 알았던 적도 있다.

또한 내가 상담소를 설립하고 운영할 때 상담소장을 영입해야 할 때, 새로운 사람보다 오랫동안 나와 함께 한 동료에게 권고했을 때 안한다고 사양한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 들여, 경기도에서 다른 전문가를 영입하자 그 동료가 서운했던 적도 있었다. 원래 한 두 번 사양하다가 받아 들이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인데 듣지 못하여 언어세상에서 동 떨어진 나는 몰랐던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한 상식의 세상이 듣지 못한 나에게는 책에 나오지 않는 한 무지의 세상인 셈이다. 이 무지의 세상은 방송에서 자막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열려지기 시작하다가 실시간 카톡이나 문자메시지, SNS의 세상이 되면서 한꺼번에 홍수처럼 세상의 모든 언어들이 밀려들어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이상하게 함축이나 단축되어 조합되거나 비어, 은어로 표현되는 그 단어들을 보는대로 따라서 실생활에 적용하다가 딸들에게 면박을 당하기도 하였다. 가령 깜놀, 심쿵, 아따, 아발라 이런 것들은 어느 정도 괜찮다고 딸들이 그랬지만 '빡세다', '갈구다' 이런 것들이 주는 느낌도 모르고 사용했기 때문이다. 마치 색깔에 대한 분별력이 전혀 없다가 까만색, 빨강색, 파란색, 노란색 이런 진한 삼원색이나 오방색 정도를 알던 시각장애인에게 갑자기 세상의 모든 파스텔톤이 다가온 것이나 같다.

이런 나에게 어르신들과 주말마다 만나서 주고 받는 대화와 일상의 생활에 대한 상식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그 분들을 잘 가르쳐드리기 위해 주경야독하는 긴장감도 내게는 생활의 보약이다. 서로 마음을 담아 직접 만들거나 재배한 먹거리를 도란도란 나누며 공부하다 보면 오전 한 나절이 금새 지나간다.

이런 어르신들과 조심하지 않으면 얼굴에 웃음기가 서로 사라지고 경직되어 지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정치에 관해서이다. 어르신들은 이상하게도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촛불집회에 대해서 아직도 부정적으로 폄하하고  현재 수감생활을 하는 누군가를 불쌍하다는 말을 하며 눈물을 글썽이시기도 하신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서 평소의 소탈함을 버리고 권위적으로 군림하지 않는 내가 뽑은 대통령에 대해 무심결에 한 마디 하다가 표정이 굳어지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아차! 한 경우도 있었다. 서로의 다른 정치관과 색깔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이지만 전통과 보수가 하나된 어르신들에 민주주의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른 것 같아 섣불리 입을 떼면 안될 것 같았다.

이 경우는 '레밍' 발언을 한 도의원에 관해서도 어찌나 관용적인지 놀라웠다. 서로 오랜 시간을 함께 공부하고 먹거리를 나누고 그래서 가끔은 가족같은 그런 관계이지만 정치적인 가치관이나 색깔에 대해서는 건널 수 없는 강의 양쪽에 서 있다. 그래도 매주 중간지점에서 같은 것을 공유하면서 만나는 그 시간들이 고맙다. 서로 다르기에 현재의 귀함이 선물처럼 소중하게 느껴진다.


태그:#장애인식개선, #노인문화예술교육, #서로 달라도 동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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