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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핵이 아니다? 참 '이상한' 말

요즘 북한의 동향과 관련하여 '비핵화(非核化)'라는 용어는 대단히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비핵(非核)'이라는 말을 직역하면 "핵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사실 무슨 의미인지 참으로 "개념 없는" 애매한 말이다.

우리가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그것이 의미하고자 하는 뜻은 "핵이 없는 조건으로 만들기"일 터이다. 그렇다면 '비핵화'는 '무핵화(無核化)'라고 바꿔 사용해야 비로소 그 의미와 목적이 정확해진다.

사실 조어방식과 의미가 해괴하기 짝이 없는 이 '비핵(非核)'이라는 용어가 어디로부터 연유했을까를 조사해보면 놀랍게도 일본이다. 일본에서 '비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용어까지 일본을 그대로 "베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상황이다. 일본용어의 무분별하고 '개념 없는' 수입 현상에는 방송계를 비롯하여 패션 등 문화예술계 그리고 특히 언론종사자들과 학계의 책임이 크다.

출차? 대표적인 어이없는 조어법

시내 곳곳의 주차장에서 항상 '출차'라는 푯말을 보게 된다. '나오는 차'로 이해되는 용어일 게다.

그러나 '출차'라는 이 말은 대표적으로 어이없는 조어 방식의 용어다. '칠거지악(七去之惡)'으로 유명한 "처를 내쫓다"는 의미의 한자어가 바로 '출처(出妻)'다. 그러므로 '출차(出車)'라는 용어를 한자 그대로 직역하면 "차를 내쫓다"는 것이다. 참 "개념 없는" 말이다.
이 '출차'라는 말은 일본용어다. 조어법에 전혀 부합하지도 않고 임의대로 만든 일본의 용어를 우리가 그대로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출차'의 상대어인 '입차(入車)'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허', 주체적 시민의 관점이 아닌 권위주의 용어

'특허(特許, patent)'라는 용어는 오늘날 아무런 의식 없이 사용되는 용어다. 그런데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자. '특허'라는 용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국가나 권력자의 입장에서 '특별히' 허락해주는 권리다. 주체적인 시민의 권리를 지칭하는 관점이나 시각이 전혀 아니다. 수동적이고 봉건적인 느낌까지 자아내는 말이다. '특허' 역시 일본에서 수입한 용어다. 그래서 역시 '국가주의'의 일본다운 용어다.

중국에서는 '특허'라는 용어가 없고, 대신 '전리(專利)', 즉 "독점적인 권리"라는 의미다. '특허'보다는 주체적이고 최소한 중립적인 용어다.

필자가 지난 글에서 주민센터의 '센터' 용어를 지적했는데, 이번 정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라는 영어 명칭까지 등장하였다. 주민센터의 연장선상이고 그 후과다.

거듭 말하지만, 이렇듯 외국어가 국가기관의 공식 명칭이나 공영방송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것은 적지 않은 국민들을 소외시키는 국가 행위다. 이는 사회구성원 간의 소통을 가로막아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나아가 민족 정체성을 해치게 되는 부정적 측면을 수반하게 된다.

프랑스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프랑스의 언어정책은 우리로서 본받을 만하다. 그러나 오늘날 "분명하지 않은 것은 프랑스어가 아니다"라고 일컬어질 수 있기까지 프랑스어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자국어의 보호와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했던 일이었으며, 이와 함께 국어와 관련된 사항을 국가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논의를 거듭해 온 정책적인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언어정책 기관인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설립될 때, 당시 재상 르셜리외는 이 기구의 설립 목적이 "정치적으로 분란이 심한 국가에서 결속력을 굳히기 위한 수단으로 통합적인 하나의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천명하였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언어의 규범화라는 목적을 지니며, 모든 사람이 프랑스어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프랑스어의 규칙을 정하고 프랑스어가 학문과 예술의 언어로 될 수 있도록 프랑스어를 순수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그 임무로 하고 있다. '바른 용법에 어긋나는 단어와 표현' 리스트를 정기적으로 작성하여 간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경계해야 할 표현들>이라는 소책자를 발행하면서 신어(新語)를 사전에 추가하거나 현재 사용되고 있는 낱말을 폐기하는 등의 적극적인 국어 순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1972년 용어 및 신조어를 관리하기 위하여 정부 각 부처에 반드시 '전문용어위원회'를 설치하고 새로 유입되는 외국어나 외래어에 적절한 번역용어를 지정하거나 새로 출현한 물건이나 개념을 지칭할 단어를 제정하는 등 관련 제반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였다. 특히 전문용어는 사회의 각 영역에 걸쳐 상당한 정도의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해당 부처와 교육성(省)이 관련 법령의 제정을 주도하고 법령의 범위를 정한다.

마지막으로 프랑스헌법 제2조에는 "공화국의 언어는 프랑스어로 한다"라고 명기하고 있는데, 우리 헌법에도 이와 같은 조항이 신설되어야 할 것이다.


태그:#비핵화, #중소벤처기업부, #특허, #출차,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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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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