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017시즌, 1992년 유러피언컵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이하 UCL)로 개편한 이래, 사상 첫 2연패에 성공한 레알 마드리드. 탁월한 골 감각을 지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루카 모드리치, 토니 크로스가 구성하는 중원 등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들이 즐비했기에 역사를 써낼 수 있었다.

특히, 좌우 측면 수비를 담당한 마르셀로와 다니엘 카르바할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마르셀로는 인간이라고 믿기 힘든 체력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왼쪽 측면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고, 카르바할은 남다른 축구 지능과 예리한 크로스 능력을 앞세워 레알의 2연패에 큰 힘을 보탰다. 수비력은 기본이고, 정상급 공격수 못지 않은 공격력까지 겸비한 좌우 풀백이 있기에, 레알은 3연패까지 노려본다.

레알의 UCL 결승전 상대였던 유벤투스도 마찬가지다. 막강한 수비력에 가려 돋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결승 진출에는 좌우측 풀백 알렉스 산드로와 다니엘 알베스의 맹활약이 있었다. 이들은 조별리그와 준결승까지, 12경기 필드골 1실점이라는 막강한 수비력에 힘을 보탰음은 물론이고, 상대 진영을 끊임없이 흔들며 공격의 선봉장을 자처했다.

현대 축구, 공수 능력 겸비한 풀백의 존재 유무가 성적 결정짓는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위기를 겪고 있는 것도, 어쩌면 풀백 기근 때문인지도 모른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3위 우즈베키스탄에 승점 1점 앞선 조 2위. 중국과 카타르 원정에서 패하고, 시리아는 홈에서도 간신히 이겼던 졸전의 바탕에는 사라진 풀백이 있다.

대한민국 역대 최고 수비수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이영표와 송종국, 김동진, 차두리 등 사실 한국 축구는 아시아 정상급 풀백을 끊임없이 배출해왔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호흡을 맞춘 이영표와 차두리, 2015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에 일조했던 김진수-차두리 등,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풀백은 걱정과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의 좌우측 수비는 마땅한 주인을 찾지 못했다. 지난해 9월, 최종예선의 시작을 알렸던 중국전에는 장현수와 오재석, 이후에는 이용과 홍철, 김창수 등 수많은 선수가 이 자리를 거쳤지만, 아쉬움만 남았다.

'급'이 다른 김진수, '싹'이 다른 안현범을 국대로

풀백 기근 현상이 이처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것은 전임 감독인 울리 슈틸리케의 탓이 크다. 소속팀 경기에 제대로 나서지 못하는 선수를 불러들여 선발로 내보냈고, 중앙 수비수의 무리한 위치 변화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특히, K리그 최고의 왼쪽 수비수로 손꼽히는 정운은 외면하고, K리그 클래식(울산 현대) 주전 경쟁에서 밀린 뒤 챌린지(대전 시티즌)를 거쳐 중동으로 향했던 임창우가 국가대표팀에 합류하는 모습을 보면, 황당하기도 했다. 

이제는 달라질 수 있다. 소속팀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이고, 좌우측 풀백이 제 포지션인 선수들이 국가를 대표할 수 있게 됐다. 신태용 감독이 K리거의 활용을 천명한 상태이고, 이전과 같은 무원칙 선수 선발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박주호를 제외하면, 유럽 무대를 누비는 풀백도 없는 상태다.

결국, 시선은 K리그로 향한다. 왼쪽부터 보면, 독일에서 돌아온 김진수가 돋보인다. '급'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한다.

김진수는 지치지 않는 체력을 바탕으로 공수를 쉼 없이 오간다. 축구 선수치고는 왜소한 체격이지만, 거친 몸싸움을 피하지 않고, 밀리지도 않는다. 빠른 발과 남다른 축구 지능을 앞세워 공간도 내주지 않는다. 전북 현대의 '닥공'에 가려진, 리그 최소 실점 1위에는 김진수의 공이 지대하다.

더 놀라운 것은 공격력이다. 빠른 역습에 앞장서고, 뒷공간을 파고들어 기회도 만들어낸다. 김신욱과 에두, 이동국 등 정상급 스트라이커를 활용하는 데도 능하다. 예리한 킥 능력을 자랑하며 프리킥 골도 터뜨리고, 도움도 올린다. 올 시즌 20경기 출전 3골 5도움. 전북 닥공의 중심에는 김진수가 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김진수는 멀티 능력도 뽐낸다. 그는 지난 23일 FC 서울과 맞대결에서 우측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철순의 결장(경고 누적)으로 인한 피할 수 없는 변화였다.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김진수는 안정적인 수비로 서울의 측면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후반전에는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기 시작했고, 득점에도 관여했다. 무조건 크로스가 아닌, 넓은 시야가 돋보인 방향 전환 패스로 결승골의 시작을 알렸다.

왼쪽에 김진수가 있다면, 오른쪽에는 안현범이 있다

안현범은 지난 시즌, 측면 공격수와 수비수를 오가며 28경기에 나섰고, 8골 5도움을 기록했다. 2016 K리그 클래식 영플레이어상은 그의 몫이었다. '제2의 손흥민'이란 칭호가 붙었고, 차두리와 같은 공격형 풀백의 탄생도 기대케 했다.

그런데 올 시즌은 잠잠했다. 지난 3월 11일 홈(제주) 개막전에서 1골 1도움을 올린 이후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부족한 수비력을 보완하며, 진짜 수비수로 거듭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 시즌 안현범은 제주의 오른쪽 측면 수비에 고정됐다. 공격적인 성향과 본능을 억제하고, 안정감을 더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공격에 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함부로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가장 많이 달라진 부분이다.

그 결과 개인 성적(21경기 2골 2도움)은 조금 아쉬울지 모르지만, 팀은 정상급 수비력을 갖추게 됐다. 제주는 지난 시즌, 리그 37경기에서 57골을 내주며 불안한 수비력을 노출했다. 화끈한 공격 축구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있었던 이유였다.

그러나 올 시즌은 22경기에서 23골뿐이 내주지 않고 있다. 실점이 네 번째로 많았던 지난 시즌과 달리, 2017시즌은 전북에 이어 두 번째로 실점이 적다. 안정감과 예리함을 갖춘 측면 수비수로 거듭난 안현범의 역할이 크다.  

공격적인 본능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다. 자신의 수비 지역을 동료가 메울 수 있는 상황이라면, 전진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시원시원한 스피드와 드리블을 뽐내며 상대 측면을 무너뜨리고,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진입해 득점도 노린다. 이대일 패스를 주고받으며 수비를 무너뜨리는 영리함도 지녔고, 포항 스틸러스(22일)와 경기에서 증명됐듯이 스타성도 갖췄다.  

'급'이 다른 모습을 보이는 김진수와 '싹'이 다른 모습을 보이는 안현범. 이제는 공수 양면을 활발히 누비는 국가대표 풀백의 모습을 봐야 할 때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김진수 안현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