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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국토교통부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정부 핵심과제인 도시재생 뉴딜사업 추진을 담당할 도시재생사업기획단출범식을 개최했다.
 지난 4일 국토교통부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정부 핵심과제인 도시재생 뉴딜사업 추진을 담당할 도시재생사업기획단출범식을 개최했다.
ⓒ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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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년간의 정비 사업은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념 하에서 필연적 산물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가슴 아픈 희생을 요구해 왔습니다. 사회적 약자, 즉 영세 가옥주와 세입자들의 주거권과 생존권의 희생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주택 소유자와 승자만의 논리가 지배하는 구조였습니다.

비록 낡고 생활하기에는 불편하지만 조상 대대로 혹은 오랫동안 이웃들과 정붙이며 살아왔던 동네에서 쫒아내 벼랑으로 내몬 것입니다. 거대 자본과 지주들만이 주체가 되어 시행한 재개발 뉴타운 사업으로 인해 영세 가옥주들과 세입자들은 보다 더 열악한 지역을 찾아 떠돌아야 했던 것입니다." - 박원순(2012년 1월 30일), 뉴타운·재개발 문제 수습방안 기자설명회

문재인 정부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 매년 10조 원씩 5년간 모두 50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매년 100개의 노후 마을을 지정해 해당 마을 내에 있는 노후 주택을 리모델링해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지금껏 추진한 도시재생 사업의 연간 예산이 1500억 원이던 것을 감안하면 강한 정책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외견상 서울시가 그동안 추진해온 도시재생사업의 확장 혹은 전국 버전이라 볼 수도 있겠다.

'누구의,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도시재생인가?

정부가 발표하는 대개의 정책은 공공 문제를 해결하거나,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한 목표를 설정한다. 그러나 기존의 정부 정책은 정책 목표와 수단을 중앙부처에서 정하고, 지방자치단체 매칭 등을 통한 공모를 통해 대상 지역을 선정해, 국가 예산을 집행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의 '녹색마을'이나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많은 지자체와 많은 마을이 참여했다. 하지만 '녹색'과 '창조'라는 가치와 비전에도 불구하고, 썩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핵심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국가 재정을 매개로 한 지자체 공모 선정 방식에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5년 7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단 간담회를 마치고 기념촬영하고 나서 간담회장을 나서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5년 7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단 간담회를 마치고 기념촬영하고 나서 간담회장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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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가 결정하고, '예산'을 매개로 지자체를 동원하는 방식의 정책 전달 체계가 갖는 한계는 명확하다. 지자체로서는 부족한 재원의 확보 차원에서 공모에 당선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고, 중앙부처는 대상지 선정과 예산 집행 등 일종의 프로젝트 관리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정책의 당초 목표가 실종되고, 서류상 실적은 있으나, 실제 정책효과성은 떨어지는 일종의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곤 한다. 중앙정부가 큰 틀의 정책목표와 추진체계(협치)에 대한 가이드를 제공하고, 지자체가 지역의 자원과 특성에 맞는 정책을 수립하고, 이해 당사자와 시민이 계획수립, 집행, 모니터·평가 전 과정에 참여하는 협치모델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누구의,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행정과 시민의 연결, 중간지원조직의 역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기보다는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라고 했던가. 공공재원은 마중물 역할이고, 이해관계 당사자와 공동체의 참여를 통해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협치모델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경기도는 시·군에 지역에너지계획을 수립하는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또 서울시는 자치구에 지역사회혁신계획을 수립하는 예산과 시민협력플랫폼이라는 협치 체계를 만드는 예산을 지원함으로써, 자치단체의 혁신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처럼, 현실과 이상에는 괴리가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견이 있을 리 없으나, 시민의 직접 참여와 주도성 발휘에는 현실적 제약이 있다. 서울시가 혁신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간지원조직'에 주목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행정과 시민 또는 지역사회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행정의 입장에서 보면, 제도와 관행으로 정착하지 않은 혁신정책의 추진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더구나 시민참여형 혹은 시민주도형 정책추진은 공무원에게 많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결국 민관협치는 과정이자 원칙의 문제인데, 행정의 문법으로는 비효율성과 시민의 대표성·공정성 시비에 대한 우려로 방어적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생기를 불어 넣는 도시재생. 장위도시재생지역 주민골목축제 모습.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생기를 불어 넣는 도시재생. 장위도시재생지역 주민골목축제 모습.
ⓒ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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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생기를 불어 넣는 도시재생. 장위도시재생지역 주민골목축제 모습.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생기를 불어 넣는 도시재생. 장위도시재생지역 주민골목축제 모습.
ⓒ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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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의 입장에서 보면, 행정의 제도와 시스템 중심의 프로세스가 창의성을 제약하는 답답함으로 다가온다. 현장의 요구에 대해 제도·예산·관행 등 시행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를 듣게 되고,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다가 결국 지쳐 포기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때 중간지원조직은 협치 고리이자 다양한 시민활동의 플랫폼으로서 작동한다. 서울시는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NPO지원센터, 50플러스재단, 청년허브, 서울혁신센터, 협동조합지원센터, 노동권익센터 등 혁신정책의 추진과정의 시민참여와 주도성을 높이고, 민관협치 역량을 강화하는 다양한 영역의 중간지원조직이 있다.

여전히 시민과 행정의 중간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행정 일방의 정책추진과 비교할 때, 갈등예방과 조정, 시민참여와 숙의민주주의, 정책의 수용성과 효과성 등에 있어 탁월한 효과가 있다. 이러한 중간지원조직의 활동을 통해 종국에는 행정을 이해하는 시민, 시민의 요구를 경청하는 공무원이 많아지고, 우리사회 공공의 문제해결 역량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7월 2일 서울시 도시재생지원센터는 현장을 찾아가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정으로 문을 열었다.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정책 구상에 '중간지원조직'을 통한 주민의 참여와 시민주도성 강화, 그리고 민관역량강화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사람 중심의 도시, 인간의 얼굴을 한 도시재생

주민들이 산새마을 주변을 정비하고, 마을텃밭을 가꾸고 있다.
 주민들이 산새마을 주변을 정비하고, 마을텃밭을 가꾸고 있다.
ⓒ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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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책이 그러하지만,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이해관계의 갈등이 반복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의 성패는 민관협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의 대표적인 주민참여, 협치 사례로 봉산 아래 자리 잡은 전형적인 노후·낙후 주거지 '산새마을'을 꼽을 수 있다.

산새마을은 개를 사육하던 곳으로 쓰레기가 넘치고 악취가 가득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 지역을 주민의 힘으로 변화시켰다. 주민들이 손수 주변을 정비하고 텃밭을 가꾸고, 직접 돈을 모아 집수리 센터를 지어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 스스로 공동체를 구성하여 낙후된 도시를 재생시킨 사례다.

산새마을은 대표적인 주민참여형 재생사업으로 한겨레 지역복지대상(2012), 서울특별시 환경상(2013), 대한민국 경관대상 특별상(2013) 등을 수상하였고, 2015년에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창조적인 해결책은 새로운 연결에서 나온다

후배 공무원들에게 협치를 주제로 특강 중인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
 후배 공무원들에게 협치를 주제로 특강 중인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
ⓒ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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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도시재생을 고민하는가?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협치를 주제로 한 후배 공무원들에 대한 특강에서 '협치'에 기반한 도시재생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정의했다.

링컨의 연설을 살짝 비틀어 인용하면, 도시재생은 '시민의 것으로, 시민들에 의해서, 시민을 위해' 하는 것이다. 결국 주체의 문제를 깊게 고민해야 하는데, 이는 정책의 수용성과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민관협치가 정책성공의 핵심이라 할 수도 있겠다. 정부 정책이 아무리 선한 의도로 입안됐다고 하더라도, 그 당사자의 조건과 요구가 결여돼 있고, 사업계획 수립과 추진 과정에서 배제된다면, 그 정책의 효과성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마가렛 휘틀리의 시, <서로에게 기대어보기를>은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나서는 공동체보다 더 위대한 힘은 없다네"로 시작해 "인간의 선량함에 기대어보길, 함께 지내기를"로 끝난다. 휘틀리의 명구처럼 "창조적인 해결책은 새로운 연결에서 나온다는 점"을 깨닫기를 제안한다.

<서로에게 기대어보기를> Turning to One Another
- 마가렛 휘틀리 Margaret Wheatley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나서는 공동체보다 더 위대한 힘은 없다네.
"무엇이 잘못되었지?"라고 묻기보다는 "무엇이 가능할까?"라고 묻기를. 계속 묻기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차리길.
다른 많은 사람들도 당신과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을 생각하길.
정말 중요한 대화를 시작할 용기를 갖기를
아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고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며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길
앞으로 발견할 차이점에 관심 갖기를. 놀랄 준비를 하고 있기를
확실성보다 호기심을 중요하게 여기길.
가능성을 중시하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기를.
모든 사람은 무엇인가에 전문가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창조적인 해결책은 새로운 연결에서 나온다는 점을 깨닫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두렵지 않다는 점을 기억하기를.
진정한 경청은 사람들이 좀더 가까이 다가서게 만드네.
의미있는 대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믿고
인간의 선량함에 기대어보길.
함께 지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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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강준님은 서울시 협치총괄지원관입니다.



태그:#서울시, #도시재생,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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